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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없이 조용히 살고 싶다’
탈북자들 겪는 차별 그린 소설 “생각하는 사람들”
기자간담회가 진행 중이다. <사진 = 김상훈 기자> |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과의 화해 무드가 이어지고 있다. 종전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늘어났고, 북한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북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언론 매체 등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삶이 소개되기도 한다.
이러한 화해 무드 속에서 탈북자의 삶을 조명한 소설이 출간됐다. 정영선 작가의 장편소설 “생각하는 사람들”로, 5월 29일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여한 정영선 작가는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또 다른 분단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분단이란 바로 차별과 편견의 시선들이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정영선 작가 <사진 = 김상훈 기자> |
97년 문예중앙으로 데뷔해 여러 권의 소설집과 장편소설을 집필한 정영선 작가는 “분단”을 주제로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하나원의 교사모집 공고에 지원한다. 하나원은 탈북자들의 정착을 지원하는 사무소로, 정영선 작가는 하나원 내 청소년 학교에서 근무하며 여러 처지의 탈북 청소년들과 접하게 된다. “한명 한명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컸다.”고 밝힌 정영선 작가는 탈북자들에 대한 자극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의 내면을 알아내고 싶었다고 전했다.
장편소설 “생각하는 사람들”에는 탈북자들의 교육시설 ‘유니원’에서 일하게 된 ‘주영’을 중심으로 여러 명의 탈북자들이 등장한다. 생존을 위해 떠나온 이부터 자유를 동경해 떠나온 학생, 부모를 따라 떠나오게 된 아이 등 각자의 사연도 다양하다. 소설은 이들을 등장인물로 내세우며, 이들이 남한 사회에서 겪는 차별과 편견의 장면을 담는다.
‘수지’는 북한 사회의 부유층의 자녀지만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오게 된다. 명문 A대에 입학하고 나름대로 남한 사회에 적응했지만,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은 ‘수지’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을 제대로 이해해주는 이는 등장하지 않는다. 국정원 요원인 ‘코’는 수지에게 개인적인 접촉을 할 뿐만 아니라 ‘주영’을 통해 정보를 파악하고자 한다. 브로커인 ‘병욱’은 부모님의 정보를 주겠다고 하며 그녀의 곁을 맴돌며 다시 고향으로 갈 것을 제안할 뿐이다.
‘병욱’과 ‘금향’은 경제적 어려움 뿐 아니라 차별과 편견의 시선 앞에서 힘겹게 살아간다. 브로커로 일하고 있는 ‘병욱’은 “남조선에서 자신을 단련시킬 건 가난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탈북 1년 차에 만난 아내는 더 많은 돈을 가진 이에게 떠나버렸고, 일터에서는 편견과 멸시를 받는다. 주유소 사장은 탈북자에게 중국어를 배우느니 조선족에게 배우는 게 낫다는 이유로 병욱을 조선족이라고 소개한다.
[기초수급자인 그에게 허용된 건 마트의 할인 물건과 변두리 술집, 자판기 커피와 5천 원 이하의 국밥 등이었다. 조선에서도 모든 게 다 허용된 건 아니지만 벽은 늘 눈에 보였다. 여긴 투명한 유리벽에 둘러싸인 기분이었고 무시와 차별이라는 습기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 67페이지
편견과 차별 외에도 탈북자들을 괴롭히는 것은 색안경이다. 아들 ‘창주’의 교육 문제로 학교로 불려간 ‘금향’은 교사로부터 ‘창주’와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는 이야기를 듣지만, 거북하고 부담스러울 뿐이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창주가 학교를 떠날 것을 권고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지만 창주는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네?”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금향 씨는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어머니와 창주, 북한에서 오신 모든 분들은 분단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분단의 벽을 허문 첨병 역할을 하신 거잖아요. 그런 역사적 의미를 잊으면 안 되는데.”
아, 또 저 소리. 금향 씨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안전부에서도 듣고 유니원을 방문한 장관과 차관, 국회의원, 총리에게도 들은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았다. 분단의 상징이라는 말 하지 말고 차별이나 하지 마세요.
- 84페이지]
소설 “생각하는 사람들”은 탈북자들을 향한 차별과 편견의 모습을 그려낸다. 동시에 막연한 호의의 시선도 그들에게는 부담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정영선 작가는 “편견과 차별,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인해 탈북자들이 또 다른 분단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행사가 있기 전날에는 하나원에서 만난 탈북자로부터 “자기들은 그냥 조용하게 아무도 모르게 살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힌 정영선 작가는 “북한에서 왔다는 걸 알리는 순간 차별, 배제, 편견의 시선으로 인해 피곤할 수밖에 없다.”며 편견, 차별, 색안경에서 벗어나 탈북자들에게 제대로 된 소통의 문을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에 땅 사러가겠다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전기와 철도를 놓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전기 철도는 놔야겠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선진국이 후진국에게 하는 이야기들이다. 북한과 우리는 한 국가였고, 한 민족이기에 자본 이외에 할 수 있는 걸 고민해야 하지 않나."라고 말한 정영선 작가는 "탈북자들에게 소통의 기회가 먼저 주어졌으면 좋겠다"라며 집필 의도를 밝혔다.
김상훈 기자
생각하는 사람들
정영선 지음 | 280쪽 | 14,800원 | 2018년 5월 24일
정영선 작가의 장편소설. 작가 정영선은 2013년~2014년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 하나원 내 청소년 학교에서 파견교사로 근무했다. 2년의 시간 동안 탈북 청소년들의 삶을 지켜보며 남한사회에서 북한출신자들이 겪는 또 다른 문제들에 주목하게 됐다. 또한 단순 정착을 넘어 사회, 경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그려나갈 수 있는 방안들에 대해 고민했다. 이 소설은 작가의 그러한 관찰과 고민의 결실이라 볼 수 있다.
생각하는 사람들 - 정영선 지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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