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전도사로 있던 김형기가 아이디어를 처음 냈다. 당국 감시와 탄압이 심해 공개 강연이나 모임이 어렵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협동조합이란 형태는 '공개적, 합법적이며, 도덕적이고 온건'한 조직체로 문화운동과 시민운동을 한 그릇에 담을 수 있었다. 뒤이어 최준영 김희욱 등이 가세했고 드디어 1977년 말 부산양서협동조합(이하 양협)이 만들어졌다.
양협은 이내 독재의 부당함을 일깨우고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통로가 됐다. 재야인사나 지식인 강연도 들을 수 있었다. 2년 만에 회원만 600여 명으로 늘었고 대학생 시민 주부에 고교생까지 가입할 정도였다. 그렇게 양협 운동은 부산 민주화운동이 확산되는 구심점이 돼 갔고, 이후 참여 인사들은 부마항쟁을 비롯한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다.
이 양협 운동이 싹 트고 퍼져 나간 곳이 바로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의 중부교회였다. 또 그 중부교회가 부산의 명동성당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부산 민주화운동의 대부로 평가되는 고 최성묵 목사가 정신적 지주로 버티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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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나그네처럼 살아야 한다." 늘 주변에 했다는 말 그대로 최 목사 스스로 청빈의 삶을 살았다. 저자는 "주머닛돈은 언제라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줘 버렸다. 그 때문에 목사님은 물론이고 사모님과 가족도 고생했지만 전혀 내색을 안 했다. 민주화운동에 몸 담은 사실뿐 아니라 삶 자체도 모범이 되는 종교인이었다"고 평가했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 있는 중부교회
최성묵 평전 - 차성환 지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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