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을 읽는다는 것
『세 여자』(조선희, 한겨레출판, 2017)를 읽고
“봄인가, 아니 여름인가. 세 여자가 개울에 발 담그고 노닥거리고 있다.
하얀 통치마 저고리 위로 한낮의 햇볕이 부서진다.
팽팽한 종아리와 통통한 뺨, 가뿐한 단발은
세 여자의 인생도 막 한낮의 태양 아래를 지나고 있음을 말해준다.
세 여자가 물놀이하는 개울은 청계천인가.” (1권, p. 10)
두 권으로 분권된『세 여자』(2017)는 역사 소설로 분류될 것이다. 제국주의의 총칼이 드리운 암흑기의 조선에서 여성 주체로 살아간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의 삶을 통해 조선 공산당의 실체로 다가간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세 여자를 비롯해 이름 석 자로 나오는 사람은 모두 실존인물이다. 등장인물들에 관한 역사기록을 기본으로 했고 그 사이사이를 상상력으로 메웠다. 역사기록에 반하는 상상력은 자제했고 ‘소설’이 ‘역사’를 배반하지 않도록 주의했다.” - 2권,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소설에서 세 여자의 존재와 삶은 그 자체로 조선 공산당의 여정을 되짚는 계기이자 동력으로 드러나고 작용한다. 그것은 역사의 여정이다. 그리고 그 역사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바로 지금 - 여기의 역사이다.
나는 이제 이 소설을 읽었지만 여전히 내게 이 독서는 시기상조였다. 이 소설을 섣불리 역사 소설로 분류해 두었지만, 나는 내내 ‘소설’과 나란히 쓰인 ‘역사’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오래 사로잡혔다. 역사는 연대기적 흐름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그것은 실체가 없다. 시대를 살아간 무수한 삶들이 있을 뿐이고, 역사는 지금 여기서 내가 그 삶들에 다가가고자 희망할 수 있을 때 잠깐 그 실체를 드러내 주는 것 같다.『세 여자』에 관해 성실하게 쓴 어떤 리뷰 (백지은, <서사가 역사를 배반하도록>,『문학과 사회 2017 겨울호』) 에서는 이 소설을 ‘역사/소설’ 이라 명명하고 있었다. 나는 역사와 소설 사이를 가르는 저 빗금에 오래 빚질 것이며 그것을 다음과 같이 기억할 것이다. 서사(소설)과 역사의 길항. 역사 소설이란 역사라는 실체에 관해 정리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역사-삶의 움직임과 대면하려는 무한한 긴장(역사/소설)이다. 나의 바람이 간절하지 못했던 탓인지 긴장의 순간은 쉽사리 찾아오지 않았다. 읽은 감상을 서둘러 갈무리하는 대신 이 책이 불러준 또다른 책들을 찾아 서가 앞을 막막하게 헤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조선 공산당의 최대 강령은 조선 사회의 공산주의화였지만, 이들의 최소 강령은 조선의 독립과 인민을 위한 민중적 민주주의 사회 구축이었습니다. 이들은 큰 목표를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작은 목표들을 실현하기 위한 실행을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독립 투쟁을 위해 좌우합작 활동에 매진했으며,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관철시키면서 불안정 노동을 척결하려 했지요. 민족민주혁명 바로 직후에 토지개혁을 하려 하면서 노동자들의 경영 참여가 가능한 사회를 혁명의 첫 단계에 만들어가려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무산계급을 중심으로 한 공산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게 조선 공산당의 ‘제1·2차 혁명’ 구상이었지요. (……) 그렇다면 한국을 비롯해서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는 21세기의 아시아에 또다시 공산주의 운동이 필요하진 않을까요? 이미 보수화된 공산당들이 그런 운동을 펼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아시아의 대중들이 언젠가 다시 한번 이런 급진적이고 국제 연대적인 투쟁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각국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지금과는 다른 아시아로 거듭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이것이야말로 아시아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를 살피면서 제가 품게 된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박노자,『러시아 혁명사 강의』, 나무연필, 2017, pp. 242~244)
“최대 강령과 최소 강령의 이중주.”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비춰 주었던 투쟁의 길은, 세 여자가 살아 냈던 암흑기에서는 민족 해방과 독립 운동을 위한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그 길과 빛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한 면이 빛을 보면 한 면은 어둠일 수밖에 없었으니 항상 팽이처럼 위태롭게 균형을 유지하며 멈추지 않고 회전해야만 했다. 이념이 강령의 공허한 구호로 전락했을 때 민중은 주인이 될 수 없었고 인류의 역사는 새로이 쓰여지지 못했다. 작가 조선희는 해방과 독립이라는 대의하에 세 여자의 삶을 조명했다. 페이지를 넘기는 독자의 의무는, 무엇이 그 시대적 사명과 대의를 이끌어가는 것인지를 아는 것이다. 혁명의 와중에서도 여성의 노동력이 착취되는 모순을 끊임없이 들춰 냈던 허정숙의 눈빛과 코민테른 유학자금을 받아들고 모스크바의 겨울로 걸어 들어갔던 고명자의 발걸음, 치안유지법 위반이라는 딱지를 온몸에 새기고도 쾌활하게 종로 거리를 걷는 조선 청년의 뒷모습을 오래 서서 지켜보는 주세죽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짐작해 보는 것. 소외 없는 민중의 삶을 실현해내기 위해 무한히 투쟁했던 눈빛과 발걸음을 상상하는 것. 그 어떤 삶도 구분되지 않는 사회, 그 누구도 내쳐지지 않는 사회를 소망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목소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지금 - 여기서 우리가 마찬가지로 가질 수 있는 눈빛과 행할 수 있는 발걸음, 낼 수 있는 그런 목소리를 말이다. 역사와 일상은 다른 것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20세기 초반 이곳에 살았다. 혁명이 직업이고 역사가 직장이었던 사람들. (……) 그들은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착취하면 안 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착취하면 안 된다고 믿었다. 농부는 자기 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아프면 돈이 있건 없건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사람이 평등해야 존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2권, pp.370~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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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북] 미국을 보지 못한 콜럼버스들 | 1boon https://1boon.kakao.com/bookclub/minibook2017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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