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구 범일동에 있는 삼성극장이 드디어 철거된다고 하네요. 이름에서 짐작하시겠지만 1959년 개관한 아주 오래된 극장으로 부산에 남아 있는 유일한 단관 극장이었습니다.
삼성극장 성인영화관. 영화 '친구'의 촬영무대로 유명한 삼일극장이 바로 옆에 있었는데 2006년 폐관되었습니다.
중학생 시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영화를 이 곳에서 단체관람한 기억이 납니다. 제 생애 처음 가본 극장인지라 개인적으로 추억의 장소이기도 한데요, 어쩌다 이 앞을 지나칠때면 '아직도 버티고 있네' 하며 감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는데, 드디어 사라지는군요. 도로확장공사 구간에 들어서 철거한다고 합니다.
'기억할 공간이 없다면 지나간 시간도 무화된다'고 누가 그랬는데, 과거를 추억할 장소들이 하나둘 사라져가니 좀 아쉽습니다.
아래는 2006년 출간된 『이야기를 걷다-소설 속을 걸어 부산을 보다』(조갑상) 중 한 대목입니다. 책에 들어갈 사진들을 찍느라 부산 이곳저곳을 발바닥에 땀나도록 돌아다녔던 게 벌써 5년 전이네요. 그때만 해도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공간들이 제법 남아있었는데, 지금은 또 얼마나 사라졌을지요...
이제는 범일성당과 데레사여고를 지나 간선대로로 내려온다. 그런데 길 건너편의 저 우중충한 건물 두 채는 도대체 무엇이냐. 주위에 단층짜리 가구가게들뿐이니 낡은 두 건물은 눈에 더 크게 들어온다. 삼성극장과 삼일극장이다. 비오는 날이라 행인도 드물고 영화관 앞에는 나 혼자만 서있다. 성인영화를 2본 동시상영으로 돌리고 있다 해도 대형 복합영화관이 판을 치는 지금껏 용케 살아남았다 싶다. 그리고 이 부근에 또 하나의 극장이 있다.
동명목재, 성창합판 같은 합판공장이 잘 돌아가고 국제고무, 진양고무 등 신발산업이 번창했을 때, 부산서 ‘쑈’ 하면 그래도 보림극장이었다. 건물의 정면 벽에 걸린 간판은 무슨 서부영화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입구를 찾을 수 없다. 1층은 ‘맥도날드’인데 그 안으로 영화관 출입구가 있을 리도 없고, 옆을 보니 ‘보림콜라텍’이라 쓰여있다. 그러니까 보림극장은 간판도 거두지 않은 채 없어진 것이다. 배신감? 두 형제는 가난하고 초라할지언정 길 건너편에서 굳건히 버티는데 콜라 팔아 아이들 춤추게 하고 햄버거나 씹게 하다니.
- 『이야기를 걷다』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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