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시를 싫어하는 학생이었습니다. 학창시절 열등생이었던 저는 책읽기는 무척이나 좋아했지만, 유독 국어 과목을 싫어했습니다. 우연찮게 글쓰기 대회에서 몇 번 수상하는 계기로 인해, 담임선생님께서는 국문학과 진학을 진지하게 권유하시기도 하였지만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철학이나 사회학이나 다양한 학문도 많은데, 국문학이라니요. 글쎄요 선생님, 전 글쓰기가 좋지만 대학 가서도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 밑줄을 그으며 그 알 수 없는 '님'의 의미를 규정하는 일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요, 라고 마음속으로만 외치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시 해석이 언어영역 답안지에는 오답이였고, 정답을 찾아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써야만 했던 우울한 청춘이었죠. 한 평론가에게 독설을 받고 '깊이'란 무엇일까 고민하다 자살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인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 속 이야기처럼, 제가 문학 이론을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7,8 년의 시간이 흘러 저는 출판사의 편집자가 되었습니다. 지나고 나서 그때 학창시절 가졌던 비뚤어진 마음을 툭 던져놓고 보니, 우리 문학 속에는 한 구절 한 구절마다 제 삶 속에 비집고 와닿는게 많았습니다. 대학 시절 사귀던 친구와 이별하며 읽었던 기형도의 「빈집」이나, 무척이나 우울하고 외로웠던 어떤 날 서점에 들려 구입해 읽었던 최영미의 시집 『도착하지 않은 삶』은 내 삶의 공백 속에 들어와 잔잔한 위로가 되어주었던 것이죠.
사실 저도 이 책을 읽기 전, 그저 그런 문학 평론서이자 이론서이지 않나 하고 치부해 버릴뻔 했습니다. 『한국시의 이론』이라니... 너무 거창한 것 아니냐, 하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책의 놀라운 비밀은 이 책이 제 학창시절을 괴롭혔던 '은유', '직유'와 같은 이론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는 점입니다. 이 책을 설명하자면, 바로 차유의 시학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이 됩니다. 차유가 대체 무엇이냐고요? 그럼, 지금부터 저와 함께 11월의 끝자락, 부산대학교 북스리브로 3층 금정구예술문화지원센터에서 있었던 그 열정의 시간 속으로 떠나보시는 건 어떠실는지요..?
행사 현수막을 붙이고 있는 온수 편집자와 엘 편집자. 우리가 누군지 궁금하시면 다음 저자와의 만남때 꼭 참석하시라!!
사회를 맡으신 문학평론가 손남훈 선생님도 저와 같은 생각이셨나봅니다. 시작하면서, 대뜸 하시는 말씀이 『한국시의 이론』이라는 이름을 듣고 두가지 생각이 드셨다고 하는 거였습니다. 첫번째는 이거 제목만 거창하게 해놓은 이른바 낚시 아니냐, 하는 것과, 두번째로는 그만큼 충실한 내용을 담았기에 자신감에서 나온 제목일 것이라는 의도로 읽으셨다고 합니다. 요즘 나오는 비평서들을 보면 대체로 수식이 많고 거대한 제목이 많은데, 그것과는 달리 무덤덤하게 툭 내뱉음으로 해서 오히려 더 정감이 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책은 시에서 이루어지는 은유, 환유 개념을 설명함과 동시에 신진 선생님께서 착안하신 '차유'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장으로 이어집니다. 신진 선생님께서는 동아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어쩔 수 없는 교수의 신분상, 계속해서 논문을 작성하게 되면서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시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시에 대한 논리적인 생각은 애초부터 있어왔는데 논문을 쓰면서 어느정도 이론이 정립이 되었고, 그렇게 정립된 이론을 바탕으로 책 출간을 결심하게 된 것이지요.
사진 촬영에 흔쾌히 응해주시며, 밝게 웃어주었던 그날의 신진 선생님.
차유란 무엇인가라는 대목에서, 선생님은 자신의 제자를 빗대어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를 테면, 이런 겁니다. 누가 혜영이 어떻노, 하고 물어보는데, 누군가는 이렇게 답하겠지요. 혜영이 예쁘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대답하기를 혜영이 가는 개똥이다 카거든. 그런데 여기서 개똥이라다고 하는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거요. 예쁘다라고 표현하는 것 보다 더 좋은 의미일 수도 있는 거지요.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보는 겁니다."
현대 생활어에서 필수적인 요소인 '상황적 의미'를 두고 한 말입니다. 선생님은 이에 덧붙여 시를 읽으며 독자가 그 시의 의미 규정에 참여하면서 상황을 상상하게 된다고 '차유'(transfer) 이론을 정립하셨습니다. 그럼 책에는 이 이론이 어떤식으로 제시되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차유는 은유와 환유에 대비되며, 문자 그대로 차이성의 비유란 의미이다._75p
차유는 그 일부가 전통적 수사법에 있어 아이러니류로 취급되어 왔다. 하지만 이를 계속 아이러니로 묶어 두지 못하는 이유는 이들이 비유와 같이 고의적으로 언어의 축어적 용도를 저해하며, 전이를 통해 특수한 의미와 기능과 어법을 갖추는 동시에, 언어 생성 원리의 한 축이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차유의 기능은 본질적이고 광범위 하다. _87p
제가 간절히 바라던 이론이었습니다. 무릎을 탁, 치게 되더군요. 빗대어 설명하되, 상황적 논리를 적용하여 시 해석을 독자에게 맡기는 것. 신진 선생님이 단순한 평론가가 아니라 미학자로 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역시 시인이 말하는 시 이론이라서 그런가요. 국어 교과서처럼 딱딱하지 않아 절로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더군요.
더불어 선생님께서는 시 창작방법론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요. 지금의 시 논리체계로는 시에 대한 바른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일갈하셨습니다. 많은 이들이 시를 쓰면서 치유받고, 또 그런 즐거움을 누려야 하는데 지금의 일률적인 교육이 사람들을 시에서 멀어지게 만든다고 한탄하셨습니다. 시란 남과 차이 나는 언어를 갖는 것이라고, 그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기 위해 남다른 생각, 남다른 사고, 남다른 세계관을 갖게 해주는 게 바로 시 창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그저 외국 시를 모방하기만 해왔는데 이러한 선생님의 차유 이론을 도입한다면, 이는 곧 시의 본질에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백일장에서 시를 쓰면서 나오는대로 생각나는대로 끼워맞추며 눈 앞에 있던 사물과 내 생각을 조립하며 시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신진 선생님의 시 창작 수업을 들었더라면 좀 더 다른 사고를 통해 좋은 시를 쓸 수 있었을까요?^^ 모를 일입니다.
저자와의 만남에 참석하신 많은 사람들!
독자와의 대담 시간에서는 다양한 질문들이 오갔습니다. 차유 이론을 생각하게 된 시 한 편을 묻는 질문에서는, 시 한 편은 아니었다고 답변하셨습니다. 직유인지 은유인지 대답하라는 국어 시험 질문지에 염증을 느껴 다른 축을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답변을 들려주셨는데요. 실제로 직유, 은유, 환유와도 같은 맥락이 딱 맞아 떨어지는 시는 별로 없다고 하십니다. 모든 언어가 상징적이기 때문에 그 상징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이론을 만들어내고 싶으셨다 하십니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온 시인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시인을 묻는 질문에서는 김현석 시인과 박남수 시인을 꼽으셨는데요. 특히 박남수의 「새」를 좋아한다고 하셨구요^^.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서는 칼럼을 쓸 계획 중이며, 앞으로 평론집, 산문, 동화집, 시집 정도 책을 더 낼 계획이 있다고 넌지시 알려주시기도 했습니다. 신진 선생님의 앞으로의 일들 모두 잘 되시길 바라면서 그만 총총!!
아 참! 다음 주 월요일에 있을 『밤의 눈 』의 저자, 조갑상 선생님과의 시간도 빠지지말고 꼭 들려주세요..^^
조갑상 교수님 저자와의 만남 :: 관련 포스팅으로 바로 가기!!
한국시의 이론 - 신진 지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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