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문학의 종언, 근대비평의 종언과 같은 언설이 나오는 지금, 한국비평의 현실은 과연 어떠할까? 문학의 위상이 계속해서 줄어드는 동시에 ‘칭찬’의 비평과 주례사 비평으로 전락한 당대 한국비평의 위기상황 속에서도, 오길영 문학평론가는 무엇보다도 비평가가 본래 갖고 있는 문학에 대한 책무를 놓치지 않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바로 텍스트를 섬세하게 읽어낼 것과 더불어 텍스트를 둘러싼 사회·문화·역사적 맥락을 함께 읽어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요지다. 비평집 『힘의 포획』은 이러한 비평의식에서 출발한 한국문단의 현실과 비평의 본질에 대해 되짚고 있다.
힘의 포획
감응의 시민문학을 위하여
한국문학의 위기 속, 문학이 가지고 있는 ‘힘’을 포획하다
나는 여기서 비평의 위기를 느낀다. 한국 문학비평에서 제대로 된 비판, 혹은 예리한 독설이 사라진 지 오래라는 말을 나도 종종 들었지만, 이번에 신경숙 소설을 나름대로 읽고 관련 비평을 읽으면서 그 점을 실감한다. 많은 비평가들이 공감의 비평을 말한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작가 로런스(D. H. Lawrence)의 충고. “비평은 흠잡기가 아니다. 균형 잡힌 의견이다.” 로런스의 말은 이렇게도 읽어야 한다. “비평은 주례사가 아니다. 균형 잡힌 의견이다.” _「베스트셀러와 비평의 위기」, 141-142쪽.
세계 안의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글의 힘’
비평집의 표제기도 한 평론 「힘의 포획」에서는 김남주 시인 20주기를 맞은 저자의 단상을 담았다. 저자는 “문학이나 영화는 무엇을 표현하고 재현하는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곧이어 “우리의 삶과 세계를 움직이는 힘”을 포착해내는 데 예술이 기여한다 말한다. 정한석 영화평론가의 말에 따르면, 영화에 있어 연기력이란 ‘힘을 포획하는 힘’이다. 그렇다면 문학에 있어서 예술이 감응하는 힘을 포착하는 방법은 단연 ‘글의 힘’이 될 수밖에 없다. 이때 글이 가지고 있는 ‘힘’은 단순히 언어의 형식적 아름다움에 그치는 게 아닌 “세계를 구성하는 힘들의 복잡한 관계와 감응의 역학”을 담아내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즉 당대 문학 속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문학공간의 쟁점들에 대한 열띤 토론이 사라진 현실에서부터 한국문학과 한국문화, 그리고 인문학 연구에 대한 문제제기까지 날카로운 비판과 다양한 논의들을 통해 한국문학의 현주소를 살피고 있다.
뛰어난 문학·영화는 눈에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게 아니라 미처 알지 못하는, 지각하지 못하는, 그러나 세계에 존재하는 미지의 힘들, 우리의 삶과 세계를 움직이는 힘을 붙잡는 데 힘을 쏟는다. _「힘의 포획」, 390쪽.
비평의 공론장으로 끌어올린 한국문학/문화론
이 책은 크게 4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한국문학공간에서 제기되는 쟁점들을 다루고 있으며, 2부에서는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의 관계를, 3부는 건강한 시민문학과 예술이 기능하기 위해 갖춰져야 할 한국 문화의 토대에 주목했으며, 끝으로 4부는 신문과 잡지에 기발표된 한국작가와 작품론을 논하고 있다. 이 책의 글들은 대체로 문제를 제시하고 쟁점을 예각화하려는 ‘논쟁적’ 성격을 띤다고 저자는 밝혔다. 당대 비평계에 열띤 논쟁이 사라진 지 오래이나, 저자는 이러한 문제제기들을 통해 비평계에 건강한 활력이 돌기를 기대한다고 말한다.
다시, 비평가는 누구인가를 묻다
저자는 비평(criticism)은 곧 비판(critique)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문학비평계에서 비평가란 출판자본에 종속되어 예쁘게 작품을 포장하는 ‘문학코디네이터’로 전락한 지 오래이다. 저자는 “끝까지 읽기가 고통스러운” 한 중견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한국 평론가들에게 높이 평가받는 작가들의 작품을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다. 저자는 비평에는 ‘객관성’이 존재하지 않으나 “독자대중과 비평가들의 주관성이 만나 새롭게 형성되는 객관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객관성이 부재한 한국의 비평현실에 대해 씁쓸함을 감추지 않는다. 일본문학계에 파장을 일으켰던 가라타니 고진의 화두가 지금의 한국소설계에 유효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문학비평의 쇠락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로 당면한 지금, 다시 비평과 비평가의 본질은 무엇인가.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정신을 잃지 않은 비평”의 중요성에 대해 환기하고 있다.
힘의 포획 | 산지니 평론선 13
오길영 지음 | 문학 | 신국판 | 432쪽 | 25,000원
2015년 6월 15일 출간 | ISBN : 978-89-6545-293-5 03810
근대문학의 종언, 근대비평의 종언과 같은 언설이 나오는 지금, 한국비평의 현실은 과연 어떠할까? 문학의 위상이 계속해서 줄어드는 동시에 '칭찬'의 비평과 주례사 비평으로 전락한 당대 한국비평의 위기상황 속에서도, 오길영 문학평론가는 무엇보다도 비평가가 본래 갖고 있는 문학에 대한 책무를 놓치지 않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 : 오길영(吳吉泳)
서울대학교 영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영문학 박사. 비평 및 문화이론, 현대영미소설, 비교문학 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며, 현재 충남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있다. 계간 『한길문학』(1991년 겨울)에 평론 「연민과 죄의식을 넘어서: 임철우·양귀자론」을 발표하며 평론 활동 시작. 주요 저서로 『세계문학공간의 조이스와 한국문학』(2013,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이론과 이론기계』(2008, 생각의나무), 『에드워드 사이드 다시 읽기』(공저, 2006, 책세상) 등이 있다.
차례
힘의 포획 - 오길영 지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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