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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일기

일상 속 숨은 권력이야기 - 『천 개의 권력과 일상』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7. 23.


:::천 개의 권력과 일상:::

일상 속 숨은 권력이야기



안녕하세요. 인턴 신다람쥐입니다. 오늘은 사공일 선생님의 『천 개의 권력과 일상』포스팅입니다.  인턴 근무가 벌써 4주째에 접어 들었네요! 




저자 사공일 

:: 부산 영도에서 태어나 동아고등학교와 경희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하셨다. 부경대학교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하셨고, 현재 부산대학교에 출강 중이시다. 박사 학위는 들뢰즈 예술철학에 관한 주제였고, 학위 후 들뢰즈와 푸코 사상과 노장 사상에 나타나는 권력 담론을 연구하고 계시다. 


:: 저서로는 『들뢰즈와 창조성의 정치학』,『세계 변화 속의 갈등과 분쟁』(공저)이 있고,  역서로는 『들뢰즈와 음악, 회화, 그리고 일반예술』과 『일상의 악덕』이 있다.





  이 책은 푸코와 들뢰즈의 공통 관심사였던 ‘권력’에 대한 이야기로, 일상에서 발생하는 권력의 작동 방식을 더듬어간다. 특히 두 철학자의 이론을 우리의 일상생활에 적용시킨다는 점에서 더 흥미롭게 읽힐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부정적인 권력의 작동 방식에 대한 반항적인 지침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대신 우리가 간과할 수 있는 일반적인 권력의 작동 방식을 삐딱하게 보면서 우리의 현실과 사회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는 데 의의가 있다.” (p.14)






  나는 들뢰즈를 잘 모르지만, ‘탈주’, ‘횡단’, ‘-되기’ ‘노마드’ 등의 용어는 여러 번 접해서 그런지 크게 낯설지는 않았다.


 구조주의를 비판하며 등장한 포스트구조주의의 개념을 설명할 때 대표적으로 쓰이는 예시가 바로 들뢰즈다. 구조주의가 절대적인 진리에 도달하려 하고 변화를 부정, 시간을 극복하려 한다면 포스트구조주의는 차이를 긍정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며 시간의 변화를 긍정한다. 구조주의가 동일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을 배제시키고 폭력적인 서열제도를 만든다는 한계점을 지닌 데 비해, 포스트구조주의는 동일성의 논리로 환원되지 않은 것들을 조명하며 그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이것은 책 속에서도 등장하는데, “플라톤과는 대조적으로 들뢰즈는 차이를 동일성에 포섭하거나 대립에 가두지 않고, 차이를 차이로서 포착하려고 한다.”(p.81)


  그래서 내게 들뢰즈의 이론은, 포스트구조주의의 그 느낌만으로도 긍정적이고 흥미로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개방적이고 창조적이며 다양성과 이질성을 추구하는 …. 내가 들뢰즈에 대해 아는 것은 딱 그 정도였는데, 이 책을 통해 만난 들뢰즈는 익숙한 듯 새로웠다. 무엇보다 새로운 이론들을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이것은 저자가 말한 들뢰즈와 푸코의 위대함(너무 이론적이지 않고 예술, 정치학, 일상생활 등에 구체적으로 접근 가능하다는 것)일 것이다.





  들뢰즈는 언어의 본질을 명령어를 전달하는 것으로 본다. 언어의 기능이라고 하면 정보전달의 기능, 친밀화의 기능, 의사소통의 기능 등을 생각하기 쉬운데 명령어의 기능이라니, 조금 생소했다. 들뢰즈는 언표에는 언어활동 속에서 화자가 청자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 달라고 하는 일종의 명령이 실려 있다고 한다. 수직적인 관계에서나 존재할법한 명령어가 동등한 관계에서도 항상 작용하는 것인가? 나는 들뢰즈가 말한 ‘명령어’가 언어의 다양한 기능 중 하나일 수는 있어도 언어의 본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그 말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 들뢰즈가 말하는 언어의 명령어적인 기능은 비트겐슈타일의 언어철학에서 차용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이것을 원초적 언어의 특징이라고 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어린아이가 말하는 법을 처음으로 배울 때의 언어에 훈육과 훈련이 내재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명령어적인 언어를 원초적 언어라고 지적했다. 언어를 가르치는 것 자체만 놓고 보면 설명이라기보다는 훈육에 가깝고, 어린아이는 훈육을 통해 낱말을 사용하고 다른 사람의 낱말들에 반응하도록 교육받는다는 것이다. 일련의 설명들을 듣고 보니, 우리는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언어는 명령어적인 기능을 함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시각이 신선하며 통찰력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들뢰즈는 이러한 명령어의 권력으로부터 탈주하는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들뢰즈는 잉여성을 갖는 명령어를 전달하는 것이 언어활동의 중요한 기능이라고 보았다. “추워”라는 말 한마디에는 단지 내가 춥다는 것을 알리려는 의도가 아니라 창문을 닫아달라든지, 에어컨을 꺼 달라는 명령어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인관계에서 여자의 “춥다”는 말은 남자로부터 어떤 행동을 요구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단순히 자신이 현재 춥다는 것을 표현하는 게 아닌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 언어의 잉여성을 갖는다생각해 보니, 일상에서의 많은 대화 안에 이러한 명령어를 포함하고 있다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됐다. 이것은 언어를 단순히 해독하는 차원으로 보는 것이 아닌, 해석의 차원으로 보는 것일 것이다.


  푸코는 우리에게 선명하게 보이는 권력, 즉 국가권력이나 주권과 같은 권력 뿐 아니라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일상 속의 권력 관계에 대해 주목하고 그 권력의 전략을 파헤친다. 또한 권력이 지식-권력으로 존재할 뿐 아니라 직접적으로 신체에 작용하는 생체-권력임을 밝힌다. 푸코는 사랑을 핵심으로 이해했던 관계들도 권력으로 이루어져있다고 말했는데, 가령 의사나 환자의 관계도 그렇다는 것이다.


밀로스 포먼 감독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영화 포스터입니다.


  이 부분을 읽고 예전에 봤던 밀로스 포먼 감독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라는 영화가 떠올랐다.(서평을 다 쓰고 책의 에필로그를 읽었는데, 저자 선생님도 이 영화를 얘기하셔서 놀랐어요! 0_0) 이 영화에서 간호사와 환자들 사이의 극명한 권력 관계를 볼 수 있다.


  영화 막바지에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정신 병원에 있는 환자들 대부분이 강제 입원이 필요 없는 ‘퇴원 가능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정신병원의 규율에 길들여진 그들은 완전히 수동적인 주체가 되어 병원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환자들을 치료해주는 병원이라는 곳에 보이지 않게 숨어 있는 권력 관계들을 포착할 수 있었고, 그곳은 감시와 규율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감옥’이라는 곳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곳임을 알게 됐다.


뇌수술을 받은 맥 머피를 안고 자신이 탈출할 결심을 얘기하는 장면입니다.


  수동적인 주체가 되어버린 병동 환자들에게 맥 머피(주인공)는 끊임없이 용기를 북돋아주고 설득한다. ‘너희는 미친 게 아니라 정상이야!’라고, ‘함께 탈출하자’고. 보이지 않는 그 권력에 저항하고 도전하던 주인공은 결국 정신병원 의사들로부터 강제 뇌수술을 받고 ‘진짜 바보’가 돼 버렸다. 맥 머피를 통해 용기를 얻게 된 추장은 그의 영혼을 안고 병원 창문을 부수며 오랫동안 살아왔던 그 곳을 탈출한다. 


개수대를 뜯어 창문을 부수고 정신병원을 탈출하는 추장의 모습입니다.


보이지 않는 권력의 작동이 인간의 신체까지 구속하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볼 수 있는 영화였다.

 간호사의 표정에서도 권력을 가진 자의 악독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서 ‘길들여지는 것의 무서움’에 대한 생각과 함께, 보이는 권력보다 보이지 않는 권력의 힘에 지배당하는 것이 더 섬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내 삶도, 신체도 구속당하는 것…….  나는 과연 내 삶의 능동적인 주체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푸코가 말했던 생체-권력은 영화 속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들뢰즈가 말했던 명령어의 개념도 이에 적용해볼 수 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약 먹을 시간입니다’라고 말하는 간호사의 부드러운 말투 속에도 약을 먹으라는 명령어가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일상 속의 권력에 둔감하고 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보이지 않는 권력의 힘에 대항하려 하기는커녕 그 권력이 존재하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우리가 간과할 수 있는 일반적인 권력의 작동방식을 삐딱하게 보면서 우리의 현실과 사회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는 것이 이 책의 의의였듯이, 나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삶에서 갖는 다양한 관계 속에는 자연스럽게 권력이 작동하고 있음을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나 사랑하는 연인 관계에서도. 들뢰즈와 푸코는 이처럼 우리 삶 속에 숨어 있는 일상의 권력에 대한 사유로 우리를 안내한다. 





  또한 이 책을 통해 들뢰즈라는 인물의 다양한 이론에 대해 접할 수 있어서 많은 공부가 됐다. 명령어, 언표, 예속화의 선, 기표의 잉여성, 창조성의 정치학, 재현, 리좀, 몰선, 분자선, 탈주선, 노마드적 주체…. 많은 이론들과 대면하는 순간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들뢰즈를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를 얻은 것 같아서 뿌듯한 마음도 든다. 여전히 들뢰즈의 모든 이론을 다 흡수하기엔 버겁지만, 낯설었던 개념들과 조금은 친숙해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하며 들뢰즈의 세계로 한발 짝 더 다가가 보겠다! (다음은 들뢰즈·가타리의 『천개의 고원』을 읽어볼 것이다.)


  이것으로 『천개의 권력과 일상』의 서평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들뢰즈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들뢰즈 철학 입문서로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쓴 책이고 중간에 학생들이 직접 들뢰즈의 개념을 자신의 삶에 적용해서 쓴 글도 무척 재미있고 흥미로워요.


천 개의 권력과 일상 - 10점
사공일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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