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철 시인은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수영사적공원 푸조나무를 보면서 자연을 닮은 삶을 꿈꾼다"고 말한다. 강원태 기자 wkang@ |
"옛날 시계는 시침이 제일 길었다고 합니다. 요즘은 분침·초침이 더 길지요. 시(時) 단위로 가던 시간이 이젠 분·초 단위로 갑니다. 느리고 게으른 사람은 경쟁에서 뒤처지는 세상이 되었어요. 하지만 모든 창의적인 것의 밑천은 게으름이 아닐까요. 잠시 대열에서 이탈하는 것, 한눈파는 것, 주변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나은 삶을 위해 필요할 겁니다."
시인은 꿈을 이야기하는 윤활유 역할
꿈 인정하지 않는 요즘 세태 아쉬워
예술인을 사회의 동력으로 봐 주길
10대·40대 초반 겪은 두 번의 큰 사고
시인으로 태어나는 인생 전환점 돼
자연 순응하는 삶이 이젠 진정한 행복
최영철(59) 시인은 느리다. 교통사고 후유증 때문이다. 지난해 발간한 제10시집 '금정산을 보냈다'(산지니)가 부산시 2015 원북 도서로 선정되는 바람에 올해는 좀 바쁘다. 공공도서관 주최 독서토론회 등 오라는 데가 많다. 김해 도요마을에서 한 달에 두세 번 도시로 건너온다.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수영 사적공원 내 푸조나무 앞에서 지난 10일 최 시인을 만났다.
■김해 도요마을서 본 도시
"요즘 문학은 인간보다 먼저 가려고 합니다. 물론 예언자적 문학이 필요한 시대도 있겠지만 지금은 문학이 한 발짝 뒤에 가면서 인간들이 망가뜨리고 부숴 놓은 것, 잘못 틀어 놓은 것을 하나하나 짚어가는 게 필요하지요. 80년대는 세상일에 너무 간섭해 문제였다면 지금은 너무 말을 안 한다는 게 문제인 거죠."
최 시인은 "목표를 향해 전후좌우를 무시하고 달려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이 정당한 것인지 끊임없이 '고춧가루'를 뿌려 주는 것이 문학"이라며 "이젠 그런 말을 해도 듣는 사람이 없으니까 말하는 사람이 되레 뻘쭘해지는 게 요즘 세태"라고 강조한다. "문학의 장악력이 떨어졌고 재미있는 장르가 너무 많아진 것도 한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시를 쓰는 사람은 일종의 꿈을 꾸는 사람이지요. 이 사회는 이제 실현불가능한 꿈을 꾸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됐습니다. 낙오자가 되고 현실감각이 없는 사람이 되는 거지요. 그래도 시인은 꿈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꿈꾸는 사람이 윤활유 역할을 해야 사회가 건강하게 돌아가지요."
최 시인은 2011년부터 김해 도요마을로 들어가 산다. 이윤택 씨가 제의한 도요출판사를 거점으로 문화운동도 병행한다. 문학 무크지도 1년에 두 번씩 내고 '도요축제'도 4회째다. 심심해서 시작한 '맛있는 책읽기'는 벌써 60회를 넘겼다.
"사람들이 평화로운 동네로 들어가서 시는 더 어두워지고 공격적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사실 도시에서 살 때는 잘 몰랐는데 여기서 보니 인간성 파괴와 우발적 범죄, 억압 구조 등 도시가 처해 있는 위기가 더 잘 보이더라고요."
최 시인은 요즘 토론회가 한창인 '예술인 복지법'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시혜를 베푸는 차원에서 접근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예술인을 당당한 사회의 동력으로 보길 원한다. 최근 무명의 연극·영화인이 원룸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런 현실들이 안타깝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들이 굶어 죽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배가 고파서 죽은 것은 아닐 겁니다. 정 배고프면 무료급식소를 찾아가면 되지요. 그들은 자존심이 상해 죽은 겁니다. 인정을 못 받아 죽은 거지요. 아무리 해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니까 스스로 문을 닫은 거지요. 꿈꾸는 자가 없는 사회, 삭막하지 않을까요."
김해 도요마을에서 진행하는 '맛있는 책읽기'. 최영철 시인 제공 |
최 시인은 '변방의 시인'으로 불린다. 주저함, 게으름, 느림이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다. 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화려하게 등단했지만 그는 항상 변두리의 삶에 시선을 뒀다. 세상에 나온 모든 것은 쓸모가 있다는 것, 그의 시의 지향점이다.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3살 때 부산으로 왔습니다. 부모님이 큰집 더부살이를 했는데 무작정 도시로 온 거지요. 범일동 산동네에 방 반 칸을 얻어 살았습니다. 베니어판으로 나눠 주인이 세 놓은 거였어요. 중간에 구멍을 내 백열등 하나를 같이 썼습니다. 방 한 칸을 얻어 나온 곳은 매축지 마을이었지요. 좁디좁은 골목이 제 유년의 기억 속에 있습니다."
초등 3학년 때 부암동으로 이사 갔다. 연지·양정동 등 하야리아부대 주변이 40대 중반 이전까지 산 곳(88년 2년간 서울살이를 했다)이다. 부산진중 다닐 때 부대 정문으로 가면 건너편 학교까지 금방 갈 텐데 왜 빙 돌아가야 할까 의문이 많이 들었다고 한다. 시는 그 시절부터 썼다.
"중2 때 혼자 가출한 적이 있었어요. 이유는 없었죠. 부모님이나 친구와 갈등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허무했던 것 같습니다.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로 가 2박3일간 돌아다니다가 미군 지프에 치였습니다. 대퇴부가 조각나 가슴까지 전신 깁스하고 10개월을 변두리 병원에서 보냈지요. 할 일이 없어 책을 읽었습니다. 읽다가 이것저것 끄적거렸지요. 시가 되고 수필이 됐습니다."
최 시인은 당시 '학원' '진학' '여학생' 등 학생잡지 독자문예란에 투고를 많이 했다. 팬레터도 많이 받았다며 웃는다. 최 시인은 두 번 크게 다쳤다. "15살 때 교통사고는 제 인생의 방향을 결정했고 40대 초반에 머리를 다친 것은 경거망동하지 말고 삶을 더 진지하게 살라는 의미였지요." 회복기 노래로 채워진 시집 '일광욕하는 가구'는 2000년 문학과지성사에서 냈지만 창비의 백석문학상을 수상하는 진기록도 세웠다.
■시와 시가 아닌 것의 경계
최 시인은 "시란 한달음에 쭉 나오는 것"이라고 밝힌다. 40대까지는 그랬는데 이젠 한 줄 쓰고 놔두었다가 머리 굴리고 또 고치고 그러니까 마음에 안 차는 시가 많다고 고백한다. 시와 시 아닌 것의 차이는 뭘까.
"시의 언술과 일상적인 언술은 다릅니다. 일상적인 언술은 근거와 타당성이 있고 설득이 가능한 것이라면 시의 언술은 근거가 부족하고 비논리적입니다. 대신 느낌과 감동이 있지요. 결국 감동이 있으면 시요, 설득만 있으면 일상적인 언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 시인은 "시를 잘게 해부해 속속들이 이야기해 주는 것이 좋은 방식은 아니다"며 느낌이 좋은 시를 찾아 읽으면 된다고 조언한다. 이와 함께 최 시인은 고령화 시대를 맞아 앞으로 노년문학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한다. 도요마을서도 노년을 위한 연극과 문학을 특화시키는 작업을 해 보고 싶단다.
"노년이 되면 눈도 잘 안 보이고 귀도 잘 안 들리게 되지요. 저도 시력이 안 좋은데 녹내장까지 와 점점 시야가 좁아지고 있습니다. 이성을 관장하는 왼쪽 머리를 다쳐 눈물은 많아지고 기억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지요. 대충 듣고 대충 보라는 것으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돈 들여 고치면 되레 고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연에 순응해서 사는 삶이 진정한 행복일 거라 믿습니다."
1956년 경남 창녕 출생. 58년 부산 범일동 산동네 이주. 70년 중학교 시절 가출 뒤 교통사고. 84년 무크지 '지평' 통해 작품 활동 시작. 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연장론' 당선. 97년 퇴근길 머리 다쳐 한나절 동안 뇌수술 받다. 2000년 '일광욕하는 가구'(문학과지성사) 제2회 백석문학상. 2010년 '찔러본다'(문지) 제10회 최계락문학상. 2011년 김해 도요마을 이주, 제6회 이형기문학상. 2015년 제10시집 '금정산을 보냈다'(산지니) 2015년 부산 원북 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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