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이다.
누군가에겐 일상적으로 흘러가는 하루일테지만, 누군가에게는 잊기 힘든 기념일일 것이다.
특히 지금부터 이야기 할 다섯 여성들에게는.
#RiceBunny🍚🐰
귀여운 외형의 해시태그이지만 그 의미마저 귀엽지는 않다. 이 해시태그는 미투를 검열하는 중국 정부를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었다. 중국의 발음을 이용한 #미투. 왜 중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이모티콘을 사용하여 미투 운동을 표현하게 되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6년 전으로, 어쩌면 그보다 먼 과거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2015년 3월 7일. 세계 여성의 날을 하루 앞두고 다섯 명의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체포되었다. 그들은 세계 여성의 날에 성희롱 예방 스티커를 나누어 줄 예정이었고, 그 활동이 발목을 잡혔다. 다섯 명의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에게는 집요한 심문이 이어졌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의학적 조치도 받을 수 없었다. 고작 스티커 나눔에 중국 정부는 그들에게 반정부적이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왜 중국에서 페미니스트를 검열하고 통제할까.
중국 정부는 사회 정치적 불만을 최소화하고 미래의 숙련 노동자 세대를 생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전통적인 젠더 규범을 계승하려 하며, 여성들을 순종적인 아내이자 엄마 그리고 집 안에서 아기를 양육하는 역할로 전락시킨다. - p.13
『빅브라더에 맞서는 중국 여성들』 에서는 중국이 왜 페미니즘을 배척하는지에 대한 전반적 해석을 내놓는다. 중국에서 여성은 한 남성의 소유물이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소유물, 그리고 결혼을 하면 남편의 소유물로 전이된다. 여성의 역할을 다한다는 뜻은 아이를 낳는 것뿐, 그 외에 여성은 소유물로써 집안일을 전담하고 남성의 폭력을 받는다. 남성이 어떤 불합리한 일을 저지른다 하더라도 경찰은 남편의 말을 잘 듣고 참아보라 말할 뿐이다.
이 같은 시대착오적 통념에 정면으로 맞서며 다섯 명의 페미니스트, #페미니스트파이브 는 활동을 시작한다. 그들은 2012년 웨딩드레스에 가짜 피를 묻히고 거리를 활보한다. <사랑은 폭력의 핑계가 아니다>라고 쓴 팻말을 들고 가정 폭력에 반대하는 시위를 한 것이다.
공산당이 창단되던 시기 마오쩌둥이 주장하던 사회에는 분명 남녀평등이 존재했다. 역시나 가정에서 아버지와 남편에게 맞는 것이 당연하다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여러 페미니스트들과 함께 목소리를 높였지만, 농민을 기반으로 한 계급 혁명으로 전환한 이후 가부장적 농민 남성들의 지지를 잃지 않기 위해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는 전복되었다.
표면적으로 남녀평등을 내걸고 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정부는 페미니즘을 포기하였고, 그 결과는 페미니스트파이브를 감금하기에 다다랐다. 그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여성은 사용되었고 또 버려졌다.
또한, 중국은 여성의 생식 능력을 나라에서 통제하기에 이른다. 인구 과다를 우려한 정부는 198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여성의 자궁에 강압적으로 피임기구를 삽입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중국의 저출산 문제로 인한 고령화와 노동력 감소를 우려되자 피임기구를 제거하겠다 발표한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러한 정부의 발표는 중국 내에서 여성의 위치를 여실히 보여준다. 남성의 소유물로써 정부의 생식기로써 자리하는 여성은 한 개인으로 의미를 갖지 못한다.
2013년 당시까지 중국의 형사법은 아동 강간을 “미성년자 매춘부와의 성관계”와 동일하게 분류하고 있었다. 수많은 피해자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게 낙담시키는 피해자-혐오의 언어인 것이다. -p.207
정부는 가해 남성이 저지른 폭력의 결과를 피해 여성에게 전가하기 급급하다. 성폭력을 당한 아동에 대해 ‘미성년자 매춘부’라 말하는 중국 사회에서 여성과 아동들은 자신의 신체를 보호하고 보호받을 수 없다. 용기를 내 사실을 알린다 하더라도 수치스러운 과거라며 부모가 자살을 꾀할 뿐이다.
“모든 중국 남자들은 중국 여성이 이미 대단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중국에는 여성에 대한 편견이 없다! 아직도 평등을 얻어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p.66
감히 이 질문에 답하자면, 그들의 말 이외에 모든 것들이 불평등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파이브가 공안에 감금된 사건은 2015년에 일어났다. 불과 6년 전, 비행기로 3시간이면 도착하는 중국에서 20대의 젊은 여성들이 부당한 심문과 감금 을 당했다. 책으로 읽으면 어쩐지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안다. 이 일을 겪은 페미니스트들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30대의 페미니스트로 활동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이 되면 전 세계에서 빵과 장미를 나누어 주는 행사를 진행한다. 1975년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이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고 외쳤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빵은 남성과 비교해 저임금에 시달리던 여성의 생존권을, 장미는 투표를 할 수 있는 참정권을 뜻한다.
추측하건대 100년이 지나면 그 가치는 완전히 변할 것입니다. 더구나 수백 년이 지나면 여성은 보호받는 성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나는 집 현관으로 들어서는 길에서 이렇게 생각했지요. 그렇게 되면 당연히 여성들은 한때 그들을 거부했던 모든 활동과 고된 일에도 참여할 것입니다. 하녀는 석탄을 나를 것입니다. 가게 여점원은 엔진 기관을 운전할 것입니다. 여성이 보호받는 성이었던 시절 당시의 기존 사실에 근거해 가정했던 전제는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100년이 지난 지금 버지니아 울프가 그리던 세상은 아직 오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수백 년이 지난 후 어쩌면 여성이 모든 속박과 편견을 벗어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화면으로나마 빵과 장미를 건네고 싶다. 당신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다. 그리고 빵과 장미를 달라 외쳤던 수많은 사람들과, 빵과 장미를 건네준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던 그런 세상을 기다리며 나는 빵과 장미를 건넨다. 당신도 누군가에게 빵과 장미를 건네주었으면 좋겠다.
🌹🥖👩
알라딘: 빅브라더에 맞서는 중국 여성들 (aladin.co.kr)
<참고자료>
[한겨레 신문] 깨어난 중국 여성들, 빅브라더에 맞서다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펭귄클래식코리아
'독서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는 공간을 상상하고 기록한다 - 『이야기를 걷다』서평 (0) | 2021.04.09 |
---|---|
사람은 향기로 기억된다 - 『사포의 향수』서평 (0) | 2021.03.29 |
선택과 자유_에리카 밀러, 이민경 역『임신중지』 (1) | 2020.12.24 |
독서를 통한 소통 (0) | 2020.05.18 |
한나 아렌트의 세 번째 탈출과 탈학습 (2) | 2020.04.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