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기 직전 누워서 책을 보는 시간은 하루중 제일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근데, 책을 읽고는 싶은데 하루종일 모니터에 시달린 눈이 책읽기를 거부할 때가 있다. 그럴땐 남편에게 읽어달라고도 하는데 문제는 남편의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는 거다. 물론 부탁하는 처지에 아나운서처럼 또박또박한 발음까지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부산토박이인 남편의 발음은 '으'와 '이' 가 구분 안되는 건 기본이고 간혹 뭔소린지 알아듣기힘들 때도 있는데 그러면 몇번씩 되물어야 한다. 게다가 책을 소리 내어 읽는 일이 무척 쑥스러운지 감정도 없이 줄줄 읽어대기만 하니 재미가 없다. 그로 그럴 것이 초등학교 때 매일매일 국민교육헌장을 낭독해본 일 외에는 살면서 낭독의 경험이 전혀 없는 것이다. 실은 나도 그렇다.
일본에서는 책 읽어주는 로봇도 개발되었다고 한다. 카메라 눈으로 글을 인식해 소리 높여 책을 읽는데, 아직 목소리도 기계음이고 단어 인식 능력도 낮아 초급 수준의 책밖에 읽을 수 없지만 앞으로 기술이 향상되어 보고 싶은 책을 척척 읽어준다면 글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나 시각장애인, 시력이 나빠진 노인들에게 절친한 독서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금정도서관에서 책 낭독회를 한다. 낭독의 주인공은 최영철 시인이다. 지역주민 누구나 신청만 하면 가서 들을 수 있다.
책 낭독회 바로 가기
* 최영철 블로그 <마사리 일기> 바로 가기
'낭독의 발견'에 출연한 배우 박철민
우리에게 책 낭독회는 아직 익숙하지 않다. 책은 눈으로만 보고 읽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다른 사람이 낭독하는 것을 들을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요즘엔 책읽기 운동이 유행처럼 번져 도서관이나 대형 서점 등에서 작가들의 낭독회가 간혹 열리고는 있지만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한번은 배우 박철민이 나왔는데 참 인상적이었다.
자작시 <비광>을 낭독했는데, 웃겨서 사람들이 뒤로 다 넘어갔지만 동시에 감동적이었다.
'빛나는 조연'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된 배우의 인생을 한줄로 표현해주는 멋진 시였다.
"나는 비광, 없어봐야 소중함을 알게 되는 슬픈 광!"
구수한 목소리로 <태백산맥>의 한구절도 읽어 주었다.
"똑 엄니 한숨맹키로 길다." 광조가 불쑥 말했다.
"머시가?" 덕순이가 동생을 쳐다보았다.
"방죽 말이여."
"방죽이 엄니 한숨맹키로 길어?"
맛깔스런 남도사투리로 재현된 소설 속 한구절 덕분에
십여년 전 덮어 둔 <태백산맥>을 한번 더 읽어보고픈 마음이 들었다.
이게 바로 낭독의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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