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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나라의헌책방'과 이반 일리치의 동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9. 17.

'이상한나라의헌책방'과 이반 일리치의 동거

[서평]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1990년대 초, 일본에 '북오프'라고 하는 중고서점이 생겼다. 정확히 일본의 장기침체 기간 '잃어버린 10년'과 시작을 함께 했고, 일본 불황의 골이 깊어질수록 중고 서점은 호황했다. 일본 여행의 필수 관광지라는 타이틀을 얻고는 일본을 넘어 해외에 진출도 하였다. 북오프가 생긴 지 정확히 20년째 한국에는 알라딘 중고 서점이 생긴다.

 

알라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2006년 한국에 진출한 북오프는 2014년에 철수했다. 한국의 알라딘은 일본의 북오프만큼 호황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헌책방' 사업이 약진하는 중이라 한다. 맞는 말인가? 이는 근시안적이다. 알라딘 중고 서점을 제외한 많은 헌책방들이 이전보다 빠른 속도로, 많은 점포들이 문을 닫고 있다고 한다.

 

와중에도 살아남는 소규모 헌책방들이 있을 것이다. 나름의 자타가 공인한 내공으로 대형 헌책방들이 지니지 못한, 지닐 수 없는 색깔을 지니고 살아남았을 것이다. 예전부터 익히 알고 있던 '이상한나라의헌책방'이 그 대표격이라 하겠다. 이 헌책방의 주인장인 윤성근 작가는 많은 책을 통해 책에 대해, 헌책방에 대해, 이상한나라의헌책방에 대해 이야기하고 의견을 피력하고 소식을 전해왔다. 그 또한 익히 알고 있다.

 

2년여 만에 '작가'로 돌아온 윤성근 주인장의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산지니)에는 그가 운영하는 '이상한나라의헌책방'(아래 이나헌) 운영 철학과 그가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갈 '생활'의 다짐이 담겨 있다. 그 중심엔 20세기 가장 탁월한 사상가로 불리는 이반 일리치의 사상이 있다. 이는 곧 저자의 사상이기도 하다.


 

 

▲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표지 ⓒ 산지니 
 

 

'이상한나라의헌책방' 주인과 이반 일리치의 사상

 

지난 2007년에 문을 열어 올해 2018년으로 11년차를 맞이한 '이나헌'에는 주인이기도 한 저자 윤성근의 철학과 다짐 그리고 그 기원인 이반 일리치의 사상이 곳곳에 담겨 있다.

 노동, 생활, 속도, 에너지, 자립, 자유, 전문가, 평화로 풀어쓰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굉장히 공감가는 항목들이다. 나뿐만 아니라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아픈' 사람들이 이에 공감하지 않을까. 개중에 더 와닿은 것들은 속도, 자립, 평화 등이다.

 

저자는 '이나헌'이 일터이고 돈을 벌어 생활하는 수단이지만 삶과 이를 대하는 태도를 실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고 강조한다. 사람은 누구나 고유의 속도를 가지고 있는데 현대사회는 무조건 '빠름'을 들이댄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병든다. '이나헌'은 주인장의 속도감에 맞춰 움직이기로 했다. 그렇게 오후 3시에 출근하고 주4일 근무를 하게 되었다. '당연히' 돈을 많이 벌진 못하지만, 돈보다 건강이 중요한 사람에겐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는 헌책방을 운영하면서 "이거 해서 먹고살 수 있냐'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비싼' 삶을 살진 못하지만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하지만 그는 빠듯한 삶을 살고 있다.

 

그때 나타난 게 어김없이 이반 일리치이다. 그는 말한다. 돈을 벌어 집을 구입해 가족과 떨어져 따로 거주하는 일차원적인 것이 자립이 아니고, 우리를 잡아매도록 구속하는 것으로부터 탈출해 그것에 더 이상 의지하지 않는 게 진정한 의미의 자립이라고 말이다.

 

 '평화'는 어떤가. 헌책방과는 너무 동떨어졌거니와 너무 거창해 보이는가. 그렇지 않다. 저자는 말한다. 평화는 우리가 흔히 갈망하는 정지된 세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축제와 같은 것이라고. 그는 그가 일하는 터전을 그런 풍경으로 만들고 싶다고 한다.

 

여기에 이반 일리치도 거든다. 평화에는 잠재력이 필요한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멋진 시를 써내는, 누군가를 마음속 깊이 사랑하는, 배웠던 게 아닌데도 엉뚱한 방식으로 어떤 일을 해내는 창의력 등이 그것들이다.

 

 

 

이반 일리치 사상의 구체적 사례들

 

 이반 일리치의 사상을 '이나헌'에 옮긴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여다보자. 이 작업은 비단 '이상한나라의헌책방'이라는 상점을 '한번 찾아가보고 싶다' 정도에서 멈출 게 아니라, 이반 일리치의 사상과 철학을 더 다양하게 생각해보고 접목해보고 실행에 옮기는 데 도움을 주고받는 차원에서 봐야한다. 그러면 우린 현대 사회의 여러 병폐를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 공동체적으로 또 보다 광범위하게 치료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주인공은 '이나헌'이나 '윤성근'이 아닌 '이반 일리치'라 하겠다.

 

2년 동안 꾸준히 헌책방을 찾아왔지만 그때마다 아무 말 없이 아무런 책도 구경하지 않고 사지도 않은 채 가만히 있다가 가는 여학생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저자가 말을 걸었을 때 돌아온 말은 헌책방이라는 장소의 비전을 선사해주었다.

 

 

"저는 여기 뭘 하러 오는 게 아니에요. 여기 오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 그래서 오는 거예요."

 

 

덕분에 책방은 책을 사고파는 곳이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사람이 책을 통해 고민할 시간을 주는 장소를 마련하는 거라는 생각을 이어갈 수 있다. '심야책방'이라는 이름의 밤샘영업 이벤트는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성황리에 계속되었다. 이 이벤트는 주인장이 계속해서 찾고 있는 '재미있는' 이벤트의 대표격이었다.

 

그는 사실 이벤트보다 타인의 삶과 생활에 더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들이 줄어들고 있고 그보다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삶의 여유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 때문이라고 한다. '재미'의 주체는 헌책방일 수도, 이벤트 그 자체일 수도, 주인장일 수도 없다. '재미'의 주체는 헌책방을 찾는 모든 이들, 다른 말로 현대사회의 개인이다.

 

저자는 확신할 수 없는 질문을 계속 이어간다. 진정한 자립, 가게를 운영하며 살아간다는 것, 버텨낸다는 것. 이런 것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을 찾기 위해 그는 끝없이 연구하고 실천에 옮기고 수정하고 나아간다. 인터넷으로 책을 팔지 않고, 간판과 명함이 없다. 한 번 오면 잊히지 않게 특이한 것들을 직접 만들며, 손님들을 믿고 무료 나눔 상자를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헌책방 주변 이것저것 지도'를 만들어 단순 가게 홍보 차원을 넘어 주변 공동체와 동네 그리고 마을의 공동 이익선의 확대를 추구하고자 한다. 다른 건 몰라도 10년 동안 하나는 확실히 알아냈다고 한다. 시간이 걸리고 더디게 움직이더라도 여럿이 함께 설 수 있는 자립이 필요하다는 사실 말이다. 그는 '그'가 아닌 '우리'의 자립을 위해 있는 자리에서 하루하루 노동할 것을 다짐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윤성근 지음, 산지니 펴냄, 2018년 6월)

 

오마이뉴스 김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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