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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떠난 곳이 어디든, 그곳에서 혁명을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3. 22.

 도시를 떠난 두 이야기 <리틀 포레스트>, <산골에서 혁명을>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봤다. 혜원(주인공)은 서울에서 고향으로 도망친다. 홀로 빈집을 가꾸며 조금만 버티다가 서울로 돌아갈 거라 다짐한다. 하지만 시골에서 보낸 사계절은 지친 그녀를 서서히 치유해준다.

시골 풍경 속에 어릴 적 친구들과 가면 없는 우정을 나누며 사계절을 보내고, 서울로 간 혜원은 다시 시골로 내려온다. 하지만 이번은 과거와 달리 도망치듯 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온전히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 내려온 것이다.

 

 

 

<리틀 포레스트>처럼 온전히 자신으로 살 기 위해 산골에 자리 잡은 여성이 있다. 바로 박호연이다. 그의 에세이 <산골에서 혁명을>(산지니)은 초록 눈의 아나키스트와 꿈꾸는 자유 영혼 '그녀'의 이야기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그녀가 프랑스 남자를 만나 외딴 산골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한다.

여의도 한복판에서 직장을 다닌 그녀는 어느 날 풍성한 수염을 기르고 터번처럼 머리를 돌려 묶은 남자를 만난다. 그의 묘한 매력에 빠져 사랑을 하고, 함께 자급자족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자유는 불편을 동반하고' 그렇게 시작된 산골에서 사계절을 아홉 번 겪는 동안 태어난 네 명의 아이들은 부추처럼 쑥쑥 자랐다. 

그녀의 산골일기를 엿보자.

"광대정에 살면서 우리는 자급자족을 실현할 수 있었다. 산골에 살아보니 그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봄에는 나물 뜯어 먹고, 여름에는 밭에서 나는 거 먹고, 가을에는 산에서 지천으로 달린 밤이며 도토리, 겨울에는 산에서 틈틈이 해놓은 나무를 때며 뜨끈한 구들방에 앉아 그간 수고한 몸을 쉬면 된다. 돈 쓸 일이 거의 없다. 우리는 산골에서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진정한 아니키즘을 실현한다. 산골 아나키 만세!"



산골의 삶은 아무리 봐도 친해지지 않는 뱀을 마주해야 하고, 사고로 죽은 고라니 고기를 우적우적 먹거나, 눈이 오면 며칠 동안 고립되기도 한다. 아나키스트인 남편은 보름달이 뜨면 '아나키 세상'을 달에 빌고, 그녀는 그의 해맑은 초록 눈에 더욱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남편은 "탈자본주의 세상을 꿈꾸는 아나키스트"다. 사람들이 "당신도 아나키스트인가요?"라고 물을 때 그녀는 "나는 스스로를 '~주의자'라로 정의하는 게 불편하다. 고작 사람의 머리로 만들어낸, 제 아무리 완벽하다 한들 허점이 있을 수밖에 없는 사상이란 틀에 나를 끼워 맞추기란 영 어색하고 불편하다. 나는 나일 뿐, 다만 생활 철학으로서 아나키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한다.

'1장. 산골살이'로 시작해 '2장. 손님열전'을 겪고 '3장. 낳고, 키우고'에서 덜컥 들어선 넷째 아이를 지우기 위해 산부인과로 향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의 심장소리를 듣고, 태아의 생명을 구했다. 산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초록의 생명처럼 영글어갔다. 하지만 네 아이를 돌보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자발적인 선택이었던 육아는 그녀의 몸과 마음을 자꾸 부대끼게 했다.

"가끔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가사와 돌봄 노동을 포기하고픈 심정이 든다. 그러다가,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렇다는 진실을 맞닥뜨린다. 비단 가사와 돌봄 노동만이 이 세계에서 끝없이 반복되고 있지는 않음을. 나에게만 시지프스와 같은 끝없는 형벌이 주어진 것이 아님을."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다

재작년 11월 광화문 거리에 선 그녀는 페미니즘 시국 선언에 다녀온 친구를 만난다. 20대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지나친 페미니즘의 언어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는 "서울에서 비혼으로 사는 친구와 시골에서 애 낳고 사는 나 사이에 미묘한 공감대를 감지"하며 여성주의의 경계를 다시 고민한다.

페미니즘이란 젠더와 계급, 인종을 넘어서 연대하는 지점에 있어야 한다는 에코 페미니스트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의 글귀를 떠올린다. 그리고 이러한 구호를 발견한다.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다.'


어느 날 그녀는 서울의 중산층으로 자리매김한 죽마고우인 친구들은 만난다. 그들과 아파트 매매와 대출, 부동산 경기에 대해 심각한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이 경제적 조건과 삶의 화두가 달라져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닫는다.

맑스의 유물론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삶의 조건에 지배받을 수밖에 없다. 자연과 교감하며 산골에서 9년을 살았던 그녀의 삶에 애초부터 자본주의가 뿌리내릴 땅은 없었다.


 

한국사회만큼 자본주의와 찰떡궁합을 이룬 사회가 있을까. 그녀는 산골에 살면서 다른 세상이 가능함을 경험한다. 그녀는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사랑을 했고, 스스로를 배반하지 않고 온몸으로 산골의 삶을 살았다.

그녀가 산골생활을 하면서 지켜낸 것은 사랑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나에게 혁명이란, 과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살면서 이루어나갈 수 있는 사건"이라며 산골에서 살아온 삶 자체가 혁명이었음을 깨닫는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오늘의 지루하고 제한적이고 기계적이고 원자화된
이 우스꽝스러운 사회에
최종적 혁명 활동

- 박호연 자작 단편 <산청으로 가는 길> 중에서


그녀에게 사랑은 곧 혁명이었다. 그녀는 산골에서 혁명을 이루었지만, 우리는 산골이 아니더라도 이곳에서 혁명을 꿈꾸면 좋겠다. 왜냐면 혁명은 거창한 것도 아니고, 멀리 있지도 않으니까. 그녀의 표현대로 최종적 혁명 활동은 '사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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