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주민들을 얼마나 얼마나 정확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한국인들의 눈에 비친 아시아인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아시아인들의 눈에 비친 아시아인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자연의 재앙에 노출되어 있는 아시아인들의 인생은 어떠한가.
정치 경제적으로 각각 다른 체제 속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아시아인들의 인생은 어떠한가. - '시인의 말'에서
노파는 웃는다
한국 공장에 취직하러 간다는
손자 덩군터숭는을 볼 때마다
한국말을 모르는 척
한국을 모르는 척
노파는 병상에 누워서
손자 덩군터숭는과 잡담을 나눈다
당연히 태국말로
이젠 더욱 한국에 갈 수 없고
이젠 더욱 한국어를 쓸 수 없겠지만
노파는 망설인다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일제 때 처녀로 정신대에 끌려왔다가
태국 여자 행세하며 할머니로 살아남은 신세를
처자식까지 있는 손자 덩군터숭는이
한국 공장에 가서 몇 년 열심히 일하고 돈 모아
태국 집으로 돌아오면 부자 된다고 자랑할 때마다
노파는 속마음으로 속마음으로 바란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제 얼굴과 할머니의 얼굴에서한국인의 이목구비를 느낄 수 있기를
-「귀국」, 184쪽
지금 한국 사회에는
“수난당하는 이주민들을 도와주자” 46판 양장, 정가 12,000원
“그들을 한국인으로 인정하자”
“한국의 배타적 민족주의를 비판하자”
라는 담론이 들끓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어려운 경제 사정과 한국인들의 실업난을 빌미삼아 이주노동자에 대한 질시와 추방의 분위기 또한 고조되고 있다.
지젝(Slavoj Žižek)은 인종차별주의의 논리를
‘우리의 향락을 타자가 박탈했다는 향락의 절도’라는 관점에서
분석한 바 있는데, 지금 한국사회에서도 그러한 심리적 박탈감이 이주민들을 향해 표출되고 있다.
시집『입국자들』은 이주민들을 도움을 기다리는 고통받는 얼굴로만 고정시키지 않고 다양한 표정을 간직한 이들로,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으로 그리고 있다.
이주민들은 자기들끼리 사기를 치기도 하고, 한국 체류기간 동안 고용주에게 배운 나쁜 버릇을 자국에서 되풀이하며 자신의 배를 불리기도 한다.
한국에서 돌아온 쩐주이호안 씨는 / 베트남에서 오토바이 수리점 차렸다 // 합법체류 이 년 불법체류 팔 년 / 청년 때 가서 일해 돈을 모아 / 중년이 되어 돌아온 쩐주이호안 씨는 / 수리공들 일찍 출근시키고 늦게 퇴근시키고 / 봉급 적게 주며 미루었다가 / 제풀에 지쳐 떠나가게 만들었어도 / 오토바이는 제때 고치도록 했다 // 한국인들이 하던 그대로 / 베트남인들에게 똑같이 하니 / 저절로 손님들이 꼬여서 / 장사 잘 된다는 쩐주이호안 씨는 / 신형 오토바이 타고 다니며 거드름 피웠다 // 그러나 한국으로 취업하러 가려는 / 젊은이들이 찾아와 도움말 한마디 구하면 / 쩐주이호안 씨는 입 꽉 다물어버린다
- 「소자본가」, 208쪽
책에는 이주민들과 맞대면하는 한국인들의 모습도 담겨 있다.
그 안에 그려진 한국인들 역시 이주민들처럼 다양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다. 시인은 한국인 비정규직 노동자와 외국인 불법체류 노동자의 신세가 다르지 않다고 꼬집기도 한다. (연합뉴스)
한국인 노동자도 외국인 노동자도 / 봉급에 별 차이가 없으니 / 인도네시아인 하디링랏 씨는 / 한국인 철진 씨가 안쓰럽다 // 철진 씨는 한국 수준으로 쓰니 / 모자라서 빌리러 다니고 / 하디링랏 씨는 인도네시아 수준으로 쓰니 / 송금하고 나머지로 먹고 입는다 // 한국인 철진 씨도 /인도네시아인 하디링랏 씨도 / 언제 잘릴지 모르기는 마찬가지 // 노동자론 힘들기는 마찬가지여도 / 철진 씨는 한국에서 지내야 하므로 잘 살 수 없을 것이고 / 하디링랏 씨는 인도네시아로 돌아가면 잘 살 것이다 / 피차 그렇게 생각하며 /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 쉴 때는 옆에 주저앉고 / 일할 때는 물건을 맞잡고 옮긴다
『입국자들』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탈북과 그 이후의 고난ㆍ가난ㆍ그리움 등 탈북자 문제를 소재로 하고 있는 「국경 너머」(1부), 몽고ㆍ중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해온 이들과 현지 가족들의 삶을 다루고 있는 「사막 대륙」(2부), 동남아시아에서 이주해온 이들의 한국생활을 소재로 하고 있는「이주민들」(3부), 한국에서 고국으로 귀환한 자들과 한국에 간 이들을 기다리는 현지 가족의 생활을 다룬 「귀환자들」(4부)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은 무엇보다 이주민 개개인들과의 개별적인 만남을 중시한다. 우리들은 흔히 이주민을 개인 그 자체로 보기보다는 인종이나 민족적 차원으로 환원하여 대면하곤 한다. 예컨대, 이주민 개개인을 깜둥이, 필리핀인, 태국인 등으로 환원하여 호명한다. 그리고 민족이라는 집단에 스스럼없이 동화되어 그들을 대면하기도 한다. 그 결과 이주민들에게 배타적인 민족감정을 드러내고, 그러한 배타성을 집단 내부의 책임으로 전가하여 별다른 죄책감 없이 폭력적인 행위를 자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은 이주민을 집단으로 보지 않고 그들 개개인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고 있다. 이것은 이주민들을 국적이나 인종과 같은 집단으로 보는 태도에 맞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업이다. 또한 그것은 민족 감정이 발현되기 쉬운 집단 대 집단으로서의 만남이 아니라, 서로의 인간적인 면모를 확인하고 교감할 수 있는 개인 대 개인으로서의 만남을 만들어가려는 의지가 나타난 작업이기도 하다.
1954년 경북 의성 출생으로 호는 河詩이다. 그동안
"자본주의를 향해 질주하는 아시아 각 국가와 한국 사이에서 생존하려는 평범한 인간 개개인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그리고 서울의 변두리에서 사는 나는 부산을 중심으로 터잡아 출판 활동하는 ‘산지니’에서 시집을 출간하여서 특별히 기쁘다." - '시인의 말'에서
차례
제1부 국경 너머
재배하우스 / 목련 / 말투 / 초청 / 대면식 / 젊은 여자 / 구경 / 적금통장 / 부부 / 남자종업원 / 짓거리 / 출향 / 시급(時給) / 별미 / 강가에서 / 독상(獨床) / 화전(花煎) / 타국 / 봄꽃 / 국경 너머 / 월경(越境) / 비 내리는 날 / 과수 / 접경지대 / 이국
제2부 사막 대륙
푸른 하늘 / 장맛비 / 닮은꼴 / 신혼시절 / 변두리 동네 / 놀이터 / 전업 / 전 재산 / 후예 / 고물자전거 / 겸상 / 비행 / 아이 몇몇 / 속울음소리 / 방사림 / 직업 / 밑천 / 편서풍 / 방풍림 / 이주 / 페트병 / 귀가 / 모터펌프 / 호수 / 플라스틱 통 / 쌍봉낙타 / 두 눈 / 사유(私有)
제3부 이주민들
작은 공장 / 돌연사 / 밴드와 막춤 / 기후 난민·1 / 값 / 공중목욕탕에서 / 먼 메콩강 / 눈비음 / 열대야 / 신분 / 목적지 / 교제 / 첫눈 / 첫낯 / 여권 / 봉급 / 연인 / 속사정 / 공단 밤거리 / 비정규직 / 오해 / 장애 / 메콩강, 메콩강 / 휴일 / 외모 / 구직자들 / 시내버스정류장에서 / 사전 / 축제
제4부 귀환자들
귀국 / 메콩강 / 모델료 / 안나푸르나 / 불행한 휴식 / 뉴스 / 알 수 없는 일 / 한 가지 이유 / 전후(前後) / 우기 / 연(緣) / 악랄한 공장 / 소자본가 / 악수 / 세 번의 행운 / 가까운 메콩강 / 서글픈 귀환 / 금의환향 / 취업 / 관광객 / 귀국자 / 메콩강 가 / 소식 / 난민 / 기후 난민·2 / 생리휴가 / 신출(新出) / 섬나라
* 『입국자들』책소개 더보기
입국자들 - 하종오 지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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