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희망이다
『만남의 방식』
소설가 정인 인터뷰
안녕하세요~ 산지니 인턴 곰고래곰입니다;-)
얼마 전에 정인 선생님의 『만남의 방식』이 출간되었죠.
그래서 오늘은 정인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준비해봤습니다.
비가 주룩주룩 오던 저번 주 수요일에 만나뵀던 정인 선생님은 『만남의 방식』 을 그대로 옮겨온 듯, 맑은 얼굴에 따뜻한 눈빛을 가지신 분이셨어요'_'**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 잠깐 책과 이력을 훑어보고 갈까요?
부산 소설문학상, 부산작가상, 노근리평화문학상을 받았으며 작품집으로는 『당신의 저녁』, 『그 여자가 사는 곳』이 있다. 현재 동의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소설창작수업을 하고 있다.1985년 경남 산청에서 출생하여 부산에서 자랐으며 인제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을 마쳤다. 2000년 『21세기문학』에 「떠도는 섬」, 『한국소설』에 「당신의 저녁」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인터뷰는 서면 영광도서 근처 찻집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분홍색 꽃이 띄워진 시원한 오미자차에 따뜻한 보이차, 볶은 해바라기씨를 묻혀 먹는 수제 양갱까지! 너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정인선생님! 『당신의 저녁』, 『그 여자가 사는 곳』에 이어 세 번째 소설집 『만남의 방식』을 내셨는데요, 새 소설집을 출간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고마워요.(웃음)
출판사에서 막상 받고 보니까 책이 너무 예쁘게 나왔어요. 이 표지가 스위스 화가 파울 클레의 작품인데, 세네치오라는 국화를 보면서 소녀의 얼굴을 형상화한 거예요. 나는 소녀의 어긋난 눈동자가 우리의 어긋나는 만남을 드러내는 것 같더라고. 표지는 직접 고르신 거예요? 표지는 내가 골랐어요. 화가가 굉장히 따뜻하게 청순하고 아름답게 소녀를 그렸더라고. 주황색, 분홍색 그림에 초록색 글자가 잘 어울려요. 표지 보자마자 되게 예쁘다, 하고 감탄했어요! 그래서 산지니 참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웃음)
세네치오 폴리오돈 | 파울 클레: 세네치오 |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작년까지 방학 동안에는 여행을 갔는데, 이번에는 여행을 못가고 책 읽고, 글 쓰고, 그런 식의 시간을 보냈어요. 좀 분주하게 지냈어요. 책을 내고 그러다보니까. 책이 나올 때는 항상 뭔가 마음의 안정이 잘 안 되고, 이상하게 좀 그래요. 그래도 다행히 방학이니까, 그 야릇한 감정을 좀 내버려뒀죠. 야릇한 감정이라면?
나는 내 글에 대해 자기검열이 심한 편이에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그것에 미치지 못하니까, 그런데 그게 감춰져 있다가 책으로 나오면 너무나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니까 그게 두려운 거예요.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으니까 야릇하죠. 어떤 사람들은 책이 배달 되서 오면 되게 기분이 좋다하는데, 나는 별로 안 좋아.(웃음) 첫 책을 낼 때는 그래도 뿌듯한 마음이 있었는데, 어찌된 게 책을 낼수록 자기검열이 심해져요. 더 좋은 작품, 잊히지 않고 “이거 꼭 읽어봐라” 같은 말을 듣는 작품을 쓰고 싶은 욕심이 아마 많아서 그런 걸 거예요.
이제 등단한지가 십년이 넘었는데, 좀 더 좋은 작품을 많이 쓰지 못하고 이제 세 번째 소설집이라는 아쉬움도 커요. 여덟 편의 소설을 쓸 때마다 제대로 사유하고 드러내고자하는 것들을 잘 드러냈는가 하는 새삼 다시하게 되고요. 하지만 또 하나 점을 찍은 것에 대한 안도감 같은 것은 있죠. 책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각오를 새삼 다지게 되는 거죠.
본명을 쓰지 않고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하고 계신데, 필명을 정인으로 지은 이유나 계기가 있나요?
저는 43살에 늦게 등단했어요. 그전까지 계속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계속 공부도 하긴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꿈이 멈춰져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어요. 그래서 등단할 때 또 다른 나의 이름, 소설가로서의 이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옛날에는 애인을 정인이라고 했었거든요, 나는 사람들에게 소설가로서의 정인이 되고 싶었어요. 작가님께 애인이라는 건 어떤 의미가 있나요?
애인이라는 것은 늘 그립고, 위안과 고통을 함께 주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내 소설이 누군가에게 늘 그립고 위안과 행복을 주면서도, 뭔가를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고통을 주는 존재이길 바라는 거죠. 그래서 정인이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어요.
이번에 『만남의 방식』 소설집을 내면서 특별히 애틋했거나 쓰기 힘들었던 소설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하나하나 생각하면 안 그런 게 없는데……. 「유서」는 굉장히 애틋했고 「해바라기의 비명」은 쓰기가 힘들었어요. 「유서」는 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안 돼서 썼어요. 아버지가 개종을 한 것,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한 것은 실제상황이에요. 제가 외며느리고 집안이 너무 넓다보니까, 제사를 지내게 되면 며느리가 너무 힘들 거라는 생각에 교회에 가면 적어도 제사는 지내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신 거죠. 그래서 돌아가시기 5년 전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셨어요. 소설 상에서는 픽션이니까 다 몰랐지만, 그걸 우리 식구들은 다 알았어요.
작품 속에서 전체를 두고 보면, 삶에 상처가 없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 상처의 줄기를 따라서 깊이 들여다보면, 그 근본에 대부분 다 그게 어떤 형식으로든 폭력이 존재하고 있어요. 정신적, 사회적으로 가해지는 폭력,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폭력, 자연 대한 위해, 이런 것들이 다양하게 존재하죠. 소설 상에서 아버지가 봉사를 하고 기부를 하잖아요, 종교적 선택을 가져오긴 했지만 결국 치유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람의 행위예요. 사람에 대한 기대랄까, 사람을 통해 치유를 하게 된다는 생각이 깔려있는 작품이에요. 요즘 사람들의 관계들이 황폐해지고, 흐트러지고, 모두 다 이기적이 되어가지만,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생각이 근본으로 깔려있는 거죠.
「해바라기의 비명」은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나오게 된 작품이에요. 자신의 체험을 너무나 진솔하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감동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내가 저것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내게 있는 건 감동밖에 없었어요. 체험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쓰기 너무 힘들었어요. 작가는 직접 체험을 한 것으로만 글을 쓸 수 없어요. 결국 간접경험을 통해 글을 쓰게 되는데, 그것만으로도 이모션(emotion), 감동이 들어오거든요.
그때 이 소설을 쓰게 될 당시에는 우리가 어떻게 상처를 치유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되게 많을 때였어요. 그러다보니까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아니고, 우리는 상처를 치유해야해! 하고 꼭 가르치듯이 소설을 쓴 것 같아요. 마음치유에 대한 책을 많이 읽다보니까 내가 그 방법에 대해 알 것 같은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소설 상에서 그 방법에 대해 계속 알려주려고 하게 된 거예요. 자연스럽게 상상력이 발휘되지 못하고 머릿속이 딱딱해져서,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상처를 가진 사람이 자기 입으로 직접 자기 상처를 말하기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런 자세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자기가 자기 입으로 그 일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치유가 된 사람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그 치유를 스스로 못하기 때문에 그 얘기를 잘 하지 못해요. 그래서 그 사람이 그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스스럼없이 말하는 것을 듣게 될 때는 너무도 놀라워요. 그 감동은 사건 자체에 대한 감동이라기보다는 그렇게 자기 스스로 치유가 되어서 그 사건을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 자체에 대한 감동이었어요. 사람에 대한 감동. 결국 사람이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것. 그런데 그 감동만 가지고 쓰다보니까, 잘 감정이입이 안 됐어요. 어떻게 그 사람은 그렇게 치유가 가능했지, 이 생각만 가지고 쓰다보니까 소설이 자꾸 가르치려는 방향으로, 상처는 충분히 치유가 가능해, 그 사람도 그렇게 했거든? 이런 방향으로 글을 쓰고 있더라고요. 그 얘기를 들려주면서 사람들이 스스로 방법을 찾도록 해야 하는데……. 그래서 쓰기 좀 힘들었어요.
「밤길」 같은 경우는, 학교폭력에 관한 얘긴데, 이건 굉장히 우회적으로 쓴 거죠. 여기에는 인과응보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화자가 어릴 때 학교 친구를 괴롭히는데, 결국 자기 딸이 그 폭력을 되돌려 받잖아요, 쓰면서도 그런 게 고통스럽죠.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학교폭력, 왕따, 군대폭력 같은 게 드러나잖아요. 이런 폭력 같은 걸 다루다보니까. 한참 뉴스에서도 그런 사건이 나오고 있어서, 쓰는 데 좀 힘들었어요. 그래서 직접적으로 바로 그 사건을 건드리지 못하고 우회적으로 드러낸 거죠.
『만남의 방식』에서는 방금 전 말하신 학교폭력처럼 재외동포, 성폭력, 다단계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서 이야기를 꾸려 나가시는데, 평소 글감은 어떻게 찾으시는지 궁금합니다.
글감은 곳곳에서 얻어지는 거고, 늘 생각해야하는 거예요. 그런 것들은 금방 소설이 되어 나오기도 하지만, 대개는 내 안에 머물러 있다가 어떤 계기와 만나면 그때 소설에 녹여내게 되는 거죠.
「해바라기의 비명」 같은 경우는, 이 여자도 결국 사춘기시절의 상처 때문에 애인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거잖아요. 내 지인이 말해줄 때는, 자기가 연극을 보러갔다고 말해 줬어요. 그게 곧 치유극이었다고 말해줬는데, 내용은 이제 이런 내용이 아니었어요. 소설 후반부에서 화자가 의자에서 일어서서 얘기를 하잖아요, 지인이 그 극을 보고, “사실은 나도 할 얘기가 있다, 이러이러한 상처가 있는데, 그래도 잘 살고 있다. 그러니까 너희들 상처받지 마.” 이런 말을 일어나서 하고 싶었는데 용기가 안 났대요. 그런데 그 자리에서 돌아 나오면서 그게 너무 후회스러웠다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들은 순간 “그럼 내가 널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게.”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내 딸이 「해바라기의 비명」을 읽고 “엄마!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솔직하게 용기내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그러는데, “그래서 그런 주인공이 선택됐어.” 그랬거든요. 그 사람 말이 인상 깊어서 그 소설을 쓰게 된 거죠.
「수원보호구역」은 실제 있는 장소를 배경으로 삼은 작품이에요. 부산에 해동수원지라고 있어요. 예전에는 사람이 아무도 못 들어가던 곳이었는데, 보호구역이 해제되면서 들어갈 수 있게 됐거든요. 거기가 부산의 물을 옛날에는 도맡아서 대던 곳이에요. 지금은 상업용수로 변경될 정도로 물이 많이 더러워졌지만, 그래도 그 주변 풍경이 몹시도 아름다워요. 그 아름다운 풍경 물 아래에 수몰지역이 있는 거죠. 일제강점기 당시 농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물이 필요하다보니까 일본군이 그곳을 저수지로 만든 거예요. 실제적인 사건을 내가 취재를 한 거죠.
내가 그곳에 산책을 갔는데, 그 입구에 무덤 하나고 너무 외롭게 홀로 놓여있더란 거예요. 그 무덤 속에 누워있는 누군가는 늘 이렇게 누워 있다가 사람이 왔다갔다 지나가면 시끄럽고 안 좋겠다, 혹은 좋을까, 이런 상상을 하다가 자료조사를 통해 일제강점기에 저수지가 만들어진 걸 확인하고 글을 쓰게 됐죠.
「수원보호구역」에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모든 것이 보존되지 못하고 있고, 우린 그걸 즐기고 있지만, 그게 과연 온당한 것인가 하는 회의적인 시각이 들어있어요.
표제작 제목처럼, 이번 소설집에서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발생하는 상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함께 연결되어 살아갈 것인지를 계속해서 보여주고 계시는데, 그중에서도 자기고백을 통해 “오랜 이야기”를 회복하는 ‘만남의 방식’이 눈에 띱니다. 「밤길」, 「해바라기의 비명」, 「라 메르」같은 작품에서 그것이 더욱 도드라지게 보이는데요, 작가님은 이러한 ‘만남의 방식’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으신가요?
결국은 “우리 사람에게 사람이 희망이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시간이 흘러가는 속에서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되어있고, 헤어짐은 또다시 만남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잖아요. 어긋난 만남 속에서 문제들이 생길 수 있는데, 결국 만남이라는 건 서로에 대한 이해 속에서 성공적일 수도, 어긋날 수도 있다는 거죠.
「만남의 방식」을 보면 ‘나’가 결국 자기 사촌을 수용하잖아요. 사촌은 더 이상 한국인이 아닌 것으로 살아가고 싶어 하지만, 그래도 이 땅에 발붙이고 있는 ‘나’는 여전히 그를 사촌이라고 여기고 있죠 자기 핏줄에 대한 인식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사람에 대한 것으로 봐야해요. 너도 그 땅에서 살아가려면 얼마나 힘들었겠느냐, 그 고통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죠. 너는 나를 외면해도, 나는 내 마음 속에 너는 사촌이라는 의식이라는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해바라기의 비명(悲鳴)」은 함형수 시인의 시 제목을 빌렸다고 쓰셨는데, 비석에 새긴 글자라는 뜻의 비명(碑銘)에서 슬피 울거나 외마디 절규라는 뜻의 비명(悲鳴)으로 바꾸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앞의 비명(碑銘)은 비석의 글자, 소설 속의 비명(悲鳴)은 고통에 차서 내지르는 소리예요. 소설 속에서 나와 있지만, 해바라기는 한참 예쁘게 피어나는 생기발랄한 청소년들을 의미해요. 비명(碑銘)을 비명(悲鳴)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게, 누구에게도 자신의 고통을 얘기하기가 어려워져서 속으로 비명을 삼키고 있는 그런 상황에 대해서 역할극을 만들어서 얘기를 들려주는 거잖아요. 그 자체가 고통을 적나라하게 내보이는 거니까, 연극 자체가 비명을 내지르는 행위로 볼 수 있겠죠.
화자가 그것을 귀 기울여 듣는데, 자신도 과거의 상처가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묻어놓고 있었잖아요. 심리학책에 보면 고통이 너무 심한 경우 그게 내재화되어서 본인도 그런 상황이 있었는지 잊어버리게 된대요. 무의식 속에 가두어놓고, 자기도 절대 없었던 일처럼 생각한대요. 그런데 어느 순간 어느 계기로 폭발하게 돼요. 갈무리가 잘 되면 질곡에서 헤어날 수가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정신적으로 굉장히 혼란스러워지고 분열 상태에 이를 수 있어요. 화자가 학교 선생님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학생들에게 냉담했던 것은 자기가 그런 고통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연극을 통해서 예전의 자신의 고통이 다시 떠올려요. 심리학적으로 진짜 그렇대요. 자신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생각하지만, 내면을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그 사람 속에 현재 왜 이런 행동을 하고 문제가 많은지를 알 수 있는 뿌리를 찾을 수 있어요.
화자의 경우, 상처를 받았던 청소년 시절에 다행히 이모가 옆에 있었죠. 누군가, 특히 청소년들이 그런 고통 속에 있을 때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해요. 화자는 그것을 각성하고 학생들에게 이제 손을 내밀게 된 거죠.
「실버로드」에서 뒷산의 산책로를 애틋하게 여기는 아내의 모습이나 「수원보호구역」에서 수원보호구역을 지키려는 화자와 남자 등, 소설집에서 자연이 비춰지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만남의 방식』에서는 자연이 많은 부분에서 다뤄지고 있는데, 자연과 관련해서 말하고 싶은 게 있으신가요?
아름다운 강산을 인간이 너무 많이 훼손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리산 댐 같은 경우도, 만들어져서는 안 되는데 한번 공언된 것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만들어지지 않을까 염려스러워요. 지금까지 많은 사례들이 그랬듯이 말이에요. 자연은 그대로 방치해서도 곤란하지만 인간의 욕망으로 무작정 개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은 달콤하고 좋을지 모르지만, 먼 미래를 내다보면 후손들을 위해서도, 전 지구를 위해서도 안 될 말이죠. “섬은 섬이어야한다.” 난 어쩌면 고답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몰라요. 숫자를 가지고 생각하면, 8정도는 보존하고 2정도만 개발해서 우리가 누려야 해요. 각각의 필요에 의해 개발되고 파괴되는 게 우려가 되요.
「실버로드」 같은 경우는 직접 체험했던 일을 모티브로 한 것이에요. 꽃만 피어있으면 좋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산길에 영산홍 같이 정원에서 보는 꽃들을 심어놓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산길에 들꽃이 있어야지. 그런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나는 굉장히 못마땅해요.
「실버로드」의 아내가 쥐를 보고 “어떤 종류의 생명이든 (…) 제 수명대로 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처럼 자연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나 기억이 있으신가요?
저는 경남 산청출신이에요. 돌 되자마자 나오긴 했지만, 어렸을 땐 엄마 손에 이끌려갔고, 방학만 되면 할머니 집 가서 한달 반 정도 머물다 왔어요. 거기는 너무나 시골이라서, 자연 속에서 방목되어 자랐어요. 햇볕이 내리쬐면 내리쬐는 대로, 눈 오면 눈 오는 대로, 강물에 들어가 물장구치고 놀고, 겨울에는 토끼 몰이하러 가고. 화장실 가면 돼지우리가 있어서 매일 꿀꿀대며 나하고 이야기하자, 그러고. 이렇게 자연을 많이 접하면서 살다보니까 그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이 내 몸에 스민 것 같아요. 정말 잊을 수 없는 것들인 거예요. 살아가는 것은 도회의 삶이지만, 늘 그리워하죠. 그래서 가능하면 시골풍경이나 산사에 많이 찾아가는 편이에요 .생명에 대한 존중 같은 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있어왔던 거죠.
「실버로드」에서 아내가 쥐의 눈망울을 보고 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내가 결혼해서 시집을 갔는데, 시댁이 옛날 오래된 한옥이었어요. 항상 자는 방이 부엌방이었는데, 부엌에는 항상 쥐가 들락날락했어요. 어느 날 달빛이, 막 쏟아지는 굉장히 밝은 밤이었는데, 아마도 쥐가 들어와 찍찍거리니 눈을 떴나 봐요. 발밑에 쥐가 한 마리 있는 거예요. 너무 소스라치게 놀라가지고 엄마야, 하고 있는데 쥐 자기도 놀랐나 봐요. 그 동그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도 놀라고, 지도 놀라고. 그런데 그 제피씨 같은 눈이 너무 예쁜 거예요. 그래서 그 막연한 경험으로 작품을 써본 거죠.
그런 쥐조차도 우리가 너무 예사롭게 죽이잖아요. 우리가 어렸을 때는 쥐잡기 운동을 하거든요. 방학 때 쥐꼬리 10개를 모아가는 게 숙제였어요. 그러니까 쥐는 우리가 당연히 죽여야 될 생명체인 거예요. 그리고 요 몇 십년 사이에 너무나 많이 자연이 훼손이 되었죠. 그런 것에 대한 경고와 각성, 반성 같은 걸 많이 하게 되고, 현실에 대해 불만스럽고 염려스러우니까 그런 작품들이 나오게 되더라고요.
책 뒤편의 작가의 말에서 “세상은 우울하고 혼탁하고 극악해져서 희망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도 자연은 변함없이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하고 쓰시면서 “나는 소설도 그럴 수 있기를 늘 바랐다.”라고 하셨습니다.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소설을 쓴다는 행위는 현실에서 발을 뗄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경험하는 것 가지고는 모든 것을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내가 학생들에게 늘 하는 얘기가, “소설을 읽어라. 그럼 인간을 많이 알게 된다. 그런 간접체험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소설이란 건 인간을 나타내는 하나의 형식이라고 생각해요.
소설가라는 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얘기를 들을 만하게, 읽을 만하게, 다양한 삶과 사유를 서사라는 형식으로 보여줘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기쁨이나 고통이나, 어떤 형식으로든 독자의 의식에 진동을 줄 수 있는 존재로 남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지역 소설가로서 지역에서, 지역에 관해 소설을 쓴다는 것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지역 소설가로서 그 지역 소설을 쓴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해요. 어느 지역에 있는 소설가는 그 지역을 잘 드러낼 수 있고, 그런 특권을 가지고 있어요, 그게 지역소설가라고 생각하는데, 그 나름 의미가 있을 거예요.
부산만을 배경으로 한다고 해서 인간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건 아니에요.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그런데 나는 소설을 쓸 때, 부산 이야기만을 쓰고 싶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부산을 나타내도, 서울을 나타내도, 독자들은 어디서나 다 읽어주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지역소설가로서 분류된다는 것……. 이건 일종의 취향이라고 생각해요. 의무는 아니고요. 수원보호구역 같은 경우가 부산을 배경을 하고 있는 것인데, 소설 상에서는 늘 배경으로 등장하긴 했지만, 부산 사람만을 위한 소설을 쓴 적은 아직 없어요.
그래도 「실버로드」는 내가 사는 곳 바로 뒷산인 금정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수원보호구역」 같은 경우는 해동수원지, 「밤길」 같은 경우도 경남을 배경으로 하죠. 이런 식으로 내가 부산에 살고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소설에 부산을 끌어들이게 되요. 자연스럽게. 굳이 그것만을 의식하면서 써야한다는 의무감은 갖고 있지 않아요.
현재 동의대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글 힘은 세서, 글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게 굉장히 많다고 생각해요.
쓰지 않아도 좋다, 그냥 많이 읽어라. 그럼 언젠가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길 거고, 많이 읽다보면 결국 생각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소설 속의 많은 인물들을 만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어떤 장면과 맞닥뜨렸을 때 책 속의 인물들과의 만남을 상기하면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얻는다. 나도 그랬고, 주변에서도 보면 그렇다고 이야기를 하더라. 어쨌든 많이 읽어라. 그럼 글 힘이 자랄 것이고, 그러면 그 글 힘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무기가 된다.
독자들이 이번 『만남의 방식』을 어떻게 읽고 만났으면 하십니까?
모든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고 나면 독자의 몫이에요. 기분 좋게 읽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읽고 뭔가 생각해보거나 공감하거나, 위안을 받았다거나, 일말을 행복감을 느꼈다던가. 하지만 이번 소설집에서 행복감을 느낄 만한 주제는 없을 거고.(웃음) 아무튼 그렇게 생각할 거리가 있네, 하고 읽어주었으면 좋겠어요. 읽자마자 외면당하는 소설은 아니었으면 하네요.(웃음)
마지막으로 장편소설에 대한 계획이 있으신지,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시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오래 전부터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금방 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시기적으로 맞지 않으니까……. 소설 쓰는 사람들의 관심이 비슷한 데 집중이 되나 봐요. 내가 한발 늦은 상황이 이미 두 번이나 있었어요. 그래서 장편소설을 갖고 있기는 한데, 예를 들어, 아동폭력이라던가, 조직 속에서의 폭력, 성폭력 같은 소재를 가지고 쓰고 있을 때 이미 다른 작가가 완성시켜서 소설을 내어버린다던가. 또 혹은 역사적인 인물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고되게 취재를 하고 있을 때, 또 누군가는 근사하게 취재를 해서 책을 이미 내어버린 적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나는 열심히 쓰고 있었는데 소용이 없어져버린 거죠. 그건 오로지 나의 게으른 탓이다, 라고 자책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장편소설을 금방 발표하고 싶었는데 그런 문제로 인해서 발표를 할 기회가 없어져버리고, 지금은 하나 겨우 퇴고를 하고 있는데 어떡하면 장편을 하나 보여 볼까 싶어서 노력하고 있는 중이에요. 청탁이 오면 물론 단편을 쓰겠지만, 좀 더 긴 호흡으로 장편을 쓰고 싶어요. 계속 앞으로 쓸 거니까. 다양한 소재가 장편에 들어가게 되겠죠.
이렇게 두 시간에 걸친 인터뷰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지면 관계상 못 넣은 이야기도 있어서 아쉽네요ㅜ.ㅜ 그 아쉬움을 달래주시려는지 정인 선생님이 제가 가지고 간 『만남의 방식』에 사인을 해주셨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 허락해주신 정인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여기까지 긴 글 읽어주신 여러분도 감사드려요!
정인 선생님의 세 번째 소설집 『만남의 방식』 많이 많이 사랑해주세요♡♥
만남의 방식 - 정인 지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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