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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일기

역사적 기록과 살아있는 이야기 -『화염의 탑』을 읽고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7. 5.

역사적 기록과 살아있는 이야기

-『화염의 탑』을 읽고

가을하늘


  이 작품은 2011년 부산문화재단 주최로 열린 한·중·일 포럼에서 논의된 이후에 나온 번역본이다. 부산 시와 시모노세키 시는 그간 자매도시로서 오랜 문화교류를 해왔으나 그동안 문학적 교류는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이번에 출간 된 『화염의 탑』은 한국과 일본, 부산과 시모노세키의 자매도시로서 문학적 교류의 결과물이다.


  처음 『화염의 탑』을 봤을 때, 로맨틱한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다. 표지는 분홍빛에 벚꽃이 눈처럼 흩날리고 있는 바탕 위로 하얀 탑이 우뚝 서 있다. 물론, 제목 까지 보고 나서는 조금은 역동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화염의 탑』을 처음 손에 잡았을 때, 문득 나는 역사소설을 꽤나 편식해서 읽는 편이구나 싶었다. 사실 역사소설이랍시고 읽은 것은 『칼의 노래』정도 밖에는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드문드문 『칼의 노래』가 떠올랐다.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처음 보는 인물을 다룬 『화염의 탑』과는 괴리가 있지만 anyway, 같은 역사소설이니까…….


  후루카와 가오루의 『화염의 탑』은 일본 역사 소설이다. 역사 소설을 읽을 때 힘든 점이라면, 소설 전반의 시대적 배경을 잘 알지 못하면 흥미가 떨어지기 쉬운 점이다. 그런 면에서 역사 소설은 초반부를 뛰어넘지 못하면 책을 끝까지 힘든 점이 있지만, 역사적인 맥락만 숙지한 이후에는 소설 주인공과 함께 역사를 함께 읽어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칼의 노래』의 경우라면 모르는 사람이 더 이상할 정도이긴 하지만)


  『화염의 탑』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일본 역사에 취약한 나로서는 초반 한 챕터를 읽는 시간과 나머지 부분을 읽는 시간이 비슷할 정도였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초반의 역사적 맥락을 숙지한 이후로는 몹시 빠르게 책을 읽어 나갈 수 있었다.(그만큼 흡인력이 높았다.) 『화염의 탑』은 ‘오우치 요시히로’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270여 쪽의 단행본이지만 그의 삶을 조명하는 부분과 역사적인 맥락을 설명하는 부분이 조화롭게 풀어져 있었다. 나같이 일본 역사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이더라도 요시히로가 살고 있는 삶의 배경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설명이 되어있는 탓이다.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화염의 탑』에 나오는 ‘오우치 요시히로’라는 인물은 아주 생소한 인물이었지만 그의 선조가 백제 왕족의 후손이라는 언급이 나온다. 요시히로는 자신이 백제의 시조인 고 씨 자손이라 호언한다. 이러한 부분은 작가가 소설적인 재미로 추가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부산과 가까운 야마구치 현에 본거지를 두고 활동한 기록과 정종에게 보낸 서신이 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또한 막부라는 중앙권력과 충돌한 ‘오에이의 난’을 대비하면서 조선이라는 국외에 망명을 계획한 인물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특별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특이점 때문일까, 소설 속 등장하는 요시히로라는 인물에게 쉽게 정이 갔다.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그렇게 시작한 요시히로의 삶은 이제 막 청년이 된 시기부터 소설은 시작한다. 첫 전장에서부터 그의 삶, 그가 살아온 기록이 소설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낱 글자에 불과했던 그는 후루카와 가오루라는 작가를 만나 하나의 인물로 육화되었다.


  『화염의 탑』에서 전쟁에 대한 묘사 부분은 간결하면서도 상상력을 자극했다. 16살의 나이로 전장을 나가기 시작한 요시히로는 2척 8촌의 검과 3척 1촌의 언월도를 휘두르며 전장에서 살아남은 그의 일대기는 박진감이 넘친다. 또한 그의 인간적인 고민까지도 담아내고 있다. 아버지가 꿈꾸는 삶과 자신의 꿈꾸는 삶을 살아가면서 나타나는 갈등이 과거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 조금 색다르게 다가왔다. 그러면서도 역사적인 기록에는 이 인물이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일종의 상상력으로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의문도 들었다.



  그의 삶은 다사다난 했지만, 자신이 하고자하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내 좌우명은 ‘용기를 내서,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하나의 문장이다. 그러면서도 가끔씩 되는 대로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생긴다. 그리고 그러한 순간을 스스로 깨달았을 때만큼 스스로에게 창피한 순간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계속 후회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화염의 탑』을 읽으면서 내 좌우명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어서 더 좋았다. 그러면서 나의 삶도 이처럼 하나의 역사 소설이 되는 건 어떨까. 때때로 상상하면 즐겁지만, 혹은 그저 잊히는 삶을 살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든다. 하지만 조금 이른 걱정이라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다.


  책을 다 읽고난 후, 일본 무사의 일생이란 이런 삶이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막부의 시대가 어땠는지,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일본 무사의 삶의 정신은 어떠한지 알 수 있었다. 전쟁의 시대에서 어떤 힘겨루기가 이뤄지고 있는 부분이라던가, 그 시대의 분위기와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부분, 또 당시 중국과 일본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도 유추해보는 재미도 있었다. 한 편의 재미난 역사 설명을 요시히로라는 인물에게 살아있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일본의 남북조 시대를 살아가는 무사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화염의 탑』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화염의 탑 - 10점
후루카와 가오루 지음, 조정민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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