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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 책/정치|사회

책으로 만나는 이주민의 삶

by 아니카 2010. 4. 3.

<기획회의> 268호에서 '다문화사회와 출판'이라는 기획 특집 기사를 실었습니다. 점점 다문화사회화 되어가는 우리 사회인데, 출판은 그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기획이라고 합니다. 다문화 관련 서적들이 종종 출간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 산지니 출판사에도 원고 청탁이 왔네요. 재작년에 펴낸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라는 책의 기획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써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20매 원고를 써서 보냈습니다.  다음은 원고 내용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뭉클하고 따뜻해진다. 서로 기대고 돕고 사는 사회는 얼마나 이상적인가. 이렇게 세상을 살 만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갈수록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관심은 절실하다. 그러나 이 당연한 사실이 한편으론 너무나 당연하게 외면되고 있다. 세상은 점점 빠르게 변화하고, 경쟁은 심화되는 이 시대에 우리는 그들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우리 옆의 약자』_약자와 소수자들의 삶을 생생하게 파헤치다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는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출발했다. 이 관심은 출판사 설립 초기에 출간한 『우리 옆의 약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말 그대로 우리 옆에 존재하는 수많은 ‘소수자’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르포 작가 이수현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을 직접 찾아 그들의 삶의 현장을 한 편의 글로 담아냈다.

이주노동자, 장애인, 미혼모, 희귀난치병 환자, 병역 거부자, 청소년, 노숙인, 쪽방 사람들, 신용불량자,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어민들, 성소수자, 독거노인, 탈북 새터민 등 이 땅에서 차별받으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소수자들. 저자는 우리 사회 약자와 소수자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일상에서 겪는 고통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매 꼭지마다 전문가 기고를 통해 소수자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였다.

『우리 옆의 약자』의 1장 두 꼭지는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에 위치한 국경 없는 마을에서 직접 만난 이주노동자와 청소년, 아이들의 열악한 상황,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이 꿈꾸는 세상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박노자 교수가 추천사에서 쓴 말마따나 외국인의 노동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특징인 불안 노동의 한 종류일 뿐이고, 누구나 노동 불안화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임금 체불이나 손찌검을 덜 당하고, 월급을 약간 더 받고, 출입국관리사무소로부터 박해 받을 일이 없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지, 사실 대형 마트나 텔레마케팅 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한국 여성의 처지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누구나 이주노동자의 처지가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와 남을 가르고 구분하기보다는, 따뜻한 관심으로 내가 아닌 그들을 보듬어 안아야 할 것이다.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_일본의 이주민 정책 문제를 살펴보다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관련 책들을 몇 권 출판한 이후 이를 눈여겨보았는지 지역의 이주민 관련 단체에서 연락이 왔다. 부산 지역에서 이주노동자와 이주민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부산 외국인노동자인권모임의 부설기관 이주와인권연구소는 일본에 있는 이주노동자와 연대하는 전일본 네트워크(The Solidarity Network with Migrants Japan)라는 NGO 단체와 연대 사업을 하고 있는데, 그 단체에서 펴낸 책을 번역해서 우리나라에 소개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흔쾌히 수락을 하고 이렇게 해서 펴낸 책이 바로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다.

일본이 한국보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10년을 앞서간다고 하듯, 이주민 관련 상황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는 외국인 문제라고 하면 이주노동자 문제만 거론되다가, 2000년 이후 국제결혼이 급증하면서 이주민 문제로 확대되기 시작했는데, 일본에서는 이주민 문제가 그보다 10년 전(1990년 개정 출입국관리와 난민인정법 시행 이후)부터 사회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한국에서 이주정책을 거론할 때는 어김없이 일본의 사례를 든다. 그것은 일본과 한국사회의 이주 문제와 성격이 매우 유사할 뿐 아니라 한국의 이주노동정책이 많은 부분 일본의 정책을 답습하거나 모방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산업연수생과 기능실습생 제도는 일본의 연수기능실습 제도를 흉내낸 것이고, 일본의 남미 일계인 문제는 우리의 재외동포 문제와 맞닿아 있다.

한국과 일본은 상황이 비슷한 만큼 일본의 시행착오는 우리에게 현재와 미래의 경험이 되기도 한다. 이주민 관련 지원 활동도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훨씬 먼저 시작했으며, 다양한 활동의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와 연대하는 전일본 네트워크는 일본에서 이주노동자 및 외국 국적 주민 지원 활동을 하는 NGO들이 1991년부터 정기적으로 외국인노동자 문제 포럼을 개최하며 연대하던 중, 일상적인 협력을 목적으로 하는 전국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공감하면서 1997년 발족한 단체이다. 이들은 이주노동자와 외국 국적 주민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제도를 만들고, 정책 개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는 바로 이주노동자와 연대하는 전일본 네트워크의 노력과 활동의 결과물이다. 이 책의 부제 ‘NGO의 정책 제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무엇보다도 정책 제언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 의미를 두었다. 부족하나마 이주민 관련 책들이 다양하게 출판되고 있는 시점이었으나, 정책을 이야기한 책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문화 가정이 늘어남에 따라 관련 정부 기관도 늘어나고 지자체에서도 다문화 가정에 관한 여러 가지 사업을 계획하고 있지만, 정작 정책 입안자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안하는 책은 아직 부족하다.

마침, 이 책에 제시되어 있는 제언은 탁상공론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실제 현장 활동을 통해 구체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정책을 도입하고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 예를 들어, 이주 어린이들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출생신고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주 여성을 가정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지, 외국 국적자에게 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불법체류자를 단속하고 수용할 때는 어떤 절차를 갖추어야 하는지, 수용소 내부는 어떤 복지시설을 갖추어야 하는 등 아주 구체적인 제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그들의 인권을 보호하다
국내 거주 외국인이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아직도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는 여전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9년 12월 28일 펴낸 ‘2009 외국인보호소 방문 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단속, 이송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법무부 장관에게 출입국 단속의 요건 및 절차 등을 법률로 규정하라고 권고했다 한다. 따라서 아직도 이와 관련된 책이 필요하고, 더 많은 책들이 출판되어야 하는 현실이다.

이 책은 이주와인권연구소 이한숙 소장과 일본 쯔꾸바 대학의 사회학 박사과정에 있으면서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이혜진 연구위원이 맡아 번역을 해주었고, 원저작권자인 일본의 이주노동자와 연대하는 전일본 네트워크는 인세를 한 푼도 받지 않음으로써 연대의 마음을 보내주었다. 이 지면을 통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책이 출간된 후 뜻하지 않게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청소년도서로 선정되는 행운이 찾아왔다. 처음 책을 낼 때는 독자 타깃을 정책을 입안하는 공무원이나 이주민 관련 단체 활동가들, 약자와 소수자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으로 두었으나 청소년도서로 선정이 되고 보니 세계인들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 청소년들이 읽어도 충분히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증가하는 다문화가정 속에서 더 열린 자세를 가지고 함께 살아가야 할 다음 세대를 위해 청소년도서로 선정했을 것이다.

한 권의 책을 만들고, 그 책으로 이 사회가 조금이나마 서로 나누고 보듬어 안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담당 편집자로서는 큰 기쁨이자 보람이다. 이 책이 징검다리가 되어 이주민 문제 관련 시인 하종오의 시집 『입국자들』을 펴낼 수 있어 더욱 보람 있었다.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 - 10점
이주노동자와 연대하는 전일본 네트워크 지음, 이주와인권연구소 옮김/산지니
우리옆의 약자 - 10점
이수현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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