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강수걸(대표), 권경옥(편집), 김은경(편집), 권문경(디자인)
가장 높이, 가장 오래 날고 싶은 '산지니'
출판사 산지니는 태어난 지 이제 갓 세 돌을 맞은 신생출판사이자 부산 소재 출판사이다. 한 때 서울이 아니면 모두 시골이라고 지칭하던 친구 덕택에 부산에서 상경한 나는 도리 없이 시골사람이 되고 말았던 경험이 있는지라, 서울 외의 도시를 일컬을 때 무의식중에 조심하는 버릇이 생겼다. ‘‘지방출판사?!’ 아니지... 그럼 뭐라고 해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을 즈음 강수걸 대표는 ‘지역출판사’라고 산지니를 소개한다. 그게 맞겠다. 지방은 아무래도 수도권을 우선으로 하는 데서 비롯된 것일 테니까.
이런 편견 아닌 편견을 강 대표도 겪은 모양이다. 출판사를 차리고 3개월 정도 되었을 때 일본 고단샤에서 나온 책을 번역·출간하기 위해 에이전시를 통해 판권 문의를 하였으나, 서울이 아니라 지방에 있는 출판사에서 어떻게 고단샤의 책을 출판할 수 있겠느냐는 답신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이 첫 번째 시도는 무산되었다. 2005년 2월 출판사를 차린 지 8개월 만에 첫 책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김대갑 지음과 『반송 사람들』고창원 지음을 내자 두 책에 대한 내용보다도 부산에 이러이러한 출판사가 생겼으니 많은 관심과 발전을 바란다는 요지의 기사가 지역신문에 실렸던 것만 보아도, 지역에서의 출판사 설립은 그 자체로도 뉴스거리가 되는 세상인 것이다. 2008년 5월까지 출간된 책들
산지니산진 山陣는 산 속에서 자라 여러 해를 묵은 매로 가장 높이 날고 오래 버티는 우리나라의 전통 매를 뜻하는 이름이자, 80년대 자신의 대학시절 학교 앞에 있던 사회과학서점의 이름이기도 하다고 강 대표는 말한다. 그 시절 그 서점에서 사회에 대한 관심을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고, 그 때 마음속에 깊이 새긴 ‘산지니’는 강 대표의 출판사 이름으로 자연스레 불리게 되었다. 그는 사람이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라며, 산지니의 책들이 문화의 지역화와 문화민주주의의 심화에 도움이 되면서도 쉽게 읽을 수 있으며,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힌다.
강 대표는 그간의 출판 과정에서 기억나는 책으로 2006년도 영화진흥위원회 출판지원도서로 선정된 『무중풍경-중국영화문화 1978-1998』다이진화 지음, 성옥례·이현복 옮김을 꼽는다. 사유의 깊이와 폭넓음에 있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학자이자 작가인 저자 다이진화가 저술해 중국 영화계의 작은 고전으로 여겨지나, 까다로운 번역으로 인해 망설이던 차에 다른 팀에서도 영화진흥위원회에 출판지원도서로 신청해 우여곡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부산의 대표적인 소설가 조갑상 경성대 교수의 산문집 『이야기를 걷다-소설 속을 걸어 부산을 보다』는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시대와 변화의 모습들을 추억하는 내용에 맞게 사진을 싣기로 하였으나, 사진가를 섭외할 여력이 없어 무뚝뚝한 작가와 함께 몇 날 며칠을 달동네를 오르내리고 도심을 걸어다니며 사진을 찍었던 일을 전한다. 1년여를 공들인 이 책은 서울에서 조선일보 기자가 인터뷰를 하러 오게 했으며, 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어 출판사 재정에도 큰 보탬이 되었다고 귀띔한다.
그러나 인문·사회과학분야를 주력으로 하는 산지니는 이처럼 부산이라는 지역과 관련된 책들뿐 아니라 진보와 보수 지식인의 저서나 인문교양서, 대중적인 자기계발서, 문예지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책들을 내고 있다. 2006년 중국 정부로부터 번역료 일부를 지원받아 편찬한 『부채의 운치』박승미·저우위치 지음와 같은 교양으로 읽는 중국생활문화 시리즈와 『인도인과 인도문화』김도영 지음, 이경훈 사진, 『내가 만난 인도인』김도영 지음으로 대표되는 인도 관련 서적들도 꾸준히 펴내고 있다. 특히 올해는 반세계화 운동가인 수전 조지의 저서와 캐나다 소설가의 르완다 내전에 관한 소설도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지역출판사로서의 한계를 언급할 계제는 이미 아니지 싶다.
지역출판사로서 지역의 특성을 살린 책을 발간하거나 서울의 출판사들이 미처 다루지 못한 보석들을 찾아내고 있는 강수걸 대표는 그러나 아직은 해결 과제가 산적하다고 말한다. 수금문제로 지역출판사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표면적인 문제는 물론, 지역 독자들 역시 베스트셀러 위주로 책을 고르기 때문에 지방색이 짙은 책을 출간하면 판매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부산 출신 유명작가의 책을 냈는데 부산에서는 몇 권 안 팔리고 오히려 서울에서 더 많이 팔리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출판지원정책에 대한 아쉬움도 피력한다. 우리나라에는 지역출판을 지원하는 제도가 전무하다며, 국토의 진정한 균형발전은 문화건 예술이건 혹은 출판이건간에 자신이 살고 있는 자리에서 즐기고 누릴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 아니겠냐며 반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의 투자와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최하는 문학나눔사업에서 우수문학도서를 선정할 때 5%의 지역쿼터제를 실행하는 것처럼 우리 위원회에서도 우수도서를 선정할 때 이런 식의 지역쿼터제를 염두에 두고 실행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한다.
사실 산지니가 위치한 곳은 내가 교복을 입고 최초의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라 하지만) 건너편에 있다. 그토록 넓었던 교정과 교실이 정작 요만큼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지역출판사의 현재와 닮았다. 그래서 더더군다나 산지니 사람들이 가장 높이 그리고, 가장 오래 우리 곁에서 날기를 바란다.
- 2008년 5월, <책&>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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