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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걸의 글방

변방에서 세계 바라보기 - 지역에서 출판하기 (3)

by 산지니북 2008. 12. 2.

『무중풍경-중국영화문화 1978-1998』은 2006년도 영화진흥위원회 출판지원도서로 선정된 책이다. 중문학 박사과정에 있는 후배에게 중국책 가운데 좋은 책이 있으면 추천해달라고 하니 이 책을 권해주었다.

다이진화 지음, 이현복 성옥례 옮김, 신국판, 값 20,000원


중국영화계에서는 작은 고전이 된 책으로 저자 다이진화는 사유의 깊이와 폭넓음에 있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학자이자 작가인데, 글쓰기에 있어서도 정확한 어휘 선택과 개념정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번역이 여간 까다롭지 않은 책이었다. 그래서 책의 중요성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지만 섣부르게 번역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단 에이전시를 통해 판권 확인에 들어가고 계약을 추진하면서 영화진흥위원회에 출판지원도서로 신청하였다. 그런데 이때 똑같은 책을 두 팀이 신청한 것이었다. 하지만 판권을 확보한 우리 출판사에게 몫이 돌아왔다. 번역 기간이 많이 걸려 출간 시한을 꽉 채워서야 출간하기는 했지만 두툼한 이 책을 보면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12돌을 맞이하는 지금, 부산 하면 국제영화제를 꼽을 정도로 부산은 영화의 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영화 관련 아이템은 지역에서 출판하기 좋은 소재라 생각하고 창업 초기부터 관심을 두고 있는 터였다. 그러나 영화 관련 출판 시장이 아직은 작고, 영화에 대한 관심 또한 예전만 못한 현실에서 영화 관련 책을 기획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2008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부산일보 사진제공


하지만 여러 가지 형태로 틈새시장을 찾아본다면 기회는 있을 거라고 본다. 지역에서 영화를 공부하는 소장 학자들의 연구 결과물 위주로 출판에 대한 요구가 있기도 하다. 앞으로 나올 <근대부산영화사>도 그런 결과물 가운데 하나이다.

출판사를 창업한 2005년에는 부산에서 APEC이 열리던 해였다. 부산시는 APEC 행사에 최대한 집중하여 홍보를 하고 있었고, 많은 시민단체들이 APEC에 대한 반대 모임을 만들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부산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 탄생배경과 기본원칙, 주요국의 대외경제정책, 신국제질서의 성격에 대한 분석을 통해 아시아태평양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진정한 연대와 협력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을 정리한 단행본을 기획하게 되었다.

이때 만난 사람이 부산외국어대학 이광수 교수이다. 일면식도 없었지만 이광수 교수는 인도 관련 책도 쓴 바 있고, 아시아평화인권연대 공동대표로 활동을 하며 APEC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었는데, 그에 대한 원고 청탁을 위해 전화를 걸었다. 우여곡절 끝에 시기를 놓쳐 이 기획은 계속 추진되지 못했지만 이후 <아시아평화인권연대>와 함께 『의술은 국경을 넘어』를 출간하게 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 나카무라 테츠는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서 20여 년 동안 의료 활동을 해오고 있었다.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져 있는 지구촌 한 구석에서 묵묵히 인간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평화를 전파해온 일본의 시민단체 <페샤와르회>와 의사 나카무라의 활동에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한 <아시아평화인권연대> 회원이 감동을 받아 이 의사의 이야기를 국내에 소개하기로 하고 번역을 추진하고 있는 중이었다.

민족과 국경을 초월한 진정한 인도주의의 의미를 되새기고, 함께하는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한국의 엔지오 단체들이 정부 프로젝트 혹은 기업 후원금에 목숨을 걸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또한 그런 형태에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이 책에 나오는 일본 후쿠오카의 시민단체 <페샤와르회>는 철저하게 회원 4,000명의 회비와 민간 모금에만 의존하여 파키스탄 의료 활동을 지원하고 있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범사례라고 생각하고, 출판에 의미를 두었다.


이후 <아시아평화인권연대>, 이광수 교수와의 인연은 계속되고 있으며 인도관련 서적들도 꾸준히 출간하고 있다. 『인도사에서 종교와 역사 만들기』, 『인도의 두 어머니 암소와 갠지스』, 『내가 만난 인도인』, 『인도인과 인도문화』, 『힌두교, 사상에서 실천까지』, 『무상의 철학-다르마끼르띠와 찰나멸』 등이 나온 책이다.

그 가운데 『인도인과 인도문화』는 인도인의 진면목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20년째 인도에 살면서 현재 델리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김도영 교수가 썼는데,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눈에 보이는 표면적 현상뿐만 아니라 인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을 곁들여 이면을 탐구한 실질적인 내용을 강조한 책이다. 이 책은 『어려운 시들』과 함께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에 선정되었다.

(다음 글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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