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토요판] 르포

     습지, 어느 하나 사소하지 않은 생명들의 분투


▶서울 은평구 진관동 습지는 북한산 유일의 생태·경관보전지역이다. 거대도시 서울에선 존재 자체가 드문 습지다. 2005년부터 13년 동안 매주 습지를 찾아 관찰하고 기록한 책 <습지 그림일기>가 최근 나왔다. 서울에 71.5㎜의 비가 쏟아진 다음날 작가와 습지를 찾았다. 도로 옆 샛길로 들어서자 논도, 밭도, 들도, 산도 아닌 세계가 펼쳐졌다. 폭우를 견뎌낸 생명들과 분투하는 생명들이 그곳에 있었다. 변화하는 습지 환경에도 포기하지 않고 각자의 세계와 치열하게 맞서고 있었다.

사력을 다해 살아남은 존재들이 그곳에도 있었다.

“여기쯤 있었는데….”

수풀 사이를 눈과 손들이 조심스레 살폈다.

“어제(6월26일) 비가 많이 와서 떨어졌나봐.”

일주일 전 확인한 위치를 되짚었지만 ‘여기쯤 있던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전날 서울엔 71.5㎜의 비가 쏟아졌다.

“찾았다~.”

“어디 어디?”

일행들이 모여들었다. 고마리(습지식물) 줄기에 애벌레가 매달려 있었다.

“장하게도 살아남았네.”



논도, 밭도, 들도, 산도 아닌 세계

자세히 보면 애벌레가 아니라 애벌레처럼 생긴 벌집이었다. 작은 벌 몇 마리가 열심히 집을 짓고 있었다. 완성되면 애벌레와는 종(種)도 식성도 다른 포식자가 집 이름에 똬리를 틀게 될 것이었다. 집이 뱀 허물을 벗어 놓은 모양이라고 해서 벌의 이름도 ‘뱀허물쌍살벌’이었다.

노박덩쿨 틈에선 ‘호리병벌집’이 대롱거리고 있었다. 멧밭쥐는 풀을 돌돌 말아 작고 옴팍한 집을 지어 놓았다. 구멍에서 나온 오색딱따구리가 부리로 나무를 쪼다 날아갔다. 고라니가 와서 나무의 연한 순을 뜯어 먹었고, 멧돼지들이 다녀간 자리마다 풀들이 엉덩이 자국처럼 눌렸다. 어느 하나 사소하지 않은 생명들이 치열한 세계를 이루며 제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진관동 습지(서울시 은평구 진관동 282-1 일대 1만6639㎡)에서였다.

한연숙씨가 주방용 뜰채로 웅덩이 물을 떴다.

새끼 도롱뇽, 개구리 올챙이, 실잠자리 수체….

뜰채에 건져진 생명체들이 투명한 플라스틱 반찬통에서 헤엄쳤다. 일행들은 사진을 찍고 상태를 관찰했다. 습지 곳곳에 크고 작은 물웅덩이들이 숨어 있었다. 옆 웅덩이에선 박은경씨의 목소리가 커졌다.

“조개다, 조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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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 그림일기 - 10점
박은경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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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동글동글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