“내가 홍제동 대양서점에서 아무개 도록을 만 원에 샀는데 그게 정가가 10만 원이더라구.”
내가 아무런 말이 없자 직설적으로 나온다.
“정가 10만 원짜리를 만 원에 샀으니 여기 박수근 도록은 정가가 5만 원이니까 만 원에 주면 되겠구먼.”
손님에게 얼굴 찡그리기 싫어서 그저 웃으면서 대답했다.
“어르신 죄송합니다만, 그 가격에는 팔 수가 없습니다.”
군말을 안 하고 담담하게 그렇게 말하자 손님은 대화를 오래 끌지 않고 그냥 갔다.
물론 책을 살 때는 가격 흥정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책의 가치를 모르고 그저 모든 책을 종이 뭉치처럼 본다면 책을 소유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책은 숨 쉬는 생명이고 하나하나가 모두 귀하다. 책은 사람 아래 있지 않다.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른다. 책과 그 안에 들어앉은 글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사람 위에 있다가 죽어서도 땅에 묻히지 않고 그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 귀천(歸天)한다. 하늘 위에는 아마도 거대한 바벨 도서관이 있어서 무지한 인간들, 시건방진 사람들을 향해서 매일 조소를 보내고 있을 거다.
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52~53p)
+++ 자신이 읽은 책만 판매한다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서 일어난 일화다. 박수근 도록을 1만원에 사려는 헌책 수집가와 1만원에는 팔 수 없다는 헌책방 주인장의 실랑이를 보면서 ‘문화’이자 ‘상품’인 책의 속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비매품을 제외한 모든 책에는 가격이 매겨져 있지만, ‘가격’과 ‘가치’가 늘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무조건 싸게 사려 연연하다가는 그 책이 갖고 있는 진실한 가치를 놓치게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제 값 주고 사봤지만 손해 본 느낌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
책을 만들고, 팔고, 사는 입장 모두가 경제관념과 더불어 가치에 대한 감각을 놓쳐선 안 되겠다. 가격은 명백하여 당장 체감되지만, 가치는 무형의 것이어서 쉽게 잊히곤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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