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나라는 시끄러워지고 없는 사람은 점점 더 구석으로 내몰리는 세상이다.
재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그나마 틀고 있던 보금자리를 빼앗기고 밀려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 뉴타운 행복도시가 허울 좋은 구호일 뿐이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재개발로 번듯한 아파트가 들어선들 거기 다시 발붙일 수 있는 사람은 그나마 가진 돈이 있는 사람들이다. 재개발이 돈 많은 투기꾼들의 배를 불려주거나 시공을 맡아 하는 건설회사의 이익에 봉사하는 일일 뿐이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됨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건설 또 건설, 삽질 또 삽질을 멈출 줄을 모른다. 벌써 6개월 전에 용산참사라는 엄청난 희생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반성할 줄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참담한 상황이 우리의 일만은 아닌 모양이다. 흔히 우리나라보다 10년을 앞서간다는 이웃 나라 일본의 상황도 어쩜 그렇게 우리와 비슷한지.
공공의 가면을 쓰고 대기업의 대규모 도심개발이 진행되면서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주민을 위한 배려는 없다. 대규모 도가도로가 도심을 통과하면서 인근 주택가는 생활공간이 완전히 차단되어버리고, 별 필요도 없는 공항을 건설한답시고 수십 년 농사짓고 있던 사람들을 내쫓아버린다.
도심 주택가를 분단시키는 고가선로와 도심 한가운데 떡하고 자리잡은 비행장
정부가 기업의 편에 서서 노동자를 무시하는 정책도 우리와 너무나 닮아 있다. 멀쩡한 국철을 민영화하면서 그 이익은 몇몇 대기업과 거대 언론사들이 가져갔고, 그 와중에 해고당한 노동자 천여 명은 아직까지 투쟁 중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우체국까지 민영화하지는 않았지만 일본은 우정공사를 민영화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게 미국의 금융, 증권, 보험업계의 금융자본에 고스란히 이익을 갖다 바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앞에는 고이즈미가 있었던 것이다.
일본에는 ‘문어방 노동’이라는 말이 있다. 문어를 잡기 위해서는 단지를 덫으로 쓰는데, 문어는 이 속에 들어가면 절대로 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 더 참혹한 것은 문어가 이 단시 속의 열악한 상황에서 제 다리를 뜯어 먹으며 6개월을 버틴다는 것이다. 이는 일제강점기 노동력이 부족한 훗카이도에 강제로 노동자들을 끌고 가서 일을 시킨 데서 비롯되었는데, 일본에 징용을 당해 수용소에 갇혀 강제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인 노동자들의 환경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이 일본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다. 참혹하고 비참한 환경에서 제살을 뜯어 먹으면서 버틸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 일 해도 일 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워킹푸어’. 신주쿠에서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고,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했다가 죽임을 당하는 사례도 있다. 이 또한 실업자들이 늘어나고,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있는 우리의 상황과 어쩜 그리 비슷한지. 우리나라의 청년실업자나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바로 그 ‘문어방’에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요즘 전교조 시국선언 교사를 탄압하는 수위가 한참 높아지고 있다. ‘양심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을진대, 정치적 견해를 표명했다고 해서 징계를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일본에서도 교육계의 우경화가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왜곡된 교과서를 발행한다든가, 기미가요 제창을 의무화한다든가 하는 것이 그런 일들이다. 하지만 일본에도 양심적인 교사들이 있어서 이에 반대하고 학생들과 함께 토론식 수업을 할라치면, 교육 당국은 그런 교사들을 감시하고 징계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교원노조 교사들을 학교에서 쫓아내기도 한다. 어쩜 그리 우리와 상황이 똑같은지. 노조 활도을 이유로 해고된 다이세이고교 교사들이 학교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伊田浩之
『르포, 절망의 일본열도』는 절망으로 치닫고 있는 일본의 사회 현실을 구석구석 파헤쳐 르포 형식으로 담은 책이다. 일본의 저널리스트이자 르포작가인 가마타 사토시는 30여 년간 고통 받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르포를 써왔는데, 이 책은 그가 일본의 진보적 시사주간지인 <주간금요일>에 연재한 기사를 모은 것으로, 절망적인 일본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하지 않고 갈수록 보수화, 우경화되는 현재의 일본을 저자는 절망사회로 규정하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모습이 지금의 대한민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절망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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