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의 과거청산과 민주주의
노용석 지음/산지니/18,000원
올해 2월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에서 한국전쟁 시기 학살당한 국민보도연맹원들의 유해를 찾기 위한 발굴 작업이 펼쳐졌다. 민족문제연구소, 한국전쟁유족회 등 민간단체들이 ‘공동조사단’을 꾸려서 한 일이었다. 이들은 단체 분담금과 후원회비, 시민 모금으로 재정을 충당했고, 첫 발굴에서 35구의 유해와 유품들을 찾아냈다.
2010년 말 해체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서 유해발굴팀장을 맡았던 노용석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인문한국(HK)연구교수도 공동조사단에 참여했다.
할 일을 잔뜩 쌓아두고 활동을 끝내버린 진실화해위는 우리 사회에서 ‘못다 한 과거청산’의 상징적인 이정표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국가를 강제할 수 있던 존재가 사라진 뒤, 과거청산의 과제는 다시 시민단체의 손으로 넘어왔다. 노 교수는 이 책에서 국외 사례를 통해 이런 우리의 현실을 곱씹는다.
지은이는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의 과거청산 경험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엘살바도르는 1980~81년 무장 게릴라 단체인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FMLN)과 정부군 사이의 내전을 겪었고, 이 과정에서 이틀 동안 어린아이를 비롯한 민간인 400여명이 정부군한테 죽는 ‘엘모소테’ 학살 등 끔찍한 국가폭력이 횡행했다. 1960~1996년 내전이 꾸준히 계속된 과테말라의 경우, 정부군이 마야 원주민들을 주된 학살의 대상으로 삼는 ‘제노사이드’의 모습까지 보였다.
‘공산주의 도미노’를 막고 싶었던 미국은 이들 정부의 최대 후원자로서 막대한 군사자금을 댔다. 미·소 양대 진영의 대리전처럼 치러졌던 한국전쟁과 그 질곡에 빠진 한국 현대사처럼, 이들 나라에서도 ‘냉전’과 과거청산이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두 나라가 과거청산을 끌고 나가고 있는 방식이다. 엘살바도르에선 유엔의 중재로 1992년 민족해방전선과 정부가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과거청산이 시작됐다. 진실위원회가 만들어져 최종보고서를 냈지만, 당시 집권여당이 ‘대사면법’ 등으로 원천 봉쇄해 가해자 처벌 같은 성과는 내지 못했다. 그러나 지은이는 과거청산을 계기로 민족해방전선이 하나의 정치세력이 되어 끝내 정권까지 접수한 현실에 더 주목한다. “과거청산은 국가의 ‘미래 발전전략’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테말라의 경우 1996년 ‘민족혁명연합’(URNG)과 정부 사이의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과거청산을 시작했다. 역시 가해자 처벌 등의 성과는 제대로 거두지 못했지만 지은이는 시민사회가 과거청산을 주도해서 이끌어가고 있는 모습에 주목한다.
이들 사례는 ‘과거사’가 과거의 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의 민주주의와 직결된 문제라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지은이는 “과거청산은 개혁과 민주주의 발전을 이루기 위한 가장 강력한 ‘현실정치’”라고 말한다.
한겨레│최원형 기자│2014-06-09
원문 읽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413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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