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왜 왔니?”는 “우리집에 놀러와”라는 말과 천지차이다. 이 말을 듣는 자는 고스란히 ‘불청객’의 처지에 떨어지고 만다. 영화 <우리집에 왜 왔니?>는 자살미수에 그치곤 하는, ‘병희’네 집에, 정체불명의 여자 ‘수강’이 쳐들어온다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가택침입죄’에 해당하는 이런 일도, 영화니까 용서되고 하나의 스토리로 풀려나간다.
그렇다면 소설 『우리집에 왜 왔니-처용아비』는 어떨까? 박명호 작가는 ‘불청객’과 ‘가택침입’에 관한 스토리를 어떻게 풀어냈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안고, 지난 9일 부산작가회의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 참석했다.
갑자기 만난 비 때문에, 조금 늦게 들어갔더니, 문학평론가 손남훈 선생님의 발제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손 선생님은 발제문에서 “박명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현재의 ‘나’에게서 결핍된 그 무엇을 탐구하며 (…) 절대적인 그 무엇의 가치를 추구하며, 일상의 가치들에는 무관심하다”고 분석하고 있었다.
왼쪽에서부터 사회자 황은덕, 작가 박명호, 발제자 손남훈, 토론자 조명숙.
표제작인 「우리집에 왜 왔니」의 인물들 또한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이들로 그려지는데, 이에 대해 손 선생은 “법과 관습을 철폐하고, 성적 자유를 회복하는 것이 옳다 하더라도, 이것은 불륜을 합리화하는 논리가 될 수 있다. 어쩌면 순도 백퍼센트의 사랑이란 관념적 이데올로기의 함정일 수도 있다”며 불편함을 드러냈다.
(여기서 잠깐, 「우리집에 왜 왔니」의 스토리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짧게 설명드리자면, ‘나’와 ‘연이’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 ‘연이 남편’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이루어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조명숙 선생님 또한 불편함을 토로했다. “주인공이 사랑을 실행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섬싱’도 없고, 기껏 해봤자 ‘입맞춤’이 전부다. 성인남녀의 사랑을 이토록 ‘소극적’으로 그려낸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또한 ‘욕망’이 두드러지게 그려지고 있는 것에 비해 감정적 교류나 교감은 그려지지 않고 있다. 정리하자면 박명호 작가의 인물들은 ‘소극적’이고 또한 ‘남성적’이다”라고 따끔하게 비판했다.
박명호 소설가는 이에 대해, “남성적 혹은 소극적이라는 비판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다. 다만 내가 그려내려 했던 것은 왜곡되고 오염된 사랑이 아닌, 관념 이전의 순수한 사랑이었다. 사랑은 본능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달리 말해, 원시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고 대답했다.
어쩌면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처용 역시, ‘사랑은 본능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아내의 불륜현장을 목격하고도 분노로 제압하는 대신, 춤과 노래로 쫓아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이어지는 토론을 들으며, 박명호 선생이 제시한 ‘사랑론’은 처용의 마음과도 통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사회자 황은덕 선생님이 “여성들을 지나치게 기능적이고 이상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 아닌가? 여성인물들은 하나같이 주인공에게 깨달음을 주거나 혹은 닿을 수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고 지적하자, 박명호 선생님은 “여자는 꽃이다. 연애감정이 있는 여자라면 누구라도 꽃이다”라는 선문답 같은 대답을 하셨다.
토론은 어느새 마무리되어갔고, 내 머릿속엔 “여자는 꽃이다”라는 알쏭달쏭한 말만 맴돌았다. 지금 이 글을 정리하며, 책을 다시 펼쳐보니 ‘작가의 말’ 중에서 다음 대목이 눈에 띈다.
결국 꽃의 문제인 것이다. 나는 늘 그 닫힌 문 앞에서 문이 열리기를 애태우고 있다. 그것이 소설가로서의 나의 본질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그렇다면 결국, 소설도 여자도 박명호 선생님에게는 ‘꽃’으로 은유된 게 아닌가 싶었다. “사랑은 본능이고, 원시적인 것”이라는 단순투박한 사랑론이 관념에 찌든 우리 머릿속을 어떻게 정리시켜줄 수 있을지? 궁금하신 분들은 『우리집에 왜 왔니-처용아비』를 읽어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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