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돋보기] 발바닥으로 쓰는 남자, 김곰치
르포·산문집과 소설을 넘나드는 글쓰기, 소설가 김곰치. 이름부터 특이했습니다. 김곰치. 자꾸 곱씹는 이름, 김곰치. 이름이 특이했고, 그래서 특별하게 다가왔는데 실은 그의 본명은 김경태입니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그 이름이 곰치라는 탈을 쓴 순간부터 제겐 특별하게 다가왔으니, 소설가의 이름도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데 한 몫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김곰치, 그는 1970년 김해에서 태어났고,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습니다. 199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구요. 1999년 제4회 한겨례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그가 쓴 책으로는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한겨례신문사, 1999), 『발바닥 내 발바닥』(녹색평론사, 2005), 『빛』(산지니, 2008), 『끝까지 이럴래(-졸업)』(한겨례출판사, 2010), 『지하철을 탄 개미』(산지니, 2011),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한겨례출판사, 2011)가 있습니다.
오늘은 산지니 출판사에서 나온 그의 소설 『빛』과 르포·산문집『지하철을 탄 개미』을 살펴볼 작정입니다.
먼저 『빛』에 대한 이야깁니다.
『문학을 탐하다』를 먼저 읽고, 소설 『빛』을 읽으니 이건 그의 자전적 소설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주인공 이름이 '조경태'거든요. 작가의 본명은 '김경태'구요. 또 『문학을 탐하다』 속에서 볼 수 있었던 정영태 시인이 『빛』 안에서 종종 등장하기도하고, 자신의 가정사와 닮은 이야기를 소설 안에서 작가가 풀어놓아서 그랬을테지요.
순간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어요. 전도는 기독교인의 사명이라지만, ‘교회 나와보세요’라는 말을, 물론 기독교인이라니까 정연경한테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듣게 될 줄은 예상치 못했습니다. 오늘 집에 가시면 성경을 한 번 읽어보세요, 읽고 저랑 이야기 좀 해봐요, 이런 말은 기분이 안 나쁠 거 같은데, ‘교회 나와보세요’라는 말에는 뭔가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위태로우나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던 대화였는데, 나는 축지법을 쓰듯 백 걸음 앞서버렸어요. 성깔을 드러낸 것입니다.
pp186-187
소설 속 주인공인 '조경태'는 '정연경'이라는 여자와 썸씽(?)이 있습니다. 조경태의 썸녀 정영경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 사실은 얼마 전 불교에서 개종한 사람입니다. 조경태는 따로 종교가 없는 사람으로서 그런 그녀를 나쁘게 보지 않았는데, 애정 관계로서의 만남이 아닌 마치 전도하려 자신과의 만남을 가진 듯한 그녀의 말에 기분이 확 상해버리죠. 소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조경태와 정영경의 썸씽은 어떻게 전개 될런지요.
살인, 강간마저 용서하는데, 내가 저지른 죄 정도는 가볍게 용서받겠다, 종교가 이 정도는 돼야지, 혹시라도 당신이 이렇게 생각한다면, 곤란합니다. 기독교는, 아니 정확한 이름은 바울로교입니다, 살인과 강간을 용서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극단적인 교리를 내놓고 있는 종교입니다. 용서가 불가능한데, 그 불가능한 죄의 용서를 성취해냈다고, 그래서 더욱 기적과 같은 종교가 아니냐고, 제발 그러지 말아 주세요. 죽은 이, 그의 부모, 목에 칼을 대인 채 강간당한 이, 그녀의 부모, 애인, 사랑 없이 낳아진 자식의 운명 등을 곰곰이 생각하면, 그런 염치없는 소리는 절대 입에 올릴 수 없어요.
pp224-225
조경태와 정연경의 썸씽에 앞서 이 소설이 다루고자하는 이야기는 ‘기독교’에 대한 내용이지요. 더 정확히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지만요. 소설 안에서 조경태는 ‘기독교’의 안일함에 대한 비판을 거침없이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종교 자체를 비판하기보다는 문제있는 신도와 그렇게 만든 이들에 대한 비판이지요. 종교적인 냄새로 독자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이지만 일종의 편지형식을 취하며 독자에게 말을 건넴으로서 작가는 독자와 가까운 거리에서 독대하고 있죠. 또 가까워진 거리만큼 거부감을 줄이면서요. 기독교라는 종교에 대해 무지했던 독자들에게 배경지식을 알려주기도 하구요.
아, 그런데 존경하는 당신이…… 복음에서 예수 이적 이야기를 모조리 뽑아버리셨다구요! 오늘에야 알았어요! 거짓말이라 진리공부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우리 러시아 농민한테 조금도 쓸 데가 없다고 충치처럼 뽑아버리셨다구요! 선생님의 그 단호한 조치는, 『전쟁과 평화』,『부활』,『안나 카레니나』만큼 내 인생의 빛이에요. 얼마나 큰 격려가 되는지 선생님은 모르실 것입니다. 나는 갑자기 진짜 자유로워요. 선생님과 함께 정말 자유롭단 말예요!
p298
여기에서 ‘존경하는 당신’은 소설가 ‘톨스토이’입니다.
선생님이 이적 기사를 뽑아버린 것은, 그러면서도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했던 것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던 예수라 해도 참삶을 산 사람이기에 우리들 인생의 빛으로 삼기에 충분하다는 것이 아닙니까. 내 생각과 일치하여 너무 반가워요! 선생님이 구체적으로 어떤 그리스도사상을 가졌는지 알고 싶어요. 당신의 ‘통합 복음’을 꼭 읽고 싶어요! 맹세할게요, 앞으로의 내 인생, 예수의 성령잉태를 절대 부인합니다. 천 번을 윤회한다 하여도 나는 단 한 번도 기독교인이 되지 않을 거예요. 선생님, 너무 잘하셨어요! 감사해요, 감사해요.
p299
본문에선 톨스토이가 그리스도인이지만 기독교를 바울로, 혹은 바울로의 후손들이 왜곡한대로 받아들이지 않으셨다는 점을 높이 사지요. 예수의 ‘성령 잉태설’은 바울로와 바울로 제자들이 그들의 죄를 가볍게 하기위해, 혹은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다른 이들이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 예수를 신성시 만드는 작업이었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저 또한 종교가 없는지라 ‘성령 잉태’같은 건 믿지 않았지만 톨스토이가 생각한대로 그가 인간임에도 충분히 존경받을 존재였다는 것을 부정하진 않습니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Lev Nikolayevich Tolstoy)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사상가로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와 더불어 ‘러시아 3대 문호’로 일컬어지고 있다. 톨스토이는 예수를 신적 대상으로 추앙하기보다는 따름의 대상으로 생각하여, 기독교의 영성은 하느님을 공경하고, 가난한 사람과 죄인들까지 모두 사랑하며, 폭력을 사용하지 말라는 복음서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라고 이해하였다.
바울로 (The Apostle Paul)
기독교 최초의 전도자. 예수가 죽은 지 불과 몇 년 뒤에 회심한 그는 새로운 종교운동, 즉 그리스도교를 지도하는 사도(선교사)가 되었으며, 그 운동이 유대교의 한계를 넘어 세계 종교가 되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가 남긴 서신들은 현존하는 그리스도교 문헌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바울로의 서신들은 신학적인 정교함과 목회적인 이해를 생생히 드러내고 있으며, 그리스도교의 생활과 사상에 대해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형, 까놓고 얘기해보자구. 예수가 지 입으로 마리아가 성령으로 지를 잉태해 낳았다고 한 적 있나. 하느님은 내 아버지라고 했지 정말 그렇게 태어났다고 했어? 지가 태어날 때를 어떻게 기억해? 그런 말 진짜 했다면, 제자들에게 살짝이라도 말했다면, 왜 직접인용으로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겠냐구. 예수 스스로 그런 말 한 적 없어! 그럼 대체 성령잉태는 뭐야. 마태, 아니 마태 죽고 난 뒤의 어떤 미친 새끼가 성령잉태 이야기를 써갈겨 넣은 거야? 예수 좆 빠는 소리를 왜 집어넣은 거냐구!
p315
작가는 과격한 말투로 ‘성령잉태’의 허위성에 대해 분노의 목소리를 냅니다. 그리고 예수의 ‘사생아설’에 무게를 싣지요.
예수의 존재, 예수의 사랑이 절대화되면 될수록 자기 죄가 가벼워지는 바울로, 그리고 그 후예들이 그 짓을 했지. 근데 그게 예수를 높이는 그 새끼들이 진심으로 예수를 높이려고 그랬나? 십자가에 이미 죽고 없는데, 죽고 없는 예수를 어떻게 빨아? 예수 이름으로 교회 세우고 세력을 확장하려는 교회 지도자 놈들 좆 빠는 소리였지!
p315
또한 작가는 허위사실 기록으로 예수를 신격화시키며, 신성화시키려했던 그들의 전략에 대해, 그들의 진실된 속셈에 대해 폭로하고 있습니다.
나는 애잔해졌고 따스한 사랑을 느꼈다. 똥 누는 예수가 내 미래의 아기처럼 예뻐 보였다. 지상의 모든 생명체는 물질 교류가 원활하게 되도록, 동물은 동물대로 식물은 식물대로 제 할 일을 하고, 일익을 맡아 똥 누는 일을 매일매일 성실하게 행할 뿐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하느님을 즐겁게 순종하는 일을 누구든 거역할 리 없고, 어떤 생명체든 거역하다간 죽음을 일찍 부를 뿐이다.
p326
그리고 인간적인 예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요. 예수도 과거의 사람일 뿐이고, 신격화 된 사람이었다는 사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는 한사람에 불과하다고. 그가 신격화 될 만큼 존경받을 만한 사람인 것은 동의하나, 남녀의 잠자리 없이 태어날 수 없는 존재는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령 잉태’는 허위지만, 그가 ‘빛’인 것은 진실이라고 설파하지요. 자세한 내용은 소설 『빛』을 참고해보시면 되겠습니다.
다음은 르포·산문집『지하철을 탄 개미』에 대한 이야깁니다.
산문 챕터 두 개와 르포 챕터 두 개로 구성된 이 책은 ‘발바닥으로 쓰는 글’이라는 취지에 가장 맞는 글이지요. 산문1, 르포2, 르포3, 산문4로 차례가 구성되어있는데, 산문1에 있는 내용은 서정적인 글들이 많습니다. 작가가 사물을 바라볼 때 느끼는 애정이 깊다는 게 보이지요. 르포2에서는 보다 무거운 문제에 접근하지요. 원자폭탄 환우 2세들의 이야기(원자폭탄 2세들에게 무관심한 정부 비판), 이명박 대통령의 시장시절 한양 주택 주민들을 거주지 침해(다수를 위한 소수의 강제적 희생을 요구), 또 태안 앞바다를 오염시킨 기름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대기업인 삼성에 관한 루머) 있습니다. 르포3에서는 북한에서 남한으로 온 아이들의 이야기와 아직도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결핵 문제, 그리고 호스피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마지막으로 산문 4에서는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또 생각을 새로 버는 데에 걷기만 한 것이 없어요. 발이 하는 일이 걷기인데, 머리에서 제일 먼 게 발이죠. 걷는다는 것은 뇌를 발바닥까지 내려보내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뇌가 발바닥까지 내려오는, 즉 온몸을 통과하는 뇌, 그러면서 뇌가 온몸이 되는 일인데, 사실인즉, 뇌와 심장 사이로 오가는 짧은 회로 속에 갇힌 다량의 피가 걷기에 의해서 발바닥까지 내려가 지기(地氣)를 받고 뇌로 돌아가는 일인데, 어떤 까닭인지 모르지만, 심장만 돌고 올라온 피에 비해 발바닥까지 갔다가 온 피는, 즉 피가 온몸 구석구석까지 돌고 왔다는 것인데, 경험 많은 자가 지혜가 많듯이 풍성한 아이디어와 감정을 뇌에 담뿍 선사하는 것이었어요. 생각을 버는 데에 걷기가 최고라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p233
산문4에서 내오는 부분인데, 『빛』에서의 주인공의 편지를 인용하고 있는 부분이지요. 이 부분은 작가가 생각하는 글쓰기 방식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발바닥으로 쓰는 글. 작가는 “가장 직접적이고 진실하고 또 가장 겸손한 어떤 것을 르포 글쓰기가 잘 담아낼 수 있다”며 르포의 가치를 말했다고 합니다. 고발자 역할. 소설은 현실의 사건을 형상화하는데 느리지만(예술이기 때문) 르포르타주는 감정적 자아를 솔직히 드러내데 효과적이지요. 그래서 매력적이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더 호소하는 힘을 가진 글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곰치 작가에 대해 더 궁금하다면, 아래를 클릭하세요.↓↓↓
문학을 탐하다 - 최학림 지음/산지니 |
빛 - 김곰치 지음/산지니 |
지하철을 탄 개미 - 김곰치 지음/산지니 |
『문학을 탐하다』는 2014 '원북원부산운동' 후보 도서입니다.
책 읽는 부산을 만드는 소중한 한 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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