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따라 만나다
빨리 가면 안보이던 것
몰랐던 것, 스쳐지나가던 것들을
1992년 부산에서 경남 고성으로 거처를 옮겼죠. 내가 사는 마을은 고성군 대가면 갈천리 어실마을이라고 깊은 곳이예요. 우리 마을에서 고성읍까지 다니려면 오전 7시, 오후 3시 이렇게 하루 두번 있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좀체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웠죠.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그는 걷기 시작했다고 했다. 가는 데만 2시간 반이 걸렸다. "그때부터 길과 친해진 것 같습니다."
동길산 시인이 산문집 '길에게 묻다'(산지니)를 냈다. '길에게 묻다'는 말 그대로 길 위에서 길과 대화하며 쓴 글이다. 합천 밤마리 들길을 시작으로 창원 주남저수지 둑길, 최계락 시인의 외갓길, 진주 경남수목원 침엽수길, 남해 다랑이마을 논길, 거창 빼재, 고성 대가저수지 등 경남 20개 시·군의 사연 있고 풍경 있는 길들을 급할 것 없이 걸었다. 영주동 시장통길, 이기대 해안길, 청사포 오솔길, 영락공원 묘지길 같은 부산의 길도 담았다. 부인 박정화 씨가 동행하며 그 풍경을 사진으로 담았다.
영주동 시장길과 청사포 오솔길
요즘엔 부산서 보름, 고성서 보름씩 지냅니다. 부산에 있을 때도 걷습니다. 약속이 생기면 해운대에서 서면이나 중앙동까지 걸어갑니다. 운동 삼아 모래주머니를 발에 차는 날도 있어요.
약속시각보다 두어 시간 일찍 출발해 걷다보면 길 위에서 빨리 가면 안보이는 것, 몰랐던 것, 스쳐지나가던 것을 보게 되고 옛날 그대로여서 반가운 풍경과 변해서 흥미로운 풍경을 챙기고, 사람을 만날 수 있단다.
생소한 길의 설렘도 좋지만 기억이 묻어있는 길이 좋더라고요. 내가 영주동에서 태어났으니 책 속의 영주동 시장통길에 애정이 많이 가고 지금 살고 있는 고성의 대가저수지길도 사랑하죠. 숨어있는 것은 아니면서 낮고 평평해서 예쁜 티, 잘난 티 안내는 그런 길이 오래 마음 속에 남습니다.
주남돌다리
이 책은 동 시인이 2007년 '국제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다듬고 엮은 책이다. "문체를 현재형으로 했습니다. 길을 걷고 있는 이 느낌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에. 문장에서 반복법이 자주 쓰인 건 벽돌을 한장 한장 쌓아올리는 삶의 과정을 그런 방식으로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거고요."
* 2009년 2월 19일 국제신문에 실린 조봉권 기자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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