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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걸의 글방

'마타투' 승객들과 문화정책

by 산지니북 2013. 9. 23.

케냐의 미니밴, 마타투(matatu)


아프리카 케냐의 한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이동하고 싶다면 장거리 이동수단인 14인승 미니밴 '마타투'를 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는 게 좋다. 평소에는 친절하고 차분한 케냐 남자들이 운전대만 잡으면 눈을 부릅뜨고 승객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악마로 돌변한다. 이를 입증하듯 케냐는 1인당 교통사고 사망률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이다. 



서비스 정신 부족한 한국 문화정책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 연구팀은 난폭한 케냐 기사들의 행동을 바꿀 수단을 고안해 냈다. 연구자들은 마타투 안쪽에 영어와 스와힐리어로 쓴 스티커 5장을 붙였다. 승객들이 기사에게 속도를 줄이라고 설득하거나, 기사가 아슬아슬하게 운전할 때 항의하거나 꾸짖는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을 부탁하는 내용이다. 연구팀은 스티커를 부착한 마타투에 탄 승객이 기사를 설득하는 경우가 스티커가 없는 경우보다 3배나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보험금 청구 내역을 조사한 결과, 스티커를 부착한 차량의 보험금 청구 건수가 전년 대비 3분의 2나 줄었다. 승객들이 때로는 기사를 집요하게 설득하며, 때로는 꾸짖는 등의 적극적인 행동을 보인 게 주요 원인임이 밝혀졌다. 


이처럼 기여하는 것, 즉 서비스의 넓은 정의는 마타투 승객들의 행동처럼 다른 이들의 삶을 개선하고 나아가 세상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기여(서비스)하는 마음가짐을 최대한 발휘해 사람들을 설득하고 움직이면, 그저 자원을 교환하는 것보다 더 훌륭하고 지속적인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사례는 말해 준다. 


하지만 우리의 문화정책 입안자들은 마타투에 탄 승객들이 지닌 기여(서비스)의 정신이 부족해 보인다. 때로는 상대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설득하며, 때로는 상황 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는 자세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문화재정 2% 달성을 공약한 바 있다. 하지만 타 부처의 반대가 많아서 그런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실제적인 움직임은 거의 없다. 이럴 때는 마타투에 탄 승객들처럼 현실의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지난 7월에 문화융성위원회가 대통령 직속위원회로 출범하고 지역문화현장 토론회가 전국적으로 열렸다. 필자는 얼마 전 열린 부산·경남 토론회에 참석해 다양한 의견과 김동호 위원장의 구상을 들어 보았다. 이날 많은 참석자는 문화융성위원회의 출범에 대해 기대와 우려를 함께 표시했다. 문화정책 패러다임을 시민문화 중심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정부가 지역문화 융성을 외치지만, 정작 문화융성위원회에는 지역 인사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도 거론됐다. 여기에 대한 김 위원장의 답변은 조만간 출범하는 4개 전문위원회에 지역인사들을 가급적 많이 참여시켜 지역 의견을 여과 없이 듣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 출범한 문화융성위원회 산하 4개 전문위원회의 인적 구성을 보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문화예술(9명), 전통문화(10명), 문화산업(9), 문화가치확산(7명) 전문위원 35명 가운데 지역 인사는 고작 9명뿐이다. 



문화융성위원회 인적 구성 유감


그마저 각 전문위원회에 부산 경남 출신은 전혀 보이지 않고 대구 출신(4명)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또한 문화콘텐츠 산업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핵심산업이자 원천산업인 출판 분야가 구성원에서 배제되는 문제점도 발생했다. 문화융성위원회 지역문화현장 토론회가 결국 의례적인 형식에 그치고 말 것이란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마타투 승객들처럼 기사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설득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자신을 이해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행동 습관과 말하는 방식을 보는 게 기본이다. 그런데 우리의 문화정책 입안자들은 상대방의 행동 습관과 말하는 방식을 여간해서는 보려 하지 않는 것 같다. 특히 지역문화와 관련된 현안들에 대해서는 더 그렇다. 자신의 힘을 줄여 타인의 관점을 수용해야 문제가 발견되며 현안을 해결할 수 있다. 마타투에 탄 승객들의 상황 개선 의지와 기여(서비스)의 정신은 우리의 문화정책 입안자들이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교훈이다.



산지니 대표

강  수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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