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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산지니안 월드

도서정가제 정립을 위한, 한 독자의 반성(을 권하는)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8. 22.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딨어?’ 라고 열렬히 외치던, 'XX 파크, NO24' 즐겨찾기하던 한 독자의 반성(을 권하는)글

-도서정가제 정립을 위하여-

 

 

 

 

 

 

그렇습니다

에누리 없는 장사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입니까. 한 권 사도 무료배송, 많이 사면 깎아주고, 단골 되면 얹어주는 장사꾼이 좋은(?) 장사꾼입죠. 고로 인터넷 서점에서의 책 구매는 더 물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당연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소비자적인(또한 개인적인) 입장에서의 소견입니다만.

좋습니다, 동네서점에서 산다고 쳐요. 무거운 책 집에 낑낑대며 들고 와야 되지, 그나마 애들 문제집이나 베스트셀러 같은 책 말고는 주문해서 일주일 기다려야 책 오지, 마일리지라고 적립해주는 거 인터넷 서점 적립률 반도 못 따라가지. 좁은 동네서점은 눈치가 보여서 일부러라도 큰 서점 귀퉁이 가서 책 보게 된단 말이죠(이것도 옛날 얘기, 요즘엔 안사면 책 보지도 못하게 비닐로 포장된 책도 나옵니다).

뭐 그렇다고 동네서점 아예 쓸모가 없는 건 아닙니다. 책 사는 일 말고도 동네서점에서 할 건 많죠. 신간 나왔나 꼭 확인하고, 유명 작가의 자기계발서 제목 정도 스캔해주고, 잘 찍는(?) 토익문제집 기말고사 페이지 정도는 훑어줘야 합니다. 맞습니다. 이렇게 하고는 집에 와서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책 주문하는 거죠.

실용서적이나 읽는 주제에 헛소리 하지 말라구요? 저도 독서 좀 합니다. 꽤 고매하다구요. 얼마 전에 조선일보 인터뷰에 나왔던 움베르토 에코 책도 신간 나오면 꼭 구매했고, 촘스키 책도 꽤 읽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나름 시도 좀 읽고, 친구들한테도 생일 때면 책 선물 합니다. 계속 이렇게만 가면 반성문이 아니겠지요, 네네, 맞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좀 놀라기 시작했다는 이야깁니다.

 

재작년부터였습니다

당시 우리 동네 서점 두 군데가 문을 닫았어요. 동네뿐만 아닙니다. 거, 왜 있잖아요. 서면에 있던 동보서적이랑 경성대 앞에 면학도서까지 폐업한 일요. 부산일보던가? 서점 폐업을 소재로 신춘문예에 당선된 소설도 있었어요. 진짜 폐업한 게 맞는지 확인하려고 서점 앞까지 갔던 적도 있습니다. 이제 전부 구 동보서적, 구 문우당서점 앞이라고 버스 정류장 이름도 바뀌었지요. 약속장소로 동보서적 앞은 마치 고유명사 같은 장소였는데 참 씁쓸했습니다.

그러고 얼마 지났을까, 동네서점 없어지니 참 불편하더군요. 도서관은 죄다 멀지, 신간 나와도 인터넷 서점에서는 열 페이지 가량만 맛보기로 보여주는데, 내용 궁금하면 그냥 사라 이 얘기죠, 뭐. 편해서 계속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했지만 사실 책이란 게 제목만 보고 내용을 파악하기가 어디 쉽습니까.

최근에야 안 사실이지만 동네서점이 망한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오게 되어있었습니다. 당장에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집근처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십쇼. 또 할인경쟁으로 인해 인터넷서점에 반값으로 납품요구 당하다 문 닫는 중소출판사는 모르긴해도 수십 군데는 될 겁니다. 이렇게 되면 지역 출판 관련 인프라는 모두 무너집니다. 당연, 이쪽으로 취업을 희망하는 우리 아이들은 모두 수도권으로 가야겠지요. 아마 댁의 자녀들이 지역에서 출판업에 종사 안 한단 보장은 없을 것입니다(출판 관련 직업은 편집자, 디자이너, 회계와 물류담당, 인쇄 등 다양한 직업군을 가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출판마저 수도권집중화가 되면 다양한 시각에서 쓰여진 좋은 책을 나기 힘들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미국 내 출판사는 잡지사나 신문사, 방송사와 M&A가 일어나 그야말로 거대 미디어기업이 됐습니다. 미국 출판사를 영국이나 독일이 인수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미디어 재벌들의 세력이 커지면 이른바 ‘여’당만 있고 ‘야’당은 없는 무법천지가 될 것입니다. 지금의 종합편성채널 같은 방송사 만드는 일은 아이들 소꿉장난에 지나지 않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침대가 가구(?)가 아니듯, 책은 소모품이 아닙니다

책이라는 건 문화산업의 근간입니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소비재로 보다가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 독과점이 생길 것이고, 피라미들(아무리 건강하고 올바른 생각을 하는 출판사일지라도)은 치어 죽는다 이 말입니다. 거창하게 문화 어쩌고 갖다 댈 것도 없습니다. 옷가게 안에만 들어가도 이미 가격은 다 정해져있는데 책은 대체 어디까지 할인을 하는 건지, 신간을 반값으로 팔고 나면 그 책 만들었던 출판사나 인쇄소, 유통업체나 판매하는 곳은 남는 게 뭐가 있습니까?

블록버스터다 뭐다 해서 영화는 둘이서 보면 만 8000원이 넘는데도 잘들 보면서 책은 싸게 팔고, 사려고 난리냐 이 말입니다.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 서점 애용하던 양반이 갑자기 왜 생각이 바뀌었냐고요? 네, 이러다가 우리 아이들이 읽을 책과 우리 아이들이 만들어갈 미래가 너무도 어둡지 않을까 하는 우려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사유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 사유를 통해 반성과 성찰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책 한 번 읽으면 모두 갖다 버리나요? 책장에 오래도록 두고 꺼내어 봅니다. 누구도 책을 ‘사용 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책의 가치는 단순히 종이와 인쇄기, 유통비로 책정할 수 없습니다. 누가 타인의 사유와 생각에 가격을 매길 수 있겠습니까.

그럼 지금부터 무얼 하면 되냐구요? 모든 출판사와 독자가 힘을 모아 도서정가제를 정립하고, 대형 서점, 인터넷 서점보다 동네서점을 이용해야 합니다. 물론 제도가 정립되기 위해서는 정부 또한 K-POP 한류문화 육성산업에 5000억원 투자할 돈 있으면 동네마다 작은도서관 설립 늘리고, 도서보급과 관련한 예산을 늘려야 겠지요(출판노동자와 출판노동의 열악한 환경 개선을 위해). 뿌리가 부실한 나무는 금방 뽑히기 마련입니다. 바닥을 드러나 창피당하기 전에 문화를 육성하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합니다.

술 먹고 쓰는 글도 아닌데 중언부언, 서론이 엄청 길어졌군요. 그러고 보면 교환가치로만 평가해서 빛을 보지 못한 것들이 참 많습니다. MP3 불법 다운으로 사라진 음반처럼, 책도 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기 힘든 희귀품이 되지 않길, 그림책을 좋아하는 딸아이와 식물도감을 즐겨보는 아들녀석과 함께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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