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부터 봄 그리고 여름 지금 가을까지
산지니시인선의 탄생
출판사에 올 때 빈손으로 오지 않는 시인, 그리고 언제나 헤어질 때는 막걸리 하자며 술 약속을 어김없이 하는 시인. 시인인가 출판인인가 가끔 헷갈리지만 그래도 그의 시를 읽으면 역시 시인이야! 하며 무릎을 치게 만드는 시인.
바로 최영철 시인입니다:)
지난겨울부터 산지니는 산지니시인선을 준비했습니다. 부산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지역에 시인들을 만나보자며 야심 차게 시작했지만 역시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1호는 어떤 시인이 좋을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1호는 두말없이 최영철 시인. 부산에 뿌리를 둔 산지니, 그리고 부산을 고향에 둔 최영철 시인. 생각만 해도 궁합이... 그렇게 조심스럽게 최영철 시인과 시집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가장 뜨거웠던 논의는 '대담'
시인선을 준비하면서 본문에서 가장 뜨거웠던 논의는 해설과 대담이었습니다. 해설과 대담 모두 장단점이 있는데요, 새롭게 시작하는 만큼 차별화 지점을 만드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견으로 대담에 마음에 조금 기울었습니다. 그러나 장단점이 뚜렷했던 터라 깊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대담을 싣는 게 도전이기도 했지만, 독자들에게 조금 더 쉽게 다가가 보자는 의미로 격렬한(?) 논의 끝에 대담을 싣기로 했습니다.
“대담자는 누가 좋을까?”
그러나 한 고개를 넘으니 또 한 고개가 나오더군요. 그럼 누구랑 하면 좋을까.
퇴근하고 어디론가 새지 않고 오랜만에 집에 일찍 귀가하던 날이었습니다. 이부자리에 누워 심각(?)하게 고민하던 차에 불현듯 『문학을 탐하다』의 최학림 기자가 떠올랐습니다. (지금은 <부산일보> 논설위원이십니다) 『문학을 탐하다』는 부산 경남의 작가 18명(소설가 7명, 시인 11명)을 소개한 산문집으로, 문학기자 최학림이 기자 생활 20년 동안 작가들과 애정으로 보낸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책에는 최영철 시인도 나오는 데요, 최학림 기자는 최영철 시인에게 부산 문화의 감수성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 책에서는 부산을 누볐던 두 분의 추억과 최학림 기자가 전하는 최영철 시인의 시 세계를 읽을 수 있습니다. 글을 읽는데 왜 두 분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을까요.
<부산일보>로 떨리는 마음으로 총총 가서 최학림 논설위원에게 조심스럽게 대담을 제안하자
망설임 없이 "최 형이면 해야죠" 라고 하셨습니다:)
“시집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시집 편집을 하고 있을 때, 세월호 침몰 사건이 있었습니다. 온 국민이 눈물을 흘리며 마음 아파하던 날들이었지요. 사건 이후 최영철 시인은「난파 2014」를 시집에 추가했습니다. 그외 시집 구성을 바꾸면서 처음보다 다소 어두워졌는데요, 어둡다는 말보다는 어둠을 직면한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어떻게 해야 할까.
편집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시「금정산을 보냈다」는 이 질문에 대한 시인의 답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이거야, 라고.
엎어진 채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엎질러진 채 축포가 터지고 있었습니다 허물어진 채 거대한 준공식이 계속되었습니다 몹쓸 우환이 알을 까고 무엇인가를 주워 담아 뒤춤에 숨기느라 위아래 아무도 듣지 못했습니다 보지 못했습니다 정적은 숨넘어가는 아우성이었습니다 환호는 조용한 통곡이었습니다 그날 날려 보낸 새들이 이제 막 날아오른 새들과 함께 차창에 부딪혀 한꺼번에 머리가 깨졌습니다(…)
-「난파 2014」중에서
언제 돌아온다는 기약도 없이 먼 서역으로 떠나는 아들에게 뭘 쥐어 보낼까 궁리하다가 나는 출국장을 빠져나가는 녀석의 가슴 주머니에 무언가 뭉클한 것을 쥐어 보냈다 이건 아무데서나 꺼내 보지 말고 누구에게나 쉽게 내보이지도 말고 이런 걸 가슴에 품었다고 함부로 말하지도 말고 네가 다만 잘 간직하고 있다가 모국이 그립고 고향 생각이 나고 네 어미가 보고프면 그리고 혹여 이 아비 안부도 궁금하거든 이걸 가만히 꺼내놓고 거기에 절도 하고 입도 맞추고 자분자분 안부도 묻고 따스하고 고요해질 때까지 눈도 맞추라고 일렀다(…)
-「금정산을 보냈다」중에서
“제가 얼마나 머리를 싸맸는데요”
문학과지성사는 시인의 얼굴을 캐리커쳐로 그리며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게 좋을까 고심했고, 아아 부단히도 도서관을 다닌 권디자이너. 그래서 시인의 사인을 책 표지에 은은히 넣기! 책 등에 "최영철"이라는 사인이 보이시죠?
“괜찮아~ 재밌잖아”
편집자로서 최영철 시인과의 인연은 『어중씨 이야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어중씨 이야기』 발간 후 최영철 시인과 이가영 그림작가와 출판사 근처에서 출간 축하 자리를 조촐히 있었지요. 『어중씨 이야기』는 도시에 살다 시골에 간 어중씨가 마님 심부름으로 장터에 가면서 일어난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유쾌하고 따뜻하게 그린 청소년 성장 소설입니다.
술자리가 끝나고, 최영철 시인은 산지니 식구들에게 사인 본을 선물해줘야 한다며 산지니 식구들을 붙잡았습니다. 저희는 괜찮다고 다음에 사무실에서 해달라고 손사래를 쳤지만요. 그러자 최영철 시인은 “괜찮아~ 재밌잖아” 합니다. 그러나 산지니 식구를 챙겨주신 그 마음 왜 모르겠어요.
산지니 식구들에게 한 명씩 사인을 해주시고는 급기야는 발행인에게도 사인을 해주십니다.
얼마나 웃었는지요.
하하호호 최영철 시인과 이가영 그림작가
“001이 좋겠다.”
시집이 쓸모없다고 하지만, 시만이 할 수 있는 일.
시가 아니면 금정산을 통째로 아들에게 보낼 수 없었겠지요.
시집 나오기 전에 한 잔, 출간을 앞두고 한 잔, 시집이 나오고 한 잔,
기자간담회가 끝나고 한 잔, 또 어딘가에서 한 잔.
그래도 술이 부족하다고 자꾸 느끼게 하는 최영철 시인ㅎㅎ
그 취기 덕분에 즐겁게 시집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최영철 시인이 안내한 수영 맛집 물회,
정말 맛있어요:) 배 반, 회 반이랍니다.
이렇게 산지니시인선 1호, 『금정산을 보냈다』가 나왔습니다.
독자분들의 손에 손을 거쳐 쑥쑥 자랐으면 좋겠네요.
마구 마구 읽어주세요:)
*
금정산을 보냈다 - 최영철 지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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