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저자와의 만남 | 이벤트

'부산의 스토리텔링,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릴레이포럼이 열립니다.

by 산지니북 2012. 9. 21.

 

 

사진 원본은 '제2회 부산광역시 공식 블로그 '쿨부산'스토리텔링 공모전' 포스터.

 

 

21일 오후6시30분 부산일보 소강당에서 ‘부산의 스토리텔링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릴레이포럼이 열립니다. 부산문화재단과 소통과 창조를 위한 문화포럼이 공동 주최합니다.

 

포럼 발제문 일부를 올립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스토리텔링, 문제는 장소성이다

 

 

최학림(부산일보 논설위원)

 

 

 1. 스토리텔링에서 문제는 장소성이다

 

 1-1. 지금 우리가 말하는 스토리텔링은 도시의 문화적 재생과 상당한 관련이 있다. 그때의 스토리텔링의 핵심은 장소성이 아닐까 한다. 장소성은 뭔가? 인간의 경험, 사연, 얘기가 녹아들 때 추상적인 공간은 비로소 장소가 된다. 우리 집과 내 고향인 그곳, 어릴 적 뛰놀았던 골목도 중요하다. 하지만 거기에서 나아가 한 세대와 한 도시의 경험이 총체적으로 녹아 있는 곳이 될 때 비로소 장소성이 창조되고 드러난다. 짧은 시간에 개인적으로 형성되는 장소감(sense of place), 상대적으로 긴 시간에 형성되는 집단적인 장소정신(spirit of place)이 있다고 하는데 장소성은 장소감과 장소정신이 사회적 의식으로 승화될 때 생겨난다고 한다.

 

 1-2.장소성에서의 장소는 내 기억이 스쳐간 곳이 아니라 <내 기억+알파>가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면서 그 장소가 간직한 본원적 성격, 핵심적 성격이 드러나야 한다. 부산의 장소를 모티브로 한 20편의 짧은 소설을 실은 소설집 ‘부산을 쓴다’(2008, 산지니)를 예로 들 때 소설가 정인의 짧은 소설 ‘마지막 인사’는 권고사직당한 남편과 그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다루고 있는데 범어사의 장소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불교, 생의 이별, 삶의 갈림길을 내용으로 한 이 작품은 마치 신라 향가 제망매가 같이 애잔한 제망부가(祭亡婦歌)로 읽히는데 불교적인 제망부가는 범어사의 장소성에 닿아 있다.

도시의 문화적 재생과 관련한 스토리텔링에서 장소는 단순한 배경이나 색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장소는 인간의 삶, 혹은 집단기억, 사회적 의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장소성에 대한 궁구와 고찰이 필요하다.

 

 

2. 장소성의 핵심은 역사성(시간성)에 있다.

 

공간에는 두께가 없지만, 장소에는 두께가 있는데 그것은 시간의 두께이다. 도시 부산의 장소성은 부산 역사를 통찰할 때 제대로 알 수 있다. 부산의 지금을 만든 3가지 획기적 계기가 있는데 그것은 임진왜란, 개항, 한국전쟁이다. 여기에서 부산의 많은 장소들이 태어났다. 부산을 제대로 스토리텔링할 때 3가지 계기의 진폭을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역사성, 시간성을 거론하는 것은 과거회귀적인 것은 아니다. 찰스 랜드리는 “과거의 자원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부여한다”고 했다.

 

2-1. 2008년 임진왜란 관련 동래읍성 해자 발굴 때 칼에 베어진 두개골, 조총이나 활에 맞은 두개골, 둔기에 함몰된 두개골 등이 나와 많은 이들이 울었다. 그 섬뜩한 두개골이 품은 아픈 소리들은 이제껏 태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정태규의 짧은 소설 ‘편지’가 있다. 그것은 400년 전 임란 당시 남편과 아내의 편지 두 통의 애잔한 사연을 가상 소설화한 이 아름다운 작품이다. 동래읍성의 장소성을 잘 드러낸 이 작품은 팩트와 픽션을 결합한 팩션으로 사실보다 진실에 육박해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케 한다.

 

2-2. 조갑상의 단편 ‘누군들 잊히지 못하는 곳이 없으랴’는 작가가 “부산의 대표적인 근대 건축물인 남선창고가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 상실감에 작정하고 썼다”고 한다.2008년 부서져 없어진 남선창고는 구한말과 일제시기 부산과 한국 근대사의 물류업과 수산업의 원형 격인 창고였다. 조갑상의 작품은 1930년대 조선을 떠들썩하게 했던 실화 ‘조선인 오모니 살인사건’(변마리아 살인사건)이란 실화를 소재로 남선창고에 스며든 이들의 숨결까지 그려낸 아름다운 작품이다. 특히 일제시기 부산의 지명과 장소, 당시 풍물을 복원한 공력의 수작이다. 이런 것이 부박한 것 같은 우리 삶이 부박하지 않은 이유다.

 

 

3. 장소성은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장소성에 방점을 찍고 있는데 ‘그러면 장소가 주인공이냐, 사람은 뭐냐’ 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삶이라는 칙칙한 미망의 바다를 탐색하듯 항해하는 현실의 인간을 배제한 채 장소성에만 얽매여야 하는가, 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현실의 인간을 전면에 등장시키면서 장소성을 창조하면 된다.

 

3-1.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가 그런 경우다. 매년 6월 16일에는 율리시즈의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의 이름을 딴 블룸스데이 행사가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리는데 참가자들은 소설 속 블룸의 행로를 따라 음식을 먹거나 길을 걷는 이벤트를 벌인다. 조이스는 파리, 취리히, 트리에스테를 돌아다니며 썼지만 ‘율리시즈’를 더블린 안내 지도로 사용해도 될 정도로 그 지리를 아주 정확하게 묘사했다. 그러면서 천문학 정치 철학 음악 신학 셰익스피어, 먹고 마시고 싸고 섹스를 하는 등 모든 것을 등장시키는데 그것은 어떤 주제와 대상이라도 담을 수 있는 무한한 그릇 그 자체인 소설의 창조인 동시에 더블린이라는 장소의 새로운 창조였다. 작가들이여, 창조하라, 며 부산은 그런 창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