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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일본인 여성 아나키스트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7. 8. 29.

시사IN에 가네코 후미코 관련 기사가 나왔네요~

내용이 꽤 길어서 기사 전문은 따로 링크를 했습니다.

하단의 기사 전문 읽기를 누르시면 시사IN 창으로 이동합니다~^^

 

***

 

여기 한 명의 여성이 있다. 일본 이름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한국 이름 박문자. 영화 <박열>에서 주인공의 동지이자 아내로 등장하면서 비로소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한 인물이다. 제국주의 본진인 도쿄 한복판에서 일왕제(천황제)의 부조리함을 고발하다 감옥에서 스물세 해의 짧은 생을 마쳤다.

가네코 후미코는 우리가 익히 아는 여성 혁명가들과는 달랐다. 그녀는 불세출의 혁명가가 아니었다. 매혹적이라는 수식어로 포장되는 근대 여성도 아니었다. 배움도 배경도 없는 동아시아의 ‘흙수저’ 그 자체였다. 그녀의 삶은 다만 처절하고 치열했으며, 그러므로 혁명적이었다.

 

(중략)

 

 

가네코는 무정부주의자(아나키스트)가 되는 길을 택했다. 아나키스트와 공산주의자로 구성된 ‘흑도회’를 구성하고 그 기관지인 <흑도>를 간행한다. <흑도>에는 이런 ‘선언’이 실려 있다. “우리에게는 어떠한 고정된 주의(主義)도 없다. 마르크스나 레닌이 뭐라고 지껄이든 말든, 검은 개(우익)가 짖든 말든 우리들에게는 우리들만의 소중한 체험과 재능과 방침이 있다. 그리고 뜨겁게 약동하는 피가 있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사회적 정체성을 직시했다. 피억압 민중 가운데에서도 가장 약자인 여성으로서 비참한 유년을 견뎠던 기억이 그녀를 기존 체제와 권력을 부정하게끔 이끌었다. 영화 <박열>에서 인상적으로 묘사되는 그녀와 박열의 동거 서약(‘동지로서 동거한다. 운동 활동에서는 가네코 후미코가 여성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한쪽의 사상이 타락해서 권력자와 손잡는 일이 생길 경우 공동생활을 그만둔다’)은 그녀가 제안한 것이었다.

 

 

가네코가 맞서려는 세계의 끝에는 일왕제가 있었다. 그녀에게 장자 상속 원칙을 따르는 일왕제는 국가권력과 가부장의 화신이었다. 그녀가 박열과 함께 왕세자에게 폭탄 테러를 가하려 한 ‘대역죄’로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전향하라는 일왕 측의 요구를 끝내 거부한 건 이런 이유였다. 당시 판사는 그녀를 일컬어 “반항적이고 열광적이며 눈물이 많고, 때로 무서울 정도로 히스테릭하다”라고 기술했지만, 오히려 이는 그녀의 결연한 태도를 보여주는 대목인지도 모른다.

 

(하략)

 

시사IN 이오성 기자

 

기사 전문 읽기 (시사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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