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에 조향미 시집 『봄 꿈』 리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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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날아갈 듯 찬란'해진 까닭
조향미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봄 꿈>에 부쳐
시란 무엇인가? 시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오래된 질문이자 현재진행형인 이것은 시인이라면 누구나 가슴 깊은 곳에 꽃씨처럼, 비수처럼 간직하고 있을 질문이다. 어떤 이는 위안으로서의 시를 말하고 어떤 이는 혁명과 해방의 무기로서의 시를, 또 어떤 이는 발견-깨달음으로서의 시를 말한다. 이 외에도 숱한 이름의 시가 있을 것이다.
올해로 나이 쉰여섯이고, 시집 <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실천문학사) 이후 11년 만에 <봄 꿈>(산지니)을 세상에 내놓은 조향미에게 시는 무엇일까? 아니, 11년 전에는 무엇이었고 지금은 무엇일까?
시인 조향미에게 시란 무엇인가
아, 그 온돌방에서
세월을 잊고 익어가던 메주가 되었으면
한세상 취케 만들 독한 독주가 되었으면
아니 아니 그보다
품어주고 키워주고 익혀주지 않는 것 없던
향긋하고 달금하고 쿰쿰하고 뜨겁던 온돌방이었으면 (부분)
<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에 실린 '온돌방'(널리 애송되는 이 시는 국어교과서에도 실려 있는데)이다. 그때 시인에게 시는 '온돌방' 같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가 하면 표제시인 <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의 부제가 '녹색평론을 위하여'인 것만 봐도 그에게 시는 녹색평론적인 무엇을 지향하는 것임도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나는 공중의 새를 근심하여
새장에 넣고
들판의 백합을 찬미하여
꽃병에 꽂았다
거친 바람으로부터 새를 보호하고
뜨거운 햇볕으로부터 꽃을 지켜주었다
매일매일 고단백 모이를 주고
무균질의 물을 갈아주었다
그러나 새는 노래를 잊었고
꽃은 피어나지 않았다
교육 또는 사랑은
종종 우주에 대한 불경이기도 했다 (전문)
이렇듯 〈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의 시편들은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 안아 주거나, 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지게 하거나, 아아 그렇지, 하는 나직한 찬탄을 불러일으키는 시편들로 가득하다. 그것만으로도 가히 아름답고 우리에겐 '고마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렇다면 <봄 꿈>은 어떨까? 성급하게도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게 <봄 꿈>은 〈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와는 선연하게 다른 지평을 보여주는 시집으로 다가왔다고. <봄 꿈>에도 '온돌방' 은 있고 '국화차'도 있고 시인에게 팔을 벌리는 '나무'들도 있지만 <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와 <봄 꿈> 사이엔 건너뛰기 힘든 심연-크레바스가 가로놓여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왜일까? 두 시집 사이의 세월 속에 시인에게 무슨 사건이라도 일어난 걸까?
(중략)
그럼에도, 그러니까 오늘의 파란 많은 역사를 준열하게 살아내는 속에서도 시인은 '날아갈 듯' 생을 사랑하고, '숨 막히는 더위/ 태울 듯한 햇볕을 지나온 사과', '스물 몇 번 친다는 농약의 유혹을 이기고/ 자연이 주시는 축복과 시련을/ 백 프로 수용하고 견뎌낸' 사과 앞에서 '묵상'을 하며 '둥근 손으로 예배'도 한다.
저 '하느님의 사과'이자 '하느님인 사과' 앞에서 말이다. (〈사과 하느님〉) 그렇지 않다면 과연 시인일까? 또한 역사 속에서 역사 너머를 바라볼 줄 아는 눈과 마음이 없다면, 그러니까 분별 속에서도 분별을 넘어 본래 면목을 향하는 곡진한 구도심이 없다면 말이다.
'날아갈 듯' 생을 사랑하는 시인
<봄 꿈>의 시편들을 읽노라면 내 마음은 순간순간 '날아갈 듯 찬란'해진다. 그것은 조향미 시 언어의 힘이라면 힘이고 구도자의 순정한 영혼이라면 영혼이고 지혜의 빛이라면 빛이라 하겠다.
날아갈 듯한 숱한 시편들 중에서도 그야말로 '찬란'한 절창,〈날아갈 듯〉을 다시금 낭송해 보는 것으로써 '궁핍한 시대의 시인'(하이데거)으로서 존재의 진리를 시의 언어로 드러내는 데 곧잘 성공하고 있는 조향미 시인에게 공감과 고마움의 합장 인사를 전해 본다.
영도 영선동 곡각지 돌아들면
푸른 바다 마주하고
오래된 집들 다닥다닥 붙어있다
도로변엔 낚시가게 철물점 진돗개 파는 집
선반에 라면 몇 개 얹어놓은 구멍가게
바다 쪽으론 오밀조밀 살림집들
태풍 불 때 이 동네 어찌할까
지붕 훌렁 날아가지 않을까
어깨 넓이 좁은 골목길 들어서니
바다색 페인트 떡칠한 슬레이트 지붕엔
크고 작은 돌멩이들을 촘촘히 눌러놓았다
태풍이야 맨날 오는 것은 아니지
한 번씩 미친 비바람 몰아칠 땐
지붕에 돌멩이 몇 개를 더 얹는 거지
그러다 천연스레 맑은 날
태평양 바다 앞에 빨랫줄 치고
눅눅한 이불도 고린 양말짝도
젖은 가슴도 쨍쨍하니 말리는 것이다
바윗돌 짊어진 듯 숨찬 생애도
날아갈 듯 찬란해지는 날도 오는 것이다 (전문)
오마이뉴스 윤지형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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