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호기자의 피플&] 한국출판학회상 경영·영업부문 대상 강수걸 산지니 출판사 대표
2015-03-12 [20:23:58] | 수정시간: 2015-03-12 [20:23:58] | 22면
▲ 강수걸 대표는 "국내 출판시장은 3조~4조 원 규모로 문화산업 중 가장 크다"며 최근 부산문화재단의 지역 출판물 지원사업이 큰 힘이 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정종회 기자 jjh@ |
"전체 출판시장 매출의 95%를 서울 지역이 차지하는 현실에서 지역 출판사가 살아남는다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다른 분야보다 출판시장의 서울 집중화는 너무 심하지요. 책을 만들어 전국 서점에 유통·판매하기가 어려운 구조입니다. 지역에서 10년 동안 1년에 20권 이상의 도서를 꾸준히 냈다는 점을 평가해 큰 상을 준 것 같습니다."
최근 제35회 한국출판학회상 2015년 경영·영업 부문 대상을 받은 도서출판 산지니 강수걸(48) 대표를 지난 6일 부산 연제구 법원남로 15평 남짓한 출판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강 대표는 지역 출판사로는 첫 수상이라 의미가 있다며 활짝 웃는다. 역대 경영·영업 수상 출판사는 김영사, 교보문고, 문학과지성사, 사계절, 창작과비평사 등 서울 메이저 출판사가 대부분이었다고 귀띔한다.
서울 메이저 출판사 받던 상
지역 출판사로는 첫 수상
지역 시장 열악한 사정 감안
파주 출판단지 내 물류창고 확보
전국적인 유통망 구축 주효
지명도 있는 필자 구하기 어려워
초창기엔 번역서로 돌파구 마련
아이디어가 책 되는 과정 즐거워
1만 부 이상 팔리는 책 만들고 싶어
산지니는 지난 2005년 2월 설립됐다, 올해 10돌이다. 인문사회과학도서를 많이 냈으나 이후 문학·학술도서로 분야를 넓혔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이달 초 발표한 '2014 출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권이라도 낸 출판사는 2천895곳이다. 20종 이상 낸 출판사는 535곳으로 20%도 채 안 된다. 산지니는 지난해 50종의 책을 출판했다. 10년간 낸 책은 280종이다. 대단한 성과다. 경영과 영업을 어떻게 했기에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는 출판사가 됐을까.
"지역 출판시장이 열악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요. 기존 지역 출판사는 영업에만 집중하고 물류에는 관심이 적었습니다. 산지니는 애당초 전국 유통망을 확보하겠다는 각오로 시작했지요. 2006년부터 파주 출판단지 내 물류창고를 이용했습니다. 물론 초기 비용이 많이 들었지요. 대신 서울을 비롯, 전국 어디서 주문을 하든 배달할 수 있는 체계가 만들어졌습니다."
강 대표는 파주 물류창고 외에 부산 온천장에도 물류창고를 확보, 지역 유통은 이곳에서 담당하게 했다. 전국 유통과 부산 유통을 이원화한 셈이다. 인쇄도 파주와 부산 두 군데서 했다. 강 대표는 파주 출판단지에는 창비·문학동네·열린책들 등 서울 지역 대형 출판사도 이전할 정도로 인쇄부터 제본·출력까지 최신 시설이 한곳에 몰려 있어 국내 출판산업에 긍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전한다.
"물론 꾸준히 살아남으려면 좋은 책을 만드는 게 결국 관건이었죠. 신생 출판사인 데다 지명도 있는 필자를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초기엔 번역서로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부산과 가까운 중국에 집중했지요. 지역 출판사가 관심 안 두는 데 착안한 겁니다. 특히 당시 중국정부의 번역료 지원제도를 적절히 활용했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강 대표는 초창기 '부채의 운치' '차의 향기' '요리의 향연' 등 중국 문화 번역서로 인지도를 넓히다가 2007년 '무중풍경'이란 중국영화 번역서가 히트 치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고. 이 책은 영화진흥원 학술도서·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울러 불교 기반이 강한 부산의 특성을 살려 인도를 소개하는 책도 많이 출판했다. 결국 인구도 많고 경제적으로도 뜨는 중국과 인도를 선택한 게 주효했다. 중국·인도 관련 책만 해도 30종이 넘는다고.
"특히 부산이 영화의 도시인 점을 감안, 중국영화를 한·중·일 3국에서 다양하게 분석한 책을 완결시켜 자부심을 느낍니다. 앞서 말한, 중국 본토 연구자가 쓴 '무중풍경'에 이어 한국 연구자의 '상하이 영화'(2010·2012년) 관련 3권, 일본에서 중국 연구자가 쓴 '중국영화의 열광적 황금기'(2015년)가 그것입니다. 국내 출판사 어디에서도 시도하지 않은 기획이지요."
강 대표는 부산 작가가 쓴 책 중에는 '부산을 맛보다'와 '부산언론사연구'가 기억에 남는다고. 특히 지역 맛집을 소개한 '부산을 맛보다'는 지역 관련 책 중에 가장 많이 팔렸고 일본에까지 수출돼 산지니로선 의미가 깊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새로 시작한 산지니시인선도 강 대표가 공을 들이고 있는 기획이다. 최영철 시인의 '금정산을 보냈다'가 1호 시집이다. 다른 시인선과의 차별화를 고심하다 해설 대신 대담을 싣고 시인의 사인을 책 표지에 은은하게 넣었는데 반응이 괜찮았다고.
"지난 2007년부터 계간 오늘의 문예비평 발행인도 맡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편집인도 겸합니다. 25년 역사를 갖고 있는 잡지인 만큼 부산의 대표적인 잡지로 자리 잡는 데 힘을 보탤 예정입니다. 우선 재정의 자립을 이루고 기획력 강화를 위해 안정적 편집위원을 확보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강 대표는 "'야생의 오래된 매'라는 산지니의 뜻처럼 지역에서 오래 살아남는 출판사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고 금융위기가 온 2008년 면학도서·청하서림 등이 부도로 폐업하면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역설적으로 그해부터 흑자경영이 시작됐다고 강조한다. 설립 3년여 만에 이룬 성과다.
한국출판학회상 시상식 모습. 산지니 제공 |
산지니는 교보·영풍·서울문고 등 전국 20여 곳의 대형서점과 직거래를 하고 있다. 최근 충청지역 대형서점이 새로운 거래 요청을 해 오는 등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다고. 인터넷 서점을 포함한 직거래 매출이 전체의 60~70%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총판·현매 방식이다.
"요즘 출판 시장은 '다품종 소량생산' 추세입니다. 책 판매는 둔화되고 소비자들의 기호는 다양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지요. 신간을 계속 만들어야 하는데 출판사의 이익과는 충돌하는 지점입니다. 도서산업은 이익률은 낮고 원가 회수가 아주 긴 산업입니다. 소위 인풋, 즉 초기 비용은 대량으로 들어가는데 아웃풋, 회수는 최대 5년가량 걸리는 구조지요. 초기 1~2년을 잘 견뎌야 망하지 않습니다."
강 대표는 부산대 86학번으로 법학과를 나왔다. 곧바로 대기업 법무팀서 10년간 근무했다. 고교 시절 요산 김정한의 '낙동강의 파수꾼'이라는 책을 가장 감명 깊게 읽었는데 그의 비판정신이 좋았단다. 대학 때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사회과학도서를 많이 접한 게 결국 출판사를 하게 된 밑거름이 됐다고. 강 대표는 "아이디어가 책으로 나오는 과정이 너무나 즐겁고 성취감도 크다"고 덧붙인다.
"조갑상 장편소설 '밤의 눈'이 저에겐 가장 의미 있는 책입니다. 국민보도연맹 유족들의 삶을 다룬 책인데 2013년 만해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산지니의 위상을 높인 책이죠. 앞으로도 현대사의 아픔을 형상화하는 작품에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그동안 1만 부 이상 팔린 책이 없었어요. 좋은 책을 많이 만들어 지역민의 사랑을 듬뿍 받을 때 1만 부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도 가능하리라 기대합니다."
손정호ㅣ부산일보ㅣ201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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