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있으면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개막하는군요. 곧 있으면 열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한국관에는 산지니의 책 『밤의 눈』이 위탁 전시될 예정입니다.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난 9월 다녀온 스웨덴 예테보리 도서전 이야기를 꺼내볼까 해요. 올려야지, 올려야지 차일피일 미루던 것이 개천절날 지인들에게 스웨덴에 있었던 일을 보여준다고 갔던 게 화근이 되어 디지털카메라를 잃어버리는 대참사를 겪었네요. 결국 핸드폰에 있는 사진으로 블로그 글을 대체하기로 결심하고 글을 씁니다.(ㅠ_ㅠ)
호텔에서의 아침을 맞이하고, 재빨리 박람회장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스웨덴 문화예술위원회(Swedish ArtsCouncil)의 여행보조금을 일부 지원받아 이번 도서전에 참관하게 되었는데요. 북유럽 특유의 냉랭함이 날씨에서부터 서려 있던 예테보리였지만, 예상했던 것보다는 따뜻한 감성의 유럽풍 동네분위기, 소소한 아기자기함이 담겨 있던 거리들, 거리를 장식했던 꽃과 까치들, 사진에서나 볼 법한 유럽풍의 건물들, 맛있었던 호텔 조식이 아직도 인상 깊네요. 도서전이기는 해도 무엇보다 북유럽 문학에 초점을 두고 프로그램화되어 있는지라, 전시회와 세미나를 참관하면서 과연 문학이란 무엇일까를 곰곰이 고민해보기도 했던 기회였어요. 때마침 이번에는 루마니아 문학을 초점으로 다루고 있어 동유럽권 국가들의 문학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아볼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사회문화적 배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결국 문학이 주는 메시지나 감동은 국가를 뛰어넘는 초월적인 것이란 것을 다시금 배웠네요. 언어가 주는 한계로 인해 모든 것을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책이라는 도구가 주는 특별한 가치는 전세계적으로 비슷하게 적용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루마니아가 주빈국이었던 이번 예테보리 도서전. 왜 이렇게 사람이 없냐고 물으신다면, 개막시간 이전부터 재빨리 들어가서 여기저기 구경하느라 그랬었죠.ㅎㅎ
#1. 첫째날 :: 루마니아 작가 Mircea Cărtărescu의 세미나에 다녀오다.
원래는 26일 개막전에 참관했어야 하는데, 일정상 그러질 못해 27일부터 둘러보았습니다. 처음 둘러본 도서전에서 다양한 부스를 보면서, 언어는 잘 알 수 없어도 한 출판사의 특색을 완연히 느낄 수 있는 부스 디자인이나 구성이 눈에 띄었습니다. 소책자나 입문서를 얇게 제작하여 편집한 뒤,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는 부스가 눈에 띄기도 했고 잉게보르크 바흐만과 같은 독일작가의 번역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여 고전 문학을 소개한 부스도 발길이가서 한참을 머물기도 했고요.(우선 저 자신이 북유럽문학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편이 아니니까, 그쪽에 눈이 갔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주목할만한 부분은 이 모든 도서전 프로그램이 출판사 주도의 부스만 전시되어 있던 것은 아니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스웨덴 고전문학을 소개하고 있는 부스나, 북유럽 번역 지원에 대해 안내하고 있는 부스, 그리고 중고서점 부스, 심지어 책장 가구회사나 의자 회사들의 부스도 있다는 게 도서전에는 책만 전시하고 있을 거라는 제 선입견을 가시게 한 경험이었죠.^^
2층에서 세미나 기다리던 중에. 왼쪽의 제 디지털 카메라는 지금쯤 어디를 헤매고 있을까요. 흑흑.
전시회장 입구는 여러군데가 있었는데 이쪽은 뒤쪽 출입구였어요. 뒤쪽 입구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들 있어서 놀랐네요. 정문 출입구쪽은 사진에는 담지 못했지만 정말 엄청난 인파였어요.ㅎㅎ
그렇게 한참동안 박람회장을 돌다가, 소기의 목적이었던 세미나 참관을 위해 3층으로 향했습니다.(예테보리 도서전은 1층은 주로 일반인을 위한 도서전시가 있었고 2층은 전자책부스와 저작권판매부스 3층은 세미나실로 구성되어 있었어요.) 제가 보려고 했던 루마니아 작가 Mircea Cărtărescu의 세미나는 다른 세미나 프로그램과는 달리, 영어 세미나라는 이유로 듣게 된 세미나입니다. 스웨덴어로 하는 다른 세미나들도 굉장히 다채롭게 꾸며진 걸로 알고 있는데 영어세미나 위주로 고르려다 보니 선택의 폭이 좁아 아쉬웠어요.
세미나의 주제는 ‘Inside a writer’s brain’였는데 루마니아 작가인 Mircea Cărtărescu와 스웨덴 비평가 Sara Danius가 함께 대담을 나누는 형식이었습니다. 자국의 쿠데타로 인해 11년이라는 시간을 세계 여러 곳곳으로 유랑했던 작가라고 스웨덴 비평가분께서 우선 개략적인 작가 소개를 시작했고요. 문학이 무엇인지라는 다소 원론적인 질문에서부터 질문이 시작되자, 루마니아 저자분께서는 대부분의 질문이 다들 비슷하게 시작한다면서 좌중을 웃게 만들었습니다. 작가 스스로에게 있어 문학은 우선 이국적인 이미지에서 오는 것이라는 답변으로부터 시작하면서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대한 설명으로 계속 이어졌습니다.
백여 개가 넘는 소설을 쓴 프랑스 작가 발작의 경우, 대단한 작가임에는 틀림없지만 자신은 발작이나 톨스토이처럼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전체 플롯을 구상한 뒤 그 구체적인 인물 하나하나의 개별 인생을 생각하는데 시간을 많이 소요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때때로 어떤 이야기도 써지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장편소설 대신 다른 짧은 수필이나 단편소설로 대체해서 계속해서 써나가는 작업을 거듭한다고 하네요. 그 뒤로는 퇴고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하셨고요. 고치고 또 고치며 세부적인 수정을 거듭하는데 상당히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고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비평가분께서는 여성작가와 남성작가가 바라보는 세계관이란 상이한데, 남성작가가 여성의 화자를 설정해서 작품을 써나갈 때는 어떤 고충이 따르는지도 질문했습니다. 루마니아 저자분께서는 버지니아 울프가 썼던 소설 한 편을 예시로 들었습니다. 그 소설에는 여성 작가인 성별과는 달리 다양한 성별의 화자가 나오는데 이 소설에서도 알 수 있듯 성별이란 그저 성별일 뿐인 것이므로, 인간의 본성에 관한 것은 성별과는 무관하다는 답변을 주셨고요.
문학에서의 은유(메타포)는 어떻게 오는 것인지 하는 질문도 있었는데, 그는 그의 책(나비 그림이 나오는 책이었는데 정확한 제목은 찾아봐야 겠네요^^)을 집필했던 과정을 설명해주었습니다. 문학은 은유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인데, 자신의 작품에서는 달을 여자로 이미지화한 부분이 있고, 인간의 삶을 나비에 은유한 부분이 있다는 식으로 예를 들어 쉽게 설명했습니다.
루마니아 저자 Mircea Cărtărescu는 자연사 박물관에서 나비를 보면서 즉석에서 그 은유를 떠올렸다고 말씀하셨는데, 박물관에 놓인 나비를 보며 인간의 운명이 떠올랐다고 하더군요. 왼쪽 날개를 과거로, 오른쪽 날개를 미래로 본다면 몸뚱아리는 곧 인간이 정박해 있는 현재에 해당한다며, 원래는 애벌레였고, 누이고치였을 나비의 운명이 마치 인간의 삶과 같았다고 하였습니다.
작가분께선 나비와 같은 우리네 인생도 날개가 졉혀있을 때는 마치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천천히 날개짓을 해 나간다면 그것이 바로 인생이 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세미나 도중 책을 펼쳐보이며 책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냐며 책을 날개짓해보이기도 했고요^^.(책의 한쪽 날개는 이미 읽은 부분, 다른 한쪽은 앞으로 읽을 부분이겠죠?)
여럿질문이 오가고 나서 비평가가 그의 에세이 한 편을 스웨덴어로 낭독해주기도 했습니다. 처음 듣는 세미나에 많은 관중들이 객석을 메우며 저자와 평론가의 대화에 집중하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앞으로의 산지니의 저자와의 만남에 어떻게 응용해야 할 것인지 자극도 되었습니다. 제 옆에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께서 세미나에 관련 브로셔를 쥐고 박람회장을 이곳저곳 다니는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의 도서전은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비교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네요.^^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모두 카메라 분실로 여기에 담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첫날 첫 번째 세미나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럼 다음 포스팅에서 또 자세한 이야기 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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