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언론스크랩

결코 한국인이 될 수 없었던 베트남 여자(오마이뉴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6. 11. 15.

결코 한국인이 될 수 없었던 베트남 여자

'이방인'과 현실 속 '이방인'이 만난 소설 <쓰엉>

 

 


조금은 불편한 내 처지를 자꾸 떠올리게 하는 소설을 만났다. 내 삶이 소설에 나올 법하다는 말은 아니고, 귀촌한 사람으로서 시골에서 '이방인' 비슷하게 살고 있는 처지를 말하는 것. 글에 나오는 소설가 '이령'이나 베트남 여자 '쓰엉'과 닮은 점은 그뿐이다. 그럼에도 감정이입이 너무 잘 돼서는 이 책을 보며 내가 사는 곳과 내 삶에 대하여 자주 생각하게 됐다.

 

 

"한국음식을 능숙하게 요리한다고 해도 쓰엉은 외국인일 뿐이었다. (…) 산골에서 나고 그곳에서 죽을 날을 기다리는 늙고 선량한 노인들은 낯선 나라에서 며느리를 들일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면서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노인들은 여자를 믿지 않았다. 가일리에서 평생을 살다 죽는다고 해도 쓰엉은 결코 한국인이 될 수 없었다. 그녀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다시 아이를 낳더라도 이방인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18쪽)

 

 

메콩 강 처녀뱃사공으로 살다가 한국으로 시집 온 지 7년이 된 쓰엉. 그이는 이령의 집에서 밥하고 청소하는 일로 돈을 받으며 살림을 꾸린다. 굳이 외국 사람이 아니어도 할매, 할배가 많은 시골에서 낯선 젊은이는 무조건 관심 대상이다(귀촌 3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 관심이 부담스럽다). 그러니 마을 토박이 남자와 혼인한, 그것도 그 남자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외국 여자를 두고는 얼마나 말들이 많았을까.

 

보통 '관심'이라면 좋은 뜻으로 해석할 때도 많지만, 시골에서는 좀 다르다. 특히 마을 사람이 되겠다고 눌러앉은 '낯선' 사람에게는. '신기함'에서 출발해 '의심'과 '경계'까지 포함된 그 눈빛을 나는 알고 있다. 늙고 선량한 어르신들한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그 눈빛은, 마을 토박이가 아닌 한, 수십 년을 눌러 살더라도 평생 이방인들의 뒤를 쫓아올 거라는 사실도. (중략)

 

 

뒤엉켜 버린 시간들을 되돌릴 수 없었다

"그녀는 동정과 위로를 바라지 않았다. 헛된 꿈을 좇아 강을 건넜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고향을 떠났고 돌아갈 수 없었다. 수년 동안 갇혀 살았지만 단념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모험은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 젊고 아름다웠다." (98쪽)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손금을 읽듯 빤히 읽히는 삶을 벗어나고자 했던 쓰엉. 바다 건너 근본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는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운명에 순응하지 않으려 했다. 그 모험이, 늙고 야윈 할머니께 평생 만질 수 없었던 것을, 깨끗하고 아늑한 집을 가져다줄 수 있는 선택이라고 믿었건만. 그리하여 언제까지라도 할머니의 자랑이자 이웃들의 부러움을 사는 존재이고 싶었건만.

"그녀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뒤엉켜 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 없었다. 궤도를 이탈한 열차가 어느 곳을 향해 달려갈지 짐작할 수 없었다." (140쪽)

"그녀는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고, 힘들이지 않고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순응하며 살려면 고향집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 위험을 감수하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지 말았어야 했다.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대신 가난하고 비루하지만 안전한 삶을 선택했어야 했다." (239쪽)

 

(중략)

 

 

 

'이방인'이 '이방인'을 만났을 때

"날이 저물면 어둠과 침묵에 싸이는 마을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명명되지 않은 채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져 있는 존재였다. 쓰엉은 부피와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덩어리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이었다." (212쪽)

책을 다 읽고 나니 어두운 밤이다. 벌레 숨소리마저 들릴 듯한 조용한 마을이 유독 낯설게 느껴진다. 어두컴컴한 밤이 되면 딱 저 글처럼, 우리 집이 마을과 분리된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령의 하얀집처럼 외딴집이 아님에도. 

 

(중략)

 

'이방인'은 다른 나라 사람을 뜻하는 말인데도 한국 사람인 이령마저 이방인으로 그려낸 소설, <쓰엉>. 이 글을 읽는 내내 불편하고 아팠던 건, 나 또한 산골마을에서 '외지인'으로 살고 있기 때문일 거다. '외지것이 어쩌구~' 하는 소리 안 듣고 싶어서 보이지 않게 발버둥 친 시간들이 자꾸 생각나서일 거다.

나름 무난하게 귀촌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내 생각뿐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안고 살기는 한다만) 이렇게 마음이 복잡한데, 쓰엉과 비슷한 처지로 한국에 온 많은 여자들은 이 소설을 두고 어떤 생각이 들지 너무나 궁금하다. 그 가운데 누구라도, "내가 이러려고 한국에 왔구나, 참 잘 왔다. 행복하다"면서 환하게 웃어 준다면 이 불편한 마음이 좀 가라앉을 것도 같은데.

 

 

2016-11-15 | 조혜원 시민기자 | 오마이뉴스

원문읽기

 

 

쓰엉 - 10점
서성란 지음/산지니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