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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 책/문학

그건 꽃이라기보다 상처같다::『방마다 문이 열리고』(책소개)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12. 12.

 

방마다 문이 열리고

 

 

최시은 소설집

 

 

 

▶ “그건 꽃이라기보다 상처 같다” 
    거칠고 복잡다단한 세계를 구현하다

 

최시은 작가의 첫 소설집. 행복해 보이기만 하는 세상의 문들이 열린다. 이번 소설집 『방마다 문이 열리고』에서는 폭력, 상처, 가난, 아픔 등 저마다의 삶 속에 녹아 있는 말 못할 고통의 시간들을 들여다본다. 냉동창고, 토막살인, 강간범, 개장수, 탈북 여성, 누에, 복어 등 날것의 소재들이 현장감 있게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데, 그만큼 작품 세계가 단조롭지 않다. 딸을 강간한 두 번째 남편을 고소하지만, 막상 생계를 위해 그의 항소를 도울 수밖에 없는 여자나 토막 살인범일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안고 그의 앞에 스스로 걸어들어 가는 여자와 같이 복잡하게 얽힌 삶의 비릿한 냄새를 쫓아간다. 섬세한 묘사로 완성한 최시은 소설집 『방마다 문이 열리고』는 삶의 거친 숨결을 느끼며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작품들로 가득하다.

 

 

▶ 누에고치의 고요한 웅크림과
    냉동된 분노가 살아나는 활낙지의 발작

 

총 7편의 소설에는 쉽지 않은 상황 속에 놓인 인물들의 일상을 그려내고 있다. 성범죄자 아들과 함께 사는 엄마(「누에」), 남자 하나를 두고 싸우다 임신한 상대 여자를 만나자 말없이 돌아서는 여자(「3미 활낙지 3/500」), 자궁 적출 수술을 받은 뒤, 소설을 쓰는 여자(「환불」), 노부모와 함께 살며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여자(「그곳」) 등 녹록지 않은 환경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특히 모든 소설에서 현장을 취재한 듯 꼼꼼하게 서술된 배경들과 각 인물의 상황들은 마치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작가 최시은은 긴장감 있게 작품을 끌고 가다 특정 부분에서는 숨 고르기를 하는데, 이는 소설 「환불」과 「그곳」에서 특히 잘 나타난다. 서사와 서사 사이에 사유의 공간을 적절히 배치해 작품의 배경과 상황, 인물에 대한 이입을 돕는다. 더불어 「가까운 곳」에서는 소설 초반, 동네에 풍기는 이상한 냄새와 이것이 강씨의 살인 때문임을 빠른 전개로 풀어나가다 중후반, 선생님인 정희의 이야기로 옮겨오면서 소설은 속도를 조절한다. 마치 떨리고 초조한 정희의 발걸음을 따라가듯 말이다. 이렇듯 작가는 능수능란하게 작품의 속도와 긴장감을 조절하며 독자들이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유인한다. 그리고 빠져들 수밖에 없는 작품들 속에는 행복해 보이는 표면 아래에 자리한 삶이 보인다.

 

 

▶ 아픔 속으로 한없이 들어가,
    사회의 구조와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

 

소설집 『방마다 문이 열리고』는 삶의 어둠을 거둘 수 없게 만드는 사회구조와 인간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본연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소설집의 첫 포문을 여는 「그곳」은 제대로 된 직장 없이, 나이 많은 부모와 살아가는 중년 여성의 자전적 경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품 속 주인공은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돈을 벌고, 사회가 매달 던져주는 생활비를 받으며 생계를 유지한다. 그녀에게 삶은 희망이라는 빛보다 견뎌내야 하는 하루의 무게에 더 가깝다. 작가 최시은은 현실적 묘사와 상황 설정들을 통해 가난과 삶의 무게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다. 소설 「잔자바르의 아이들」은 사회적 낙인에 직면한 개인의 무력함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두 번째 남편이자 함께 사는 남자가 딸 소희를 성폭행한다. 아동성폭행범으로 체포된 남자, 하지만 그녀는 그의 형량을 낮추기 위해 변호에 나선다. ‘악’마저도 무너지게 만드는 ‘사회의 구조’는 무엇인가? 이 작품은 ‘가난’에 따른 범죄의 되물림, 처벌과 해결 과정에 내재된 사회구조적 모순을 보여준다. 소설 「누에」는 전자발찌를 착용한 성범죄자 아들과 살아가는 중년 여성의 일상을 담담한 고백체로 전하는 작품이다.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소재를 통해 범죄의 안과 밖을 들여다보고, 더 이상 행복이란 단어를 끌어 올 수 없는 한 개인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소설 「가까운 곳」은 산에서부터 마을로 내려오는 이상한 냄새로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은 멧돼지가 죽어서 나는 냄새라는 강씨의 말을 믿고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는다. 한편 불량 학생으로 낙인찍힌 지은이 더 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게 되자 담임인 정희는 지은의 학적을 정리한다. 그날 이후 밤마다 이상한 꿈을 꾸는 정희. 그러던 어느 날 퇴근 무렵 아이들의 체험활동수업 결과물을 실고 온 강씨와 마주친다. 외진 마을에서 일어나는 살인과 실종. 소설은 자극적 소재와 스릴러적 분위기를 통해 인간 내면의 폭력성에 집중하며 인간의 본성에 대해 깊게 들여다본다.

 

 

 ▶ 여성과 여성, 그리고 여성

 

소설집 『방마다 문이 열리고』의 작품들은 대부분 중년의 여성이 서술자로 등장한다. 자궁 적출 수술을 받은 여성(「환불」), 아이를 잃은 여성(「3미 활낙지 3/500」), 완벽을 추구하는 남자의 비위를 맞추는 여성(「요리」) 등 각기 다른 사정으로 궁지에 몰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환불」은 자궁을 들어낸 이후 소설 쓰기에 매달리기 시작한 중년 여성의 특별한 여름을 묘사한 작품.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똑같은 일상 속에서 여성성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중년 여성이 소설을 통해 자신을 다듬어 가기 위한 작은 움직임을 보여준다. 「3미 활낙지 3/500」의 정옥은 선천성 폐쇄부전증을 갖고 태어난 아이를 낳는다. 3년 후 아이를 잃은 정옥은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나고, 이후 지금의 사장을 만난다. 하지만 사장의 여자라고 자신을 밝히는 사람이 임신한 배를 안고 걸어 들어온다. 정옥은 그 여자를 보자 자신도 모르는 감정이 마구 솟구친다. 이 작품에서는 아픔을 제대로 달래지 못한 채 생을 이어가야 했던 여자의 힘겨운 몸부림이 느껴진다. 「요리」는 성적으로 착취되는 동시에 그 착취를 일삼는 남성의 권력을 비꼬는 여성의 자조적인 고발이다. 요리, 분위기, 음악, 여자. 완벽을 추구하는 남자의 말투에서 가공된 우아함이 떨어진다. 남자는 자신의 입맛대로 만들어지는 요리처럼 여자와의 잠자리 또한 자신의 고상한 취향에 맞춰져야 한다. 여자는 남자의 요리와 잠자리에 감탄사를 내뱉지만 사실 한 번도 배가 부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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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최시은

1970년 경상북도 울진에서 태어났다. 그곳 어촌들 대부분이 그렇듯 내가 태어난 곳도 농업과 어업을 함께했다. 그랬으므로 바다와 산은 자연스레 나의 성장 배경이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부산으로 이주, 영도 산동네에서 지독히 가난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때 어렴풋 작가를 꿈꾸었으나 포기. 대학에서 문학을 본격적으로 공부, 잡다하게 책을 읽었다. 마흔에 소설 공부를 다시 시작. 2010년 진주가을문예로 등단. 그러나 여전히 소설은 어렵다. 부산작가회의, 부산소설가협회 회원이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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