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루쉰을 생각한다.
한국 진보·좌파의 환멸을 미디어로 접하며 먼저 떠올린 인물은 루쉰이었다. 한국 사회 민주화의 도정에 영향을 준 사람으로 나는 루쉰(사진)을 우선으로 두고 싶다. 루쉰의 저작에는 노예라는 말이 등장한다. 루쉰에게 이 말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삶과 맞닿은 현실이었다. 루쉰의 참인간 세우기 사상은 개체의 정신 자유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마지노선을 고수한다. 인간이 되느냐 노예가 되느냐를 가르는 최후의 마지노선이다.
한국 출판계에 루쉰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출판사 그린비가 2010년부터 루쉰의 저작을 전집으로 출판하고 있고 루쉰 사상을 이어받은 후계자의 책이 최근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출판되고 있다. 먼저 그린비의 작업은 대형 출판사의 시도가 아니라는 점에서 존경을 표하고 싶다. 완성 때까지 독자들이 관심을 보여주면 좋겠다.
일본의 루쉰 연구자이며 사상가인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 2권이 지난해 말 나왔다. 산지니와도 인연이 있는 젊은 연구자 윤여일이 번역했는데, '고뇌하는 일본' '내재하는 아시아'라는 제목의 이 책은 루쉰의 말에 다시 시대의 숨결을 불어넣은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루쉰 연구자로는 왕후이와 첸리췬을 거명할 수 있다. 왕후이는 중국을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항상 논쟁의 중심에 있는 지식인으로 우리에게 알려졌다. 중국사회과학원에서 루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칭화대 인문학부 교수이며 '새로운 아시아를 상상하다'(2003), '죽은 불 다시 살아나'(2005), '아시아는 세계다'(2011)가 국내에 번역됐다. 루쉰에 관한 언급이 부분적으로 나오고 박사논문이 번역 중이라고 하니 기대된다. 첸리췬은 베이징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퇴임했다. 올해 '내 정신의 자서전' '망각을 거부하라' 등 저서 2권이 번역됐다.
루쉰은 자신이 전통 의식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근대를 추구하는 불완전한 사람이라면서, 지식인은 누구나 자신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자신의 위치와 자신이 할 일을 겸허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역사적 중간물 의식은 암흑의 갑문이라는 비유에 잘 드러나 있다. 즉 캄캄한 성 안에 아이들이 갇혀 있고, 육중한 갑문은 서서히 닫히는데 그런 와중에도 어떤 용사가 갑문을 어깨로 지탱하며 아이들을 전부 햇빛 찬란한 성 밖으로 탈출시킨 후 자신은 암흑의 갑문에 깔려 죽는다. 여기에 지식인의 희생정신이 포함돼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과거의 모든 낡은 인습에 반항하고 인습을 스스로 감당하면서 참인간 세우기에 매진한 루쉰 정신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왕후이와 첸리췬은 역사적 중간물 의식을 확대해 현실과 역사를 인식하는 비판적 지식인의 기본 특징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망각을 거부하라'는 중국의 4대 금기 사건 즉 1957년 '반우파운동'과 이후 일어난 '3년 대기근', '문화대혁명'과 1989년 '6·4 톈안먼사건' 중 1957년을 충격적으로 조명한 책이다. 한국전쟁의 결과 한반도에 이승만과 김일성 체제로 왜곡된 체제가 자리 잡은 것처럼 중국도 1957년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논의하다가 좌절되는 해임을 생생히 전달하며 현 중국 체제의 문제점을 고민하게 하는 저서이다.
루쉰 후계자들의 용감한 저서는 우리의 현실 과제에 고민하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작은 불빛이 될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산지니 출판사 대표 강수걸
국제신문 기사 원문 >>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20602.2201520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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