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의 12월 27일자 '책 속으로' 지면에서 여러 필자들이 각자 '올해의 책'을 꼽았습니다. 셰프이자 음식 칼럼니스트인 박찬일 씨는 『북양어장 가는 길』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2014년의 마지막 ‘책 속으로’ 지면입니다. 한 해를 마감하며 우리 사회 다양한 분야의 다독가(多讀家) 8인이 추천하는 책을 모아봤습니다. 여기 소개된 책은 베스트셀러나 출판계를 뒤흔든 대작은 아닐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개인의 마음에 깊숙이 다가가 빛나는 영감을 선사한 값진 책들입니다.
좋은 책 한 권을 만나는 것은 좋은 친구 한 명을 사귀는 것만큼이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줍니다. 한 해를 정리하며 독자분들도 한번 꼽아보시면 어떨까요. 올해 당신을 움직인 한 권의 책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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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음식 칼럼니스트
●북양어장 가는길
최희철 지음, 해피북미디어
198쪽, 1만3000원
고기 잡으러 베링해로 떠났다가 사고를 만난 오룡호 사건이 터지고나서 식탁의 명태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우리 입은 이미 국토와 영해에서 나는 것들로는 채울 수 없게 됐다. 쌀을 제외한 식량자급률 5% 시대를 사는 현실이 오룡호 사태를 불러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풍요를 향한 과욕의 업보이면서 동시에 현실이다. 우리는 식탁에 오르는 음식의 근원을 모른다. 소나 닭이 한가한 목가적 분위기 대신 공장형 축산시설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수산물도 마찬가지다. 어선과 마도로스의 흥분따위는 없다. 만선을 향한 자본의 고유한 욕망이 지배하는 바다 사정에 대한 내밀한 고백이 있다. 북양은 명태잡이를 하는 저 북쪽 바다. 북극과 멀지 않은 추운 대양을 말한다. 까다로운 대국의 간섭과 무자비한 경쟁국의 어선들, 태풍에 버금가는 저기압에 맞서 싸우며 그물을 끈다. 어군탐지기와 군함에서나 쓰이는 줄 알았던 소나로 바다밑의 고기를 훑는다. 트롤 어선은 ‘피도 눈물도 없는’ 바다의 수확자다. 거대한 그물로 어군을 찾아 훑어낸다. 그것이 우리 밥상에서 반찬이 되는 생선이다.
음식 공급이 시스템화된 현대는 개인이 그 좌표를 읽어낼 능력이 없다. 쾌적한 마트에 진열된 식품은 이런 구조에서 탄생하고, 원양어선은 그 시스템의 최초 생산자다. 깔끔하게 포장된 게맛살의 원료와 명란을 얻기 위해 오늘도 트롤 어선은 북양의 집채 같은 파도와 싸운다. 할머니 손맛의 동태찌개와 코다리조림의 근원이 저 바다에 있다니.
흔히 예상하는 원양어선의 낭만적 묘사는 이 책에 없다. 시종 표준 혈압으로 담담하게 서술해나가는 터라, 오히려 현장감이 살아난다. 일상적 노동을 매우 건조하게 쓰고 있는 문체를 읽노라면, 마치 김훈의 소설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 울컥하게 되는 것도 닮았다. 저자가 감성 넘치는 시인이라는 것은 책 서두의 들어가는 글에서 빛난다. 특별한 명문이다. ‘미시적 사건으로서의 1986~1990년 북태평양어장’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어서 기록 문학으로서 가치도 함께 지닌 책이다.
중앙일보ㅣ2014-12-27
원문 읽기: http://joongang.joins.com/article/863/16793863.html?ctg=1700
북양어장 가는 길 - 최희철 지음/해피북미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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