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수필이 때로 불친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업계의 전문 용어나 작가 개인의 일탈적 언어 등이 거리낌 없이, 거의 남용하다시피 나올 뿐 아니라 독자를 위한 주석 없이 오로지 작가의 자전적 필체만이 화려하게 뽐내고 있는 것은 다소 배려심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이러한 수필의 특징을 ‘수필스러움’이라 부르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고 수필이 재미없는가 하면 단연컨대 그렇지는 않습니다. 잠시 일상의 대화를 떠올려볼까요? 우리의 대화는 자기소개나 근황주고받기 등을 제외하면 대체로 이야기주고받기로 이루어지는데, 이 이야기주고받기를 하는 데 필요한 모든 이야기가 청자에게 매우 불친절한 형태로 전달된다는 것은 신기한 일입니다. 화자만 알고 있는 특정 업계의 전문 용어나 화자 개인의 일탈적 언어 등이 남용되다시피 한다는 것, 그러니까 수필스러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니까요.
사람들은 어떻게 처음 듣는 이야기로도 대화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이러한 수필스러움의 대화에서 청자 누구도 의문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신기합니다. 게다가 오히려 그 난해한 어휘들에 “응, 그거.”하고 넘겨버리는 청자들의 모습을 보면, 이것은 정말이지 뛰어난 재치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우리가 이야기의 핵심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란 그저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은 화자의 핑계일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결국 대화에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재담만이 남고, 우리는 그 재담의 재미를 즐기는 것입니다.
소개하려는 책은 수필입니다. 읽으면서 “이 말이 뭘 의미하는 거지?”하는 의문이 셀 수 없이 들 책입니다. 그러나 한편 불친절한 책도, 재미없는 책도 아닙니다. 다만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은 저자의 핑계일 뿐. 그리고 그 어려운 일상의 대화도 잘 해결해왔던 우리는 영민하게도 이 의문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응, 그거.”
지금 생각해보면 자본과 우리의 욕망은 함께 거친 바다로 간 것 같다. 그곳에서 서로가 몸통이면서 손과 발이 되어 그 욕망들을 ‘인간 중심’으로 내면화한 측면이 있다. 그건 깊이 성찰해보아야할 지점이다. 하지만 우리가 만났던 바다, 바닷속에 살던 온갖 생명체 그리고 알래스카 연근해의 섬들, 바람과 눈보라 그 모든 것들은 우리의 욕망과 뒤엉켜 살았던 흔적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184쪽 |
북양, 오호츠크 해와 베링 해를 아우르는(거의 베링 해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바다에는 평균 3000미터가 넘는 수심 속으로 호시탐탐 삶을 삼킬 기회를 찾는 파도와, 어떻게든 삶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응전으로써 대형트롤어선이 있습니다. 사실 어업이 아니고서는, 그러니까 대형트롤어선과 함께하지 않고서는 인류가 이 바다에 발을 들일 이유가 없을 겁니다. 오로지 자연에게서 자원을 얻기 위해 가는 바다, 그래서 저자가 이 바다를 북양이라고 부르기보다 북양어장으로 부르려고 하는지도 모릅니다.
대형트롤어선의 크기와 그 포획량은 어마어마합니다.그러다보니 환경 단체에 의해 비판 받기도 합니다.
사실 북양어장은 아주 낯선 소재입니다. 보통 바다라고 하면 해수욕장이나 이국적인 에메랄드빛 세계를 떠올리기 쉽고, 설사 어업을 떠올린다 하더라도 공장과도 같은 규모의 대형트롤어선을 떠올리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부산에 사는 저 역시 원양어선까지는 들어봤지만 ―고등학교 시절, 학업에 지쳐갈 때면 친구들끼리 "이럴 바에야 원양어선이나 타러 가자!"는 식의 농담을 주고받은 적이 있어 기억이 납니다. 물론 진짜 타러 간 친구는 없었죠.― 트롤어업은 생전 처음 듣는 단어였을 정도로 북양어장 자체가 낯설었습니다. 아마 어지간해서는 바다에서 삶의 문제, 곧 돈이나 생명을 건 일터의 싸움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가봅니다.
우리가 떠올리는 바다는 어쩌면 진짜 바다가 아닐 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보니 북태평양, 혹은 알래스카는 온통 흑백의 천지였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인가. 그것은 어쩌면 차가움을 너무 많이 닮았다. 차가운 시간, 공간, 그리고 의식(意識)들의 연상 작용 말이다. 내 젊은 날의 후반은 그렇게 행복했었다. -190쪽 |
저자에게도 역시 북양어장은 낯선 공간이었을 것입니다. 낯선 것에 적대감과 두려움을 느끼던 인류의 태생적 습관 때문인지, 그에게 북양은 무채색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고민하고 때로 생각할 겨를 없이 힘껏 몸을 부릴 때, 그러니까 삶을 살기 시작할 때 그는 어느새 바다와 함께 숨쉬기 시작합니다. 그것으로 그의 젊은 날은 불행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동감 있는, 행복한 것이 됩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북양어장은 어쩌면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토록 힘들어 보이던 고등학교 3년을 넘기고 수능을 치렀습니다. 그렇게 낯설고 이질적일 것 같은 환경도 막상 맞닥뜨리면 어느새 몸의 일부처럼 익숙해집니다. 그리고 어떤 환경이든 만나는 사람들과 듣는 이야기들은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북양어장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아마, 북양어장 가는 길은 멀고도 가깝습니다.
마이너스 30도, 어창(魚倉)에 숨어들어 잡어를 먹는 놈들은 -15쪽 |
이 책은 위대한 영웅의 서사나 위인의 전기가 아니라, 어려운 형편의 가정을 돕겠다며 바다로 나선 어느 ‘잡놈’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이 기록은 북양어장에 다녀온 경험, 일반적으로 겪어볼 수 없는 경험을 말하고 있어 꽤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질감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아는 형의 군대 이야기처럼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럽게 귀에 들어오는 것은 왜일까요?
이 귀여운 해양 생명체 덕분은 아닐 겁니다.
그것은 아마 그가 북양어장에서 깨달은 바가 '잡놈'의 교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록 그가 딛고 선 곳이 땅은 아니었지만, 그 드넓은 바다에서 그는 우리와 같이 인류 보편의 교훈을 배웠습니다. 그러한 교훈과 서사야말로 소재만 다를 뿐 우리가 즐겨 대화하는 주제요, 평범하면서도 아주 소중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만약 저자가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는 사람의 군상을 ‘잡놈’이라 이름 붙였다면, 어디서든 들어볼 수 있는 이 이야기들을 ‘잡이야기’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저는 ‘잡어를 먹는 놈들은/ 모두 잡놈들이다’라는, 문장인지 시인지 구분할 수 없는 이 글귀에 이렇게 덧대고 싶습니다,
잡놈이 하는 이야기들은
모두 잡이야기들이다
라고.
북양어장 가는 길 - 최희철 지음/해피북미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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