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북투어 여행기]

 

 

2018년 2월 8일(목)~ 2월 11일(일) 진행된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북투어

비 오는 타이베이를 걸으며

산지니 어둠 여행단을 보고 느끼고 나눴던

그 시간들을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3화

 대만 현대사의 어둠을 따라가다 

 

 


대만 현대사의 비극 2.28사건, 그 현장 ‘천마다방’

 

 

1947년 2.28 사건의 막이 오른 장소 천마다방.

“그 역사의 무게는 쌍둥이빌딩 벽에 박혀있는 ‘천마다방’ 표기 위에 묵묵히 눌려 있다.”

 

 

 대만의 광복절인 1945년 10월 25일은 공식 국경일이 아니다. 또한 2.28 기념관에는 ‘시대 교대’란 단어가 선명하다. 일제의 패망과 자주독립이란 문구가 아니다. 일치 시대, 시대 교대란 인식의 배경에는 또 다른 정복자가 대륙의 국민당이란 인식이 깔려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장개석 국민당 정권은 대륙에서 대만으로 쫓겨 와 무슨 일을 벌인 것일까?

 

 실마리는 ‘천마다방’에 있었다. 큰길가,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곳. 북투어 일행은 우산을 쓰고 대로변 작은 기념석에 새겨진 글을 읽었고, 오가는 차를 피해 원래 천마다방이 있었던 자리에 위치한 쌍둥이빌딩 벽면에 새긴 글씨를 간신히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지식인 살롱 ‘천마다방’은 1947년 2월 28일,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낸 2.28 사건의 막이 오른 장소다. 하루 전날인 27일 천마다방 앞에서 담배 좌판을 깔고 영업하던 린쟝마이라는 여성이 수사원의 개머리판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분노한 민중들은 길가의 돌을 주워 수사원과 군인들을 향해 던졌다. 당시 그녀는 치료를 받고 몸을 피했지만, 역사의 거대한 파도는 걷잡을 수 없었다. 명, 청 시대 대만으로 건너온 본성인들은 일본어와 민남어를 사용했기에 일제 패망 전후 대륙에서 넘어온 외성인들과는 말도 통하지 않았다. 국민당 정부는 외성인들을 중용했고, 본성인들은 또 다른 지배자에 대항했다. 당시 천이 행정장관은 언론·집회·결사의 자유를 요구하는 민중 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대륙의 패권을 놓고 공산당과 싸우고 있던 장제스(장개석)는 2개 사단을 대만에 파견했다. 그들은 본성인에게 무차별 학살과 약탈을 자행하였다. 섬 전체가 초토화됐고 수만 명이 희생당했다고 한다. 제주 4.3 항쟁과 닮은꼴이다.

 

 

국민당 정부는 49년부터 87년까지 무려 38년 동안 계엄령을 지속했다.

암흑의 시기였던 것이다.

 

“그 역사의 무게는 쌍둥이빌딩 벽에 박혀있는 ‘천마다방’ 표기 위에 묵묵히 눌려 있다.”

 

(책 p52)

 

 

 

 2.28 기념공원 한켠에 자리한 2.28 기념관에는 당시 처참했던 살육의 현장을 생생히 재현하고 있다.

 

 

2.28 기념공원 안에 자리한 2.28 기념관에는 당시 처참했던 살육의 현장을 생생히 재현하고 있다. 기념관 정문 입구에는 대만의 한 원주민 단체가 그들의 요구사항이 담긴 피켓과 현수막을 내걸고 오가는 시민들에게 그들의 목소리를 알리고 있었다.

 

 

빌딩 숲에서 살아남은 차이루이웨(蔡瑞月) 무용학원.

 

 

 2.28 사건 당시 옥고를 치른 차이루이웨(蔡瑞月)는 대만의 최승희 같은 인물이다. 남편인 레이스위 교수는 2.28 사건 당시 공산당 분자란 죄목으로 고발당한 민주투사였다. 차이루이웨도 2년 이상 뤼다오(녹도)에 수감되기도 했다. 수감생활 중에도 다른 수감자들에게 무용을 가르칠 정도로 무용에 대한 열정이 넘쳤다고 한다. 그녀는 출옥 후에 중산북로 인근 일본인 기숙사를 개조해 무용학원을 차렸다. 오전 10시, 개방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한 북투어 일행은 주변을 돌아봤다. 담장 한 켠, 한 당외(재야)인사를 추모하는 노란색 리본들이 나무에 걸려있다. 건물 뒤쪽 작은 철문에는 무용수를 형상화한 작품이 인상적이다. 도심 빌딩 숲에 잠식될 위기에 놓였던 이 건물을 지켜낸 많은 이들의 노고가 머릿속에서 뜨거운 몸짓으로 되살아나는 듯했다.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와 대만 원서 『반민성시』.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의 대만 원서 제목은 『叛民城市(반민성시)』이다. 영화 <비정성시>와 너무도 닮은 이름이다.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1989년 작 <비정성시>는 1947년 2.28을 배경으로 임가네 4형제가 겪은 비극을 잔잔하게 다루고 있는 영화다. 말 못 하는 주인공 ‘문청’(양조위 분)은 기차간에서 몽둥이를 든 ‘대만독립’ 시위대와 직면해, 다급하게 한마디 말을 터뜨린다. “대만인!” 중국, 일본도 아닌 ‘대만인’. 4형제는 결국 비운의 죽음을 맞지만, 영화는 1947년, 그 역사적 기억과 상처를 흔들리지 않는 ‘등’으로 마무리한다.


 『반민성시』는 이러한 역사적 시간과 공간에 담긴 의미와 현실을 곳곳에 포진시키고 있다. 그래서 북투어 여행은 걷기와 함께 읽기가 반복되었다. 역사와 현실 사이에 아로새겨진 시공간을 헤매이며 퍼즐을 맞춰나가듯 그렇게.

 

 

‘박애특구’ 권력의 중추기관 속 중추 ‘중정기념관’

 

 

  장개석의 꿈은 원대하였으나 그 끝은 초라했다. 먹구름에 사로잡힌 중정기념당.

 

 

▲ 융캉공원 장개석 흉상.

 

 

 ‘박애특구’ 중정기념당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 노약자, 임산부를 위한 파란색 좌석 ‘박애석’이 눈에 띤다. 아마도 쑨원의 ‘두루 사랑하라’는 박애사상 때문에 박애특구로 불리는 듯 싶었다. 중정기념당은 입법 행정 사법 등 권력의 중추기관들이 밀집한 박애특구에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다.


매시 정각, 군인들의 교대식을 구경하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장제스(장개석, 본명 중정) 동상 앞에서 장제스의 권위를 상징하는 의식에 별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대만인들이 장제스를 보는 시각이 나쁘지만은 않아 보였다. 쑨원과 함께 부패한 청 왕조를 무너뜨린 애국심과 그의 효심 그리고 대륙에서 가져온 60여 만 점의 문화재, 철권통치를 하면서도 경제발전을 이룬 점 등등. 민진당으로 정권이 교체되었지만 곳곳에 장제스 동상과 흉상이 건재하다. 민진당은 자유광장으로 현판을 바꿔 달았지만 중정기념당 이름은 바꾸지 못했다. 반발 때문이다. ‘타이완 민주기념관이냐 중정기념당이냐’, 싸움은 끝나지 않아 보였다.

 

 거대한 스케일의 광장과 건물들은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아니 제압한다고 해야 맞겠다. 대륙통일의 원대한 꿈은 거대한 건물로 형상화되었지만 오늘날 중국인 관광객들은 실소를 머금을 뿐이란 역자의 설명이다. 꿈은 원대하였으나 그 끝은 초라한 몰골이었다. 장개석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정리해 놓은 중정기념당을 나서는 여행자의 마음은 답답했다.

 

텅 빈 광장에 우뚝 솟은 중정기념당 위로는 잿빛 하늘이 무겁게 드리워져 있었다.  

 

 

 

>> 4화에서 계속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 10점
왕즈홍 외 지음, 곽규환 외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