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턴일기

소멸되어가는 것을 붙잡다- 최영철, 『금정산을 보냈다』, 산지니, 2014.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2. 17.

 

  안녕하세요. 솔율입니다호호

  요 며칠간 날씨가 매우 스펙터클 했지요. 귀가 떨어져나갈 듯 추웠던 날도 있었는데요. 이럴 때일수록 모두 건강 잘 챙기시길 바라겠습니다.

 

금정산. 부산광역시 금정구와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東面) 경계에 있는 부산의 대표적인 산

  오늘은 또 하나의 서평을 가지고 왔습니다. 바로 <산지니>에서 야심차게 기획한 시인선의 첫 주자 최영철 시인의 금정산을 보냈다라는 시집인데요. 최근 원북원 부산 프로젝트의 후보 도서로도 올라 후끈후끈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부산이 활동무대였던 최영철 선생님의 지난날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시집이기도 한데요. 더불어 물질과 속도에 중독된 현대인들이 마주해야 할 세계의 진면목 또한 담고 있습니다. 그럼 차근차근 얘기해보도록 할까요?

 

  먼저 최영철 선생님은 1956년 경상남도 창녕에서 태어나 오랜 시간을 부산광역시에서 보내셨습니다. 1986<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셨으며 제2백석문학상, 2010년 제10최계락문학상, 2011년 제6이형기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선생님 작품의 특징은 소외된 존재에 대한 관심을 두고, ‘자연과 인간의 화해를 모색하는 것이며 현실과 일상에 집중하는 건강한 서정시라 볼 수 있습니다. 대표작으론 시집 찔러본다(문학과지성사, 2010), 산문집 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산지니, 2008), 성장소설 어중씨 이야기(산지니, 2014) 등이 있습니다.

 

  시집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봅시다.

 

  『금정산을 보냈다는 앞서 말했듯이 산지니 시인선의 첫 번째 시집입니다. 그리고 최영철 선생님의 등단 30년을 기념하는 열 번째 시집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집니다. 표제인 금정산을 보냈다는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시 제목이기도 한데요. 아들을 요르단으로 보내고 난 후 집으로 돌아와 단숨에 써 내려갔다는 시는 아버지로써의 시인의 마음이 잘 드러납니다.

  언제 돌아온다는 기약도 없이 먼 서역으로 떠나는 아들에게 뭘 쥐어 보낼까 궁리하다가 나는 출국장을 빠져나가는 녀석의 가슴 주머니에 무언가 뭉클한 것을 쥐어 보냈다 이건 아무데서나 꺼내 보지 말고 누구에게나 쉽게 내보이지도 말고 이런 걸 가슴에 품었다고 함부로 말하지도 말고 네가 다만 잘 간직하고 있다가 모국이 그립고 고향 생각이 나고 네 어미가 보고프면 그리고 혹여 이 아비 안부도 궁금하거든 이걸 가만히 꺼내놓고 거기에 절도 하고 입도 맞추고 자분자분 안부도 묻고 따스하고 고요해질 때까지 눈도 맞추라고 일렀다 서역의 바람이 드세거든 그 골짝 어딘가에 몸을 녹이고 서역의 햇볕이 뜨겁거든 그 그늘에 들어 흥얼흥얼 낮잠이라도 한숨 자두라고 일렀다 막막한 사막 한가운데 도통 우러러볼 고지가 없거든 이걸 저만치 꺼내놓고 그윽하고 넉넉해질 때까지 바라보기도 하라고 일렀다

/ 금정산을 보냈다

  "부산대를 졸업한 아들이 100번 넘게 입사 지원서를 내 모두 떨어졌다. 간신히 한 대기업에 걸렸는데 조건이 요르단 근무였다. 환경도 그렇고 위험해서 말렸는데 아들은 가겠다고 했다. 그게 다 무능한 애비를 만난 탓인 것 같아 미안했다. 딱히 줄 건 없고 뭔가는 줘야겠기에 시로 금정산을 선물했다." 아비는 힘 넘치는 젊은 혈기가 고지가 없는 사막에서도, 밀려오는 파국에도 지켜야 할 세계가 무엇인지 시로 당부하고자 했던 것이다.  - 최영철 시인 인터뷰 <국제신문> 임은정 기자 2014-10-13 본지 23

  저는 이 시에서 부모자식 관계에서의 아버지와 함께 남편으로써의 아버지의 모습 또한 느낄 수 있었는데요. ‘네가 다만 잘 간직하고 있다가 모국이 그립고 고향 생각이 나고 네 어미가 보고프면 그리고 혹여 이 아비 안부도 궁금하거든 이걸 가만히 꺼내놓고 거기에 절도 하고이 짧은 대목에서 어머니보다 물러나 있는 아버지의 위치가 느껴졌습니다. ‘혹여 아비의 안부가 궁금하거든이라는 부분이 보이지 않는 자식과의 미세한 거리를 화자가 은연중으로 드러내는 것 같았습니다. 가장의 외로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시에서 아들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마음과 함께 남편, 그리고 가장의 모습까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자식을 보낸 아버지의 마음이 그리 편하진 않을 터

 

  최영철 선생님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한 소재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선생님의 지난 발자취가 드러나는 작품이 많은데요. 선생님의 주요 무대였던 부산, 그리고 지금 살고 계시는 김해 도요마을이 작품 속에 종종 등장합니다. 이번 시집에서도 금정산을 보냈다를 비롯해 서면 천우짱, 부산釜山이라는 말등 부산을 품은 작품이 많은데요.

집과 학교 사이 가로막고 섰던 하야리아 부대

하루 두 번 그 길 빙 돌아 오가며

세상에는 눈앞에 두고도

바로 지나갈 수 없는 길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반도의 남쪽에 그어진 또 하나의 분단선

지름길 막아선 총부리에 걸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을 빙빙 돌아서 갔습니다

<중략>

스무 살 무렵 부대 담벼락에 오줌을 갈기기도 했으나

나의 꿈은 오래 주눅 들어 힘없이 뚝뚝 끊어지기 일쑤였습니다

오래전 일제 차지였고 동란 후 미군 차지였던

언젠가부터 나는 그 길을 피해서 걷고 있었습니다

밤이 되면 앞집 옆집 양공주들이 붉은 등으로 걸리고

양키들이 낄낄대며 그 등을 하나씩 거두어 갔습니다

버터냄새 풍기는 불빛들이 다 잦아든 뒤에도

양공주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담은 다시 헐렸지만

분수가 요염하게 춤추는 평화로운 주말이 되었지만

동강난 길은 여전히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 하야리아 부대

  여러분, 하야리아 부대를 아시나요? 하야리아 부대는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전동 및 연지동에 설치되어 있는 주한 미군의 기지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의 경마장으로 사용하다가 1945UN 기구, 1950년 한국전쟁 이후에 주한 미군 부산 사령부가 설치되었습니다. 2006810일에는 공식적으로 부대가 폐쇄되었고, 이후 주한 미군과 반환 협상이 이어지다가 2010127일 부산시에 반환되면서 부산시민공원조성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부산시민공원이 위치한 곳이 바로 과거 하야리아 부대의 자리입니다.

  위의 시를 읽으며 저는 하야리아 부대에서 부산시민공원으로 이어지는 세월이 작품 속에 녹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현재 시민공원으로 바뀌어 분수가 자리 잡은 모습까지 담겨 있어 후반부가 인상깊게 들어왔는데요. 공간의 변화와 함께 하니 동강난 길이 여전히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문구로 전해져오는 씁쓸함과 같은 것이 더욱 배가 되어 느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과거 하야리아 부대의 모습 1

과거 하야리아 부대의 모습 2

 

  또한 에 관한 화자의 생각이 돋보이는 작품도 많았습니다. 시인, 한때 시와 같은 작품들을 읽으며 우리문학이 처한 현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뜨겁고 생생했으나

그때는 서로 앞서가겠다고 야단법석이었으나

마을 입구 공동수도 끝없이 줄선

양동이 다 채우고도 철철 넘치던 봇물이었으나

산동네 꼭대기까지 나누어 쓰던 한 바가지 선심이었으나

비수처럼 번득이던 표적이었으나

잠든 그대 머리통 쥐도 새도 모르게 지나간 기별이었으나

이제는 흘러갈 곳 잃은 도랑물

천리길 한달음에 와놓고 남은 백리 앞에 주저앉은

아무도 받으러 오지 않는 헌혈 차량의 사과 반쪽

부끄럼만 늘어난 미지근한 침묵

출처를 알 수 없는 비행물체로 진화한

겨울 탕자 당신만이 입 훔치는 후식

이 엄동설한 떨지도 않고 배회하는 해독 불능의 허기

그래, 좋아, 죽어도, 당신만이 받아먹고 배 두드리다

어디 먼 곳 적선할 수도 내다버릴 수도 없게 된 미지근한 정표

그래도 괜찮다고 찾아오셨으니 천천히 꼭꼭 씹어

천리만리 가시다 배고픈 동무 만나면

아직 저 길모퉁이 끝집 아무 술꾼이나 받아주는

만만한 주막거리 하나 있더라 전해주시길

다 타버린 꽁초로 떠내려가다

마지막 남은 재로, 흐릿한, 문질러진 자국

/ 한때 시전문

  과거엔 양동이 채우고도 철철 넘치던 봇물, 비수처럼 번뜩이던 표적과 같은 것이었으나 현재는 아무도 찾으러 오지 않는 헌혈차량의 사과 반쪽, 그리고 부끄러움만 늘어난 미지근한 침묵과 같은 것. 이렇듯 화자는 이렇게 과거의 시가 아닌 현재의 시를 조명합니다. 치열했던, 날카로운 비수 같았던 시들이 지금은 적선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는 것이지요. 과거에 비해 시가 온전히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인공호흡을 해줄 사람조차 사라져가는 현실에서 시인은 배고픈 동무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화자는 아무 술꾼이나 받아주는 만만한 주막거리를 알려주며 그들을 위로하고픈 것일지도 모릅니다.

시, 세상과의 고달픈 싸움

 

  앞에서 과거의 시가 날카로운 비수 같았다고 말씀드렸지요. 금정산을 보냈다속에서도 그러한 경향을 가진 시가 등장합니다.

옛날 시계 분침보다 시침이 더 길었다는 사실

분 따위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

분침 따위 무시해도 좋은 잔챙이였다는 사실

그런 분침이 지금 시침을 졸병으로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

그렇게 사람들이 야금야금 시간을 다 파먹었다는 사실

이대로 가다간 초침이 제일 길어질 날 올 거라는 사실

그 아래 조금 작은 분침이 돌고

그 아래 시침은 떨어져 나와

서랍 속 다이어리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

/ 시간의 진화전문

  「시간의 진화는 빠름을 추구하는 현대에 일침을 던집니다. 현대 사회는 흔히 속도전이라고도 하지요. ‘빨리빨리가 대중화 되어버린 세상에서 느리다는 것은 배척 받을 행동이 되고 맙니다. 화자는 시계바늘을 통해 점점 빨라지는 사회를 직시합니다. 시간 단위가 점점 짧아져 초를 넘어서는 아주 미세한 단위까지 측정할 수 있게 된 지금, 시 속의 내용대로 어느새 시계에서 시침이 사라지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속도의 시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 스마트폰

 

  배추 한 포기 오백원입니다 허리 한 번 숙인 값 오원입니다 땅을 향해 절한 값 오원입니다 비지땀 한 방울 오원입니다 도어보이 치어걸 하루 삼만원입니다 허리 숙여 웃어준 값 삼원입니다 어서 오라 또 오라 인사한 값 삼원입니다 손 한 번 내어준 값 십만원입니다 가슴 한 번 드러낸 값 백만원입니다 지랄발광 물리치지 않은 값 천만원입니다 요리조리 배팅 한 번 억입니다 아무렇게나 내던져 굴러온 십억입니다 밑져도 그만이라고 던져놓은 수백억입니다 한 끼 오백원입니다 저 흑장미 요염한 웃음 한 번 억입니다 백의 눈물과 억의 웃음 뼛속 깊이 사무칩니다 그 먼 거리를 넘나드느라 세상은 이토록 바쁘고 아득합니다 그 먼 거리를 은폐하려고 세상은 이토록 빛나고 향긋합니다

/ 향긋한 양극화전문 

  위의 시는 양극화 된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과거에 발생했던 배추값 폭등을 기억하시나요? 배추 한 포기가 5000~10000원을 넘나든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배추를 재배하는 농민들이 받는 돈은 포기당 500원 가량이었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돈을 펑펑 쓰면서도 돈을 벌고 누군가는 메말라가면서도 돈을 가지지 못하는 현실의 간극이 너무나 크지요.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점을 시로 표현하신 것이 아닐까 합니다.

배추 한 포기 오백원입니다 허리 한 번 숙인 값 오원입니다 땅을 향해 절한 값 오원입니다 비지땀 한 방울 오원입니다 /「향긋한 양극화」 中

 

  이처럼 금정산을 보냈다에는 가족을, 부산을, 시를, 그리고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특히 현재에 소멸되어가는 과거의 것들을 놓치지 않고 드러내고 있는데요. 시 속에 많은 현실이 담겨져 있지만 선생님께서는 그것을 넘어 시가 가야 할 온전한 방향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꾸밈없이 드러내는 것, 짧은 문구 속에 강력한 힘이 들어 있는 것이 바로 가 아닐까요. 그렇기에 우린 시를 더욱 보듬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이 발을 담고 있는 그 자리를 잊지 않고 깊게 바라보면서요. 최영철 선생님께서 묵묵히 부산을 담아내고 있으신 것처럼…….

 

  이상 포스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설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2015년엔 모두에게 행복한 일만 가득가득 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레스토랑

 

 

금정산을 보냈다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