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초코라떼 mj입니다.
인턴 업무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제가 서평을 통해 소개드릴 책은 김헌일 소설가의 『고도경보』입니다.
처음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 들었던 생각은 '공활하다'였습니다. 노을진 넓고넓은 하늘 아래 한 없이 작게만 보이는 비행기 한 대. 구름이 자욱한 드넓은 상공에서 그늘이 져 까맣게 보이는 작은 비행기 한 대는 고독하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김헌일 작가님은 소설의 길에 발을 디딘지 30년이 된 중견작가로서, 1986년 단편 『어머니의 성』으로 부산 MBC 신인문예상을 받으면서 문단에 등단하셨고, 1997년 중편 『회색강』으로 제2회 한국소설 신인상을, 첫 번째 항공소설 단편 『티티야를 위하여』로 2005년 부산 소설문학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지금까지 항공이란 일부 소수계층만이 관여하는 특수한 분야로만 인식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리나라의 연간 항공기 이용객 수는 대략 7,300만 명에 이른다. 항공기 여행은 이제 우리네 평범한 일상의 하나이다. 한데 우리나라엔 항공소설이라는 개념은 아직 없다. 삶이 있는 곳에 문학이 있다면 당연히 하늘과 항공 운송 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작가나 작품이 있어야 할 법도 하다. - 「작가의 말」 p.236
작가의 말에 실려있는 바와 같이 김헌일 작가님은 우리나라 문단에서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항공소설'이라는 분야의 지평을 새롭게 열고 넓히고자 하셨습니다.
저또한 국문과생으로서 여러가지 소설책을 읽어보았지만 항공소설이라는 분야의 도서는 처음 접해보는터라 읽는 내내 항공소설 특유의 신선함으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특히나 일반인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보거나 들을 수 없는 기장과 관제탑과의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 장면을 볼 때면 더욱 집중을 하곤 했습니다. 그리곤 이내 입으로 조용히 "사카린 그라운드, 퍼시픽 에어, 나인 식스 원, 파이브 미닛 프라이어 투 스타트, 인천. 플라이트 레블 투 식스 제로 오버." 등을 따라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장면이 책에 종종 등장하곤 하는데 교신장면이 나올 때마다 그냥 지나가지 못하고 굳이 안되는 혀를 굴려가며 영어 발음을 따라 하며 혼자 재밌어하곤 했습니다. 아마 이 책을 읽는 다른 많은 독자들도 한 번 씩 정도는 저와 같이 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출처 - 구글
『고도경보』 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신의 영역인 하늘과 맞서면서 혹은 타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비행기가 이륙을 해서 상공으로 날아갈 때. 비행기는 그 순간부터 혼자입니다. 앞서도 언급했던 것과 같이 '공활한' 하늘에서 비행기는 혼자서 모든 상황을 감당해내야 합니다. 집에 혼자 집에 있는 딸이 당장 걱정이 되어도 함부로 아무 곳에나 착륙시킬 수 없고, 착륙지 근처에 왔지만 이상기변으로 시야가 확보되지 못하면 다시 상공으로 날아올라 또 다른 하늘을 헤매야 하고, 탑승한 비행기가 괴한들에게 납치되어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비행기가 상공에 있는 이상 땅으로 내려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폭풍우는 금방이라도 비행기를 던져버릴 듯이 까탈을 부렸고, 정교하고 정밀해야 할 계기는 제멋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둠은 지옥 그 자체였다. 신은 없다.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암흑, 비, 바람은 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비행기에 타고 있는 백마흔여 명의 승무원과 승객들, 그리고 물속으로 사라져버린 아내가 그랬듯 자신은 그와는 상관없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제 다른 누구가 아닌 자신이 이 난관을 헤쳐 나갈 것이었다. 고도경보가 또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전보다 훨씬 급박하고 단호한 어조였다. 60……50……40……. 조종실 문틈으로 어린 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우주가 일순간 정지하는 것 같았다. 순간 그는 명징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어떤 이유에선가 항공기는 추락 직전에 있었다. 운명은 언제나 이렇게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전혀 터무니없게, 한밤의 음험한 도둑처럼. - 「기도」p.76~77
하늘이라는 신의 영역. 그 속에서 한 대의 비행기만을 가지고 수없이 많은 돌발상황들, 이상기변들에 대응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다보면 꼭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람들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비행기는 여러 통계들로도 증명되듯이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입니다. 작가 또한 이 책에서는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기 위하여 위험한 상황들을 허구적으로 만들어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행기가 만들어진 이래 지금까지의 많은 사고들이 일어났 듯,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이 비단 허구적인 이야기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항공 사고가 일어나든 혹은 일어나지 않든 하는 것은 그 상황을 불행이 피하지 못했느냐 운 좋게 피했느냐의 차이지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매순간마다 비행기 조종사들은 불가능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자들에게는 한없이 자비롭고 포근하게 보이는 하늘이지만 상공에서 항공직 일을 하는 자들에게는 전쟁터와 다름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이러한 이야기가 단지 항공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 국한되는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하늘과 우리의 사회는 너무나도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광활한 하늘에 작은 비행기 한 대가 모진 풍파를 뚫고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는 것처럼, 드넓은 사회 속 개인이라는 작은 존재 하나도 크고 작은 고난들과 맞부딪히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들이 하늘이라는 공간 속에서 전쟁같은 삶을 살 듯 우리 또한 사회라는 공간 속에서 전쟁같은 생활을 영위해나가는 것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본업에 매진하다보니 가족관계, 연인관계가 어긋나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추락이나 좌절과 같은 실패를 맛보기도 합니다. 늘 평온할 수 만은 없는 것이 하늘의 날씨와 같이 사람의 인생이니까요. 햇볕이 들 때가 있으면 태풍이 몰아칠 때도 있죠.
출처- 구글출처 - 네이버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고도경보'는 비행기가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는 고도를 벗어났을 때 울리는 경고음이라는 의미입니다. 비행 중 이 경고음이 들리면 조종사는 계기판을 확인하고 관제탑과 교신을 하는 등의 일련의 행동들을 거쳐 다시 비행기를 적정 고도로 맞춥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저는 이 책 또한 이름 그대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고도경보를 울려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모진 사회를 살아가며 자신을 되돌아 볼 틈도 없이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다 보면 어느새 예상했던 바와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생활 속에서 우리네 삶과 너무나도 밀접하게 맞닿아있는 소설 속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독자들은 다시 한 번 자신을 성찰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독자들에게 고도경보가 아닌 인생경보를 울려주며 자기각성의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고도경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도경보 - 김헌일 지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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