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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 | 이벤트

제72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성선경『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6. 4. 25.

 

 

 

지난 4월 20일(수) 제72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이번 저자와의 만남은 성선경 시집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로 꾸며졌는데요, 

시만큼 위트가 넘치는 성선경 선생님의 입담으로

한 시간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저자이신 성선경 시인과 최학림 부산일보 논설위원의 대담으로

진행된 이날의 행사는 시 속에 들어 있는 의미와

그 의미를 통해 시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날 이야기한 여러 시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몇 편을 옮겨 볼까하는데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분들도 시의 의미와

시란 무엇인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성선경 (이하 성) : 먼저 제목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라는 제목에서 '명태'는 '명예 퇴직'이라는 의미가 겹쳐지도록 만든 말입니다. 그리고 '조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는 왠지 말이 안되잖아요. 명태 씨 정도 됐으면 느긋느긋 일어나서 '석간신문'을 읽어줘야 폼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웃음)  사실 저는 올해 명예퇴직을 했습니다. 제가 꿈에도 그리던 전업 작가가 되어 정말 기쁩니다. 저는 큰 꿈을 꾸지 않아요. 소박한 꿈, 누군가 들어줄 것만 같은 그런 꿈만 꾸는데요. 명예 퇴직을 하고난 뒤에 제가 하는 일이 화분에 물 주는 일입니다. 아주 즐겁게 하고 있는 일이죠. (웃음)

 

아들과 함께 화분에 물 주기

 

세상에서 제일 큰 소리는 우리 귀에 들리지 않지만

세상에서 제일 사소한 일은 화분에 물 주기

그저 시간이 나면 관심을 가지는 척

물 조루를 들고 어디 새잎이 났는지

어디 마른 잎사귀는 없는지 살펴보는 일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서

내가 하는 일 가운데 가장 귀한 일이

화분에 물 주는 일 바싹 마른 화분에 물 조루를 들고

해봤자 표 나지 않는 일에 진지하게

시간을 내는 일 화분에 물 주는 일

세상에서 제일 큰 소리도 우리 귀에 들리지 않지만

세상에서 제일 귀한 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일

누가 봐도 그저 그런 사소한 일

해봤자 표 나지 않는 일 화분에 물 주는 일

아들과 둘이서 무슨 대화를 나누나 싶게

그저 시간이 나서 마주 않아 차 한잔 마시듯

아무 말도 없이 물 조루를 들고 서성거리는 일

세상에 제일 중요한 대화는 말로 하는 게 아니지

그저 눈빛으로만

너도 여기 좀 봐!

응 새잎이 났네!

고개를 끄덕끄덕 다시 화분을 옮기고

물 조루를 들고 해봤자 표 나지 않는 일에

진지하게 시간을 내는 일 화분에 물 주는 일

아들과 함께 화분에 물 주는 일

세상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귀한 일

 

 

최학림 (이하 최) : 이 시를 읽으면 정말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별 것 아닌 것의 대단함. 우리가 살면서 도달해야 하는 지점이 이런 생활 속의 어떤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감사합니다. (웃음) 옆에 있는 최학림 기자는 오래된 벗입니다. 여름방학, 겨울방학 이렇게 일년에 두 번 꼭 부산에 와서 술을 먹고 가곤 하는데 그때마다 늘 최학림 기자와 함께 했어요. 그런 인연으로 이번 시집의 뒷표지에 표4를 적어주셨는데요. 이 표4가 참 재밌습니다.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둘러앉은 사람들 모두가 순간적으로 말이 없어지는 진공상태를 '천사가 지나가는 순간'이라고 한다. 이제 명태 씨의 이야기들을 알게 된 내 앞에서는 천사가 함부로 지나가지 못하리라. 일찍이 김종삼은 '내용 없는 아름다움'을 말했지만 우리는 명태 씨에게서 '내용 있는 구수함'을 맛본다. 골계와 해학의 입담! 거기에 구성진 리듬과 가락이 있다. 이야기가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흥겹게 놀고 있다."

 

  : 저는 이 시집의 앞부분은 인생에 대해 허허롭게 이야기하는 원숙한 시들란 생각을 했고, 시집 제3부의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와 들어가노' 이후, 뒷편의 시들은 좀 재밌는 시들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재미삼아 하는 농담이나 잡설까지도 포함하여 시를 쓰고 있는데요, 과연 이런 것들이 생을 통찰하는 시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묻고 싶습니다. 

 

: 저는 지금까지 너무 진지하게만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흔히 야구를 잘하려면 어깨에 힘을 빼라고 하죠? 시도 마찬가지로 힘을 빼야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쳤을 때가 기억납니다. 그때는 가난한 집안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다는 것은 참 벅찬 일이었죠. 그래서 졸업식이 끝난 뒤 새우깡에 소주를 막 마셨어요. 그 다음날 그 모습을 모두 본 삼촌이 저희를 불러서 어제는 왜 그랬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졸업식이 끝나서 그랬다고 변명을 하다가 친구 중에는 교복을 찢다가 상처난 애도 있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랬더니 삼촌께서 '갸 가죽은 안 버렸나?'라고 하시더라고요. 사람에게 난 상처를 '가죽을 버리다'라고 이야기하신 거죠. 그 위트, 꾸중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날의 위트 있는 한 마디가 더 깊게 제 마음 속에 남아 있어요. 시도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시에 대한 진지한 생각들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는 한 방법이라 생각해요.

 

: 이번 시집에서는 풀어해치고 허허롭게,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시가 되냐고 물었고, 이것이 시가 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바로 이 시점이 성선경 시인이 와 있는 지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돈은 늘 남의 말을 하고

 

거북이가 아주 급한 걸음으로

급한 걸음으로 엉금엉금 기는데

이를 보는 사자가 하 기가 차서

심술궂게 한 말씀 하시는데

"너! 토끼와 경주에서 또 졌다며"

옆으로 와 다정히도 놀리는데

거북이는 만사 귀찮다는 듯이

아주 급한 걸음으로 엉금엉금 기는데

사자는 따라오며 또 놀리는데

다정하게 붙어서 놀리는데

"야! 너 가방이나 벗고 뛰지 그랬니?"

아주 다정히도 놀리는데

거북이는 너무 화가 나서

그 자리에 멈춰

척 허리 버팀을 하고

거기 사자를 보고 한 말씀 하시는데

"야! 이년아 머리나 좀 묶고 다니지?"

한 말씀 던지고 뒤도 안 보고 가는데

엉금엉금 빨리도 가는데

이를 보고 사자가 하 기가 차서

"야! 너 정말 가방 안 벗을 거냐?"

심술궂게 또 딴죽을 거는데

거북이는 제 갈 길이나 꾸벅꾸벅 가면서

"미친년! 머리나 좀 묶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꾸벅꾸벅 가면서

엉금엉금 꾸벅꾸벅 가면서

혼잣말로 중얼중얼 엉금엉금.

 

: '사돈은 늘 남의 말을 하고' 이 시를 보면 이번 성선경 시집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 언어유희, 말장난 말놀이를 참 많이 했는데요. 말장난의 범위가 단순히 낱말에 그치지 않고 이야기 구조 전체로 넓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말놀이가 한 구절에 국한될 필요가 있느냐는 거죠. 전체가 장난이 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우리가 더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서의 말씀도 우리를 감동시키지만 더 오랫동안 우리에게 기억되는 것은 이솝 우화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꼭 기억되어야 할 진리는 떠도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은 친구들과 농담하다가, 술자리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가지고 시를 만들어 보았는데... 다른 분들도 재밌었으면 좋겠습니다.

 

: 그렇다면 시의 힘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여쭤보고 싶네요.

 

: 제가 마산에 사는데요. 어느 날 길을 지나가다가 어느 노조에서 써 붙인 것같은 플랜카드를 봤어요. 임금 인상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시급이 몇 십원 정도였나봐요. 그래서 표어처럼 떡 하니 붙여놨는데 "10원도 돈이냐 쭈쭈바도 100원이다"라고 돼 있는 거예요. 이야, 엄청 감동적이었어요. 임금 인상 백 번 이야기하는 것 보다 저 문구 하나가 더 강력하게 와 닿더라고요. 급할수록 에둘러 가라는 말이 있죠. 에둘러 가는 것, 그것이 문학이 아닐까 싶어요. 시는 무기가 될 수도 혁명이 될 수도 없지만, 시가 힘이 될 수 있는 것은 에둘러 가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는 원형을 만들어 가는 작업이라 생각해요. 제 세 번째 시집이 <서른 살의 박봉 씨>인데 서른 살 하면 뭐가 떠오를까요? 저는 '박봉'이 떠올랐어요. 나이가 60이 다 되어 가는 사람은 뭐가 떠오르겠습니까. 명예 퇴직, 즉 '명태 씨'죠. 그런 식으로 하나의 원형을 만들자는 꿈을 가지고 장난을 친 것입니다. 

 

: 그런 것 같네요. 그래도 이것은 지적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재밌는 말을 가지고 부려 먹는 것과 그 속에 내가 있는 것, 강인한 시대적 배경이 있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염두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속담, 격언들은 늘 서사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것이 시대와 맞아 떨어질 때 통쾌함을 느낄 수 있죠.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것 중에 재밌는 사실 하나는 아이들에게 제가 무엇을 가르쳤는지는 남아 있지 않아요. 하지만 수업 시간에 제가 농담한 것은 다 기억하더라고요. 실질적으로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 눈 파는 것'인 것 같아요. 일탈, 이것이 삶에서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성선경 시인의 태도는 이런 것 같습니다. 삶은 누추할지 모르지만 그 장면이 언어로 통과되면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인생의 여러 국면들이 있는데 이것을 말로서 건들일 수 있는 것이 생의 절정이 있는 것이라 표현하는 것 같아요. 성선경 시인은 언어에 대해 굉장히 각별한 마음이 가진 것 같습니다.

 

 : 명명되고, 이름 불리어지는 것, 그것은 참 특별한 힘을 가진 것 같습니다. 제가 늘 책을 내면 어머님께 한 권씩 전해드리는데 어머니는 늘 한 쪽에 밀어두시더라고요. 그러다 제가 산문집을 하나 냈을 때였어요. 산문집 속에 어머니 이야기도 있고 해서 책의 맨 앞에 어머님의 성함을 정성껏 적어서 드렸어요. 다른 책은 다 던져버리시는데 이 산문집은 화장대 위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더라고요.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의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어요.

 

 

 예정된 시간이 되자 성선경 선생님께서

 "자! 이제 술 먹으러 갑시다"

라고 하시며 웃음으로 제72회 저자와의 만남을

마무리 지어 주셨습니다.

 

시를 보며 웃고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어요.

 

멀리 마산에서 와 주신 성선경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이날 대담을 이끌어 주신 최학림 부산일보 논설위원을 비롯하여

참가해주신 모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소박하고,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

 

그럼 산지니 제73회 저자와의 만남에서 또 뵙겠습니다.

다음은 누구일까요? (두둥!)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 10점
성선경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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