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럴 때 있다. 내가 선한 의도를 가지고 했던 많은 행위들이, 타인에게 기만적인 행위들로 비춰졌을 때 느끼는 당혹감과 무력감들을. 그럴 때마다, 내 자신은 참으로 바보같고 하찮아 보이는 데다 '열심히 했던 일들'에 대해 인정받지 못한 자책감으로 괴로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대체 이 관계의 소통망 구조는 애초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하며 말이다. 아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분명 있을 것이다.
지난 주 금요일, 『짬짜미 공모 사바사바』라는 생활수필집의 저자 최문정의 삶 또한 그러했다. 열심히 활동을 한다고 하고 있는데 타인들이 바라보기에는 뭔가 부족하고 어색하고 스스로의 자책도 들고, 무엇이 문제일까 고민하고 방황했던 7년의 삶을 최문정 개인의 스토리텔링으로 책으로 엮어낸 것이 바로 『짬짜미 공모 사바사바』이다. 책의 부제는 '활똥가 일기'지만 이 책을 결코 '활똥가'에 초점을 두지 않고 '청춘'에 방점을 찍고 책장을 넘기길, 당부드린다.
진솔하게 다가오는 책, 짬짜미 공모 사바사바
김필남 오늘 소개드릴 이 책은 '김여사'로 대표되는 최문정 저자의 가족분들 이야기와 함께 블로그와 잡지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엮은 책입니다. 일기체 형식이라 그런지 저는 웃으면서 읽을 수 있었고요. 실업극복지원센터는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요?
최문정 일자리가 필요하거나 돈이 필요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자활을 돕는 곳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돈을 준다는 게 아니라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지요. 정부지원을 받고 일자리를 연결해 드리거나, 이웃들에게 이런 분들이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고 미리 알려드립니다. 또한, 비정규직 근로자나 실직자들을 위한 근로법 강의를 위해 교육안을 만들고 가르치는 일을 병행하기도 합니다.
최문정 저자
인간 '최문정'의 삶을 배려해준 실업극복지원센터
김필남 프로필에 보니, 8월에 일을 그만두신 걸로 나와 있어요. 책을 읽다보면 일밖에 모르시는 워커홀릭으로 비춰지도 하는데 어떤 계기로 일자리를 그만두시게 된 거죠?
최문정 작년 제 나이가 무려 서른넷이었어죠. 결코 제가 결혼이나 육아라는 거창한 이유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게 아니라, 어쩌면 사소한 계기로 일을 그만뒀던 거죠. 이를테면 이런 거예요. 율무차를 맛있게 탔어요. 가루를 넣고 따뜻한 물을 부어서 말이죠. 그런데 이걸 안마시고 까먹고 나뒀더니 위에는 맹물만 남아있고 밑에는 가루가 가라앉아 있던, 그런 상태. 당시 제가 그런 자각이 들었던 거예요. 일종의 매너리즘이자 열정이 고갈된 상태였죠. 개인적인 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나 일 못하겠다!'하고 일어선 거죠.(웃음)
사실 상사로 계시던 실업극복센터 박주미 대표님이나 사무처장님, 모두 다 가족같은 분들이셨고 제가 그 말을 던지 이후로 약 사개월 동안의 술자리와 이야기들이 오고갔어요. 제가 그만둘 수 있었던 건, 그분들이 나를 '실업극복센터 직원'으로 바라보지 않고 '인간 최문정'의 삶에 대해 고려해주신 덕분이라, 참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김필남 인생을 율무차로 비유하시다니 너무 멋진 표현인 것 같아요. 책을 읽다보면 요리를 참 못하시는 것 같이 비춰지기도 해요. 채식햄버거라는 말도 안 되는 레시피를 착상한다던지, 김밥이나 삼겹살 같은 요리로 인생을 비유한다던지. 최문정 선생님에게 있어서 요리란 어떤 의미인가요?
최문정 하하. 제가 많이 먹어서 보이는 게 죄다 먹는 것뿐이라서 그래요. 사실 제가요. 제 이야기를 잘 전달 못하고 실수한 건 아닌지 전전긍긍해 하는 스타일이예요. 그래서 무언가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서 에둘러 표현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이를테면 김밥같은 경우 대선때 쓴 글인 것 같고, 연필 같은 경우 총선때 쓴 글인 것 같네요.
김필남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위원. 평론가.
시민단체 활동기가 아니라 그냥 편안한 낙서와 일기로 봐주었으면
김필남 저도 선생님의 그림 안에서 많은 것을 느꼈어요. 어떤 블로그에서 보니까 선생님의 책을 힐링도서라고 평해놨던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세상사는 게 각박한데 남을 배려하며 사는 게 쉽지 않은 일이죠. 타인의 삶에 대해 외면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고요.
최문정 음... 그런가요. 하하. 사실 '활똥가 일기'라는 부제로 출간이 되고, 시민단체에서도 이 책에 대한 입소문이 났나봐요. 그런데 많은 이들이 그러더라고요. 이게 무슨 활동가 일기냐, 그냥 낙서수준이지 하고요. 전 정확하게 봤다고 봅니다. 정말 전 편안하게 독자들이 제 글을 받아들여줬으면 하거든요. 저는 제가 읽은 책 중에 이 책이 제일 재밌더라고요.(일동 웃음). 정말 제 책이라서가 아니라, 빨리 읽히고 가벼워서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2년 동안 월간지 「작은책」에 연재됐을 때도 참 신기했어요. 저란 사람이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저를 믿고 매달 연재를 맡기셨을지 작은책의 안건모 선생님께 늘 감사드리고 있고요. 정기적으로 써야한다는 부담감에 좀 더 신경써서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필남 그럼 제목 얘기를 좀 해볼까요? 『짬짜미 공모 사바사바』. 이 책 제목들었을 때 참 무슨 뜻일까 궁금하더라고요. 읽고나서야 이해가 됐지만(웃음). 그러니까 공모. 짬짜미. 사바사바라는 말이 다 같은 뜻임에도 말의 오해차이로 빚어지는 에피소드에서 따온 제목이었던 것을요. 제목을 이렇게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최문정 제가 제목을 선정한 것은 아니고요. 산지니 출판사 쪽에서..(하하). 일종의 판매전략이겠죠? 원래 제목은 '활똥가 일기'였어요. 제가 생각할 때 활동가란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될 수 없는 그런 존재같아 보였거든요. 그런데 제가 거기에 '활동가 일기'라고 글을 쓴다는 게 참 부담스러운 일이더라고요. 내가 하는 일이 활동하는 일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생각에서 부끄러움을 담고 '활똥가 일기'라고 붙였던 겁니다.
연민의 감정으로 '봉사'했던 게 아니라, 단지 조언자 역할이었을 뿐.
김필남 저는 금석이 이야기가 인상 깊었어요. 집 나온 가출 청소년이었는데 집에 돌아가라고 실업센터의 저금통을 깨서 돈을 탈탈 털어 주기까지 했음에도, 결국 집에 가지 않고 나중에는 '거기 있는 사람 다 좋은 사람'아니냐며 돈을 다시 요구해서 선생님이 속상했던 일을요. 여기에 대해서 좀 얘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최문정 저는요. 아이들이 제일 무서워요. 방금 전, 선생님께서 저보고 좋은 사람이니 착한 사람이니 하셨는데 전 제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고, 그런 사람도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내가 당장 돈이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다 주나요.(웃음) 50대 이상의 내담자가 저는 편해요. 아버지같고, 제가 무슨 조언을 해도 받아들이실 건 받아들이시고, 아니다 싶으면 선택 안하는 현명함을 지닌 분들이시니까요. 하지만 애들은 그 속내를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안타까울 때가 많죠.
김필남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봉사의 의미란 무엇인가요? 봉사와 활동의 개념 차이를 설명해 주실순 없으실까요?
최문정 글쎄요, 뭐가 있을까... 각자의 느낌 차가 아닐까요. 저는 실업센터 활동하면서 이게 직장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 많이 했어요. 봉사인지 활동인지... 활동가 교육받을 때는 절대 내담자를 가족같이 바라봐선 안 된다고 배웠긴 하지만 사람인데 어떻게 그러나요. 다 내 가족같고 그런걸요. 1년 동안 제 스스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느낀 점이 이게 봉사는 아니라는 거예요. 불쌍해서 도와주는 게 절대 아니라는 거죠. 저희는요. 몰라서 당하고 있으니까 화가 나서 도와주는 역할을 잠시 할 뿐이예요.
캄보디아에 간 적이 있는데, 전 정말 그들의 삶을 함부로 슬퍼할 수가 없더라고요. 내가 단지 그들의 삶을 불쌍하게 여기는 기분이 들 수야 있겠죠.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그 사람들도 충분히 그들 나름의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내가 뭐라고 그들의 삶을 재단하고 있는 걸까요. 실업센터 상담 활동도 마찬가지였어요. 저는 그들을 불쌍하게 여겨서 봉사한 게 결코 아니였어요. 단지, 사용자들의 잘못된 행위에 정당하게 분노하고 피고용인으로서 그들의 의식이 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 그게 제 나름의 몫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보통의 사람, 최문정. 그녀가 바라보는 사회문제
김필남 책 내용을 살펴보면, KTX여승무원 얘기도 나오고 한진중공업 사태도 나오는 등 사회문제에 대해 주위를 환기시키는 부분이 보입니다. 원래부터 사회문제나 복지문제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최문정 아니요.(웃음) 전 사실 평범한 사람이었어요. 뉴스는 거짓말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요. 그러니까 사회 문제에 대해 잘 몰랐던 거죠. 뉴스에 나오는 진실만이 전부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가다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누구라도 뉴스에 나온 진실이 아닌, 이 사람들의 목소리를 한번이라도 듣는다면 마음이 동할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계기가 들어서 이것저것 찾아보게 되었고요.
김진숙 님은, 그 얘기를 해야겠네요. 제가 TV를 굉장히 많이 보는 편이예요. 방학이 되면 방학계획표를 짜는 게 아니라 TV계획표를 짤 정도로요. 그러다보니 3초만 방송을 봐도 그 프로그램의 제목이 뭔지 맞출 수 있을 정도가 되더군요. TV에 많이 나오면 연예인이구나... 김진숙 님도 우연히 만나뵙게 됐는데, 뭔가 TV에서 많이 뵌 분인 것 같고 처음 시작은 그렇게 만났던 것 같아요. 그때가 한진중공업에서 단식하셨을 때였는데 많이 야위었을 때였죠. 많이 울었습니다. 또, 많이 아팠고요.
김필남 예술가 할아버지 얘기도 굉장히 재밌게 봤던 부분이예요. 최저 임금을 받는지도 모르고 계시다가 저항을 해야겠다고 결심하시고 결국 회사를 그만두시게 되는.. 선생님께서는 이 부분을 굉장히 고민하시더군요. 그만두시면 결국 할아버지는 짤리게 될텐데, 내담자의 '삶'에 대해서 고뇌하셨던 부분을요.
최문정 참, 그것 때문에 제가 중간에서 말을 잘 못해요.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사실 내담자 대다수도 상담하시곤 결국 열 분 중에 일곱 분은 고민하시다가 재방문을 안하세요. 두 분 정도는 그냥 진정서 내지 않고 생계를 이어가기로 결정하시는 분도 계시고요. 한 분 정도가 이 할아버지처럼 짤릴 각오하시고 싸우시는 분이시죠. 처음에 안오시는 분들에 대해서 화가 많이 났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좀 달라요. 그것도 다 그분들의 선택이었을 거라 이제와서 생각해요. 물론 진정서를 쓰고 회사와 싸우지는 않으셨겠지만, 그분들 나름의 삶의 변화는 분명 존재했을 거라고 믿습니다.
20대 청춘에게, 조금은 느리고 뒤처지겠지만 진심으로 '나'를 찾길.
김필남 여기 20대 대학생 분들도 꽤 오셨는데요. 그럼 화제전환을 해서, 청년들이 요즘 취업이 잘 안되고 있는 현실 속, 청년들의 자활과도 같은 제도지원도 센터에서 이뤄지고 있는 건가요?
최문정 그렇진 않아요. 청년들은 여기 안오거든요. 자신 스스로가 해결하고 싶어하고, 이런데 상담받기 꺼려하는게 대다수예요. 저도 예전에 그랬고요. 실업센터는 주로 고령자들만 오세요. 청년들의 자발적 상담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되요. 청년자활을 돕는 단체가 따로 있기는 해요. 실업센터에 가끔 가출청소년들이 오기는 하는데 그럴때 저희가 그쪽 단체로 연결해 드리기도 하고요.
김필남 부산대 근처이고 '도전하는 청춘'이라는 부제처럼 요즘 청춘들이 많이 힘들죠. 취직도 잘 안되고, 저만해도 비정규직 대학강사 신분이고요. 최문정 선생님께서 이런 20대 청춘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면요?
최문정 글쎄요. 저도 지금 백순데, 같이 구해야죠(웃음). 농담이고요. 그냥 제가 동생이 있었다면 하고 싶은 말은 있어요. 제가 뭐라고 조언하고 일침을 놓겠어요 그들에게. 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왜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봐야 아나'라는 어른들의 말이 있잖아요? 저는 정말 많은 경험을 했어요. 열 군데 넘는 직업군을 통해 알바, 계산원의 신분으로 뭐든 닥치는대로 일을 해왔어요.
그러다보니 깨달은 게 있는데 막무가내로 일을 하라고 종용하는 기성세대의 시각도 있겠지만 저는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보라'고 20대들에게 조언하고 싶네요. 물론 그러기까지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하겠지만요. 삶의 패턴은 또래들보다 조금 느리고 뒤처지겠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나를 깨닫고 보고 느끼는 시간은 풍성해 진다고 저는 믿어요. 제가 그랬으니까요. 진심으로 나를 채워갈 수 있는 시간은 20대가 아니면 힘들어요. 취직이나 스펙의 압박이 있겠지만 저는 청춘들이 너무 그런거에 매여 겁내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행동하고 고민하는 삶을 살고 싶다.
김필남 4부의 김여사님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최문정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가족들을 참 많이 아끼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선생님께 있어서 가족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최문정 가까이 있지만 여전히 어려운 존재인 것 같아요. 가장 안전한 곳이라 생각해서 자주 도망가게 되는 곳이 가족같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제 새로운 목표는 독립이거든요. 이런 말하면 저희 가족들이 서운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전 요즘 항상 이별연습을 하고 있어요. 가족간에 이별할 수 있는 타이밍이 필요한데, 저는 그게 필요했던 것 같아요.
김필남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최문정 저는 참 활동가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웠던 게,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그랬어요. 예전에 엄마가 지나가는 사람들이 길 물어 보고 그랬을 때, 잘 알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과잉친절을 베푸는 것 같아 말렸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제가 부끄러운 짓을 했었네요. 행동하고 고민하는 삶을 살고 싶은게 앞으로의 제 바람입니다. 저는 일 년 후, 이 년 후의 계획이 없어요. 오늘을 살고 항상 성실하게 내 밥값을 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잘 살게요.(웃음)
그날 참석해 주신 많은 분들.
짬짜미, 공모, 사바사바 - 최문정 글.그림/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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