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출판일기

[다시 읽는 소설] 조명숙 단편소설 「점심의 종류」②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7. 4. 17.

 

4.16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아

조명숙 소설집 『조금씩 도둑』에 수록된

단편소설 「점심의 종류」를 연재합니다.

 

 

 

 

점심의 종류

조 명 숙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면서

 유미의 죽음이 심연처럼 가라앉을 때,

마침내 고통은 고통끼리 부딪쳤다.

 

 

 

 

2화

 

 

 

 

  영미가 숟가락을 뺏으려 한다.“미장원 갔다가 옷도 좀 사자.” 완강하게 뿌리치면서 영애는 쟁반을 들고 뒤로 물러난다. 영미가 깬돌의 모서리처럼 모난 눈으로 노려본다. 그러고 보니 영미는 방금 미장원에 다녀온 모양이다. 사흘 전보다 머리가 조금 짧아졌고, 헤어에센스 냄새도 난다. 물 한 모금 마신 영애는 영미가 가리고 있는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목을 뽑는다. 중학생 모자를 쓰고 교복을 입은 장동건과 원빈이 구두를 구경하고 있다. 선명한 다갈색의 구두 한 켤레에 모아지는 장동건과 원빈의 눈. 장동건과 원빈의 시간이 전진하고 있는 가운데 영애의 시간은 후진을 계속한다. 다갈색 스웨이드 신발을 신은 유미가 콩콩 발을 구른다.

 

  유미의 손에는 아이스크림이, 영애의 손에는 캔커피가 들려 있었다. 볕살 좋은 봄날이다. 유미가 눈을 찌푸리며 손으로 해를 가린다. 유미는 새로 산 스웨이드 신발을, 영애는 유미가 신던 낡은 운동화를 신고 있다. 유미가 영애를 껴안는다. 구두에, 옷에, 정말 고마워, 엄마. 나 취직해서 월급 받으면 엄마 다 줄게. 그래, 그래라. 그땐 엄마 청소일 그만두고 쉬기만 해. 알았지? 그래, 그러자. 유미와 영애는 햇살을 받으며 걷는다. 그래, 그래라. 우리 유미 취직하면 나 청소일 그만둘게. 영애는 중얼거린다. 그래, 그랬지. 우리 유미 취직하면 나 일 그만두고 쉬기로 했지. 그런데 우리 유미 아직 취직을 못했어. 그래서 내가 일을 쉴 수가 없어. 일을 하려면 먹어야지. 먹어야 일을 하지.

 

  화면이 갑자기 사라진다. 영미가 눈앞에서 리모컨을 흔들고 있다. “이러고 있는 거 유미가 다 보고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해 봤어? 유미도 이제 그만 언니가 편안해지길 바랄 거야. 이제 그만하자, 우리. 난 지쳤어.” 영미를 향해 물이 담긴 컵을 집어던진다. 컵이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진다. “난 그만두지 않을 테야. 왜냐고? 모두들 그만두길 원하니까. 그래서 그만두지 않을 거야.” 걸레를 가져와 엎질러진 물을 닦으며 영미가 맞고함을 지른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계속해. 계속하라고. 실컷!” 곱슬곱슬한 영미 머리카락이 출렁거리면서 흔들린다. 영미 머리카락이 아래위로 왔다 갔다 한다. 나이를 먹어도 싱싱하고 탄력 있는 머리카락을 가진 영미가 운다. 영미와 함께 유미가 운다. 엄마. 이제 그만 날 잊어버려. 유미가 울면서 말한다. 영애는 입술을 꼭 문다. 나도 그러고 싶다. 지난 일이라 치고 다시 처음부터 살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잠깐일 뿐, 나는 다시 잊지 못한다.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하라니, 내 머리를 갈라 모든 기억을 꺼내 버리렴.

 

  계란 노른자와 다시마 가루로 만든 헤어팩을 잔뜩 바르고서 영미와 유미는 나란히 앉아 있곤 했다. 유미와 영미는 죽이 잘 맞았다. 엄마 노릇의 십분의 일은 영미가 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랬던 영미가 이제 그만 유미를 잊으란다. 서운하고 야속하고 밉다. 고통도 오래되면 지병처럼 지긋지긋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만 잊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보기 싫거든 오지 마. 너 없이도 살아.” 중얼거리고서 영미를 외면한다. 입은 밥을 씹고 있는데 머릿속에서는 깬돌들이 모난 모서리를 서로 부딪치고 있다. 장아찌를 씹던 이가 혀를 건드렸다. 씹던 일을 멈추고 얼른 물을 마신다. 그날도 이렇게 심하게 혀를 깨물었다. 대단한 음식을 먹은 것도 아닌데 혀를 깨물었고, 입안이 계속 불편했다.

 

 

  네온이 불야성을 이룬 유흥가. 대형 빌딩에서 쏟아져 나온 쓰레기가 주차장 한쪽에 태산처럼 쌓이는 시간. 영애는 십칠 층 룸을 청소하고 있었다. 술 냄새, 담배 냄새가 가득 차 있었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었을 때 세찬 바람 한 줄기가 들이닥쳤다. 꽃병이 넘어지면서 동료의 발등을 찍었다. 빌딩과 빌딩 사이로 가끔 용오름이 지나간다더니, 그런 것인가 여겼다. 그런데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시커먼 어떤 것이 바람을 타고 들어온 것 같았다. 오래 고인 물에 산다는 물컹거리고 기이한 큰빗이끼벌레 같은 것이 몸을 옥죄는 듯 숨이 막혔다. 뭐야, 이 기분 나쁜 냄새는? 동료가 투덜거리는데 또로롱 문자벨이 울렸다. 유미. 위젯을 끌어당기자 큰빗이끼벌레 같은 것이 창밖으로 쑤욱 빠져나갔다. 좋은 아침. 아빠와 난 잘 잤고, 기분도 좋아. 엄마만 남겨 놓고 와서 미안. 문자를 읽고 있는데 유미의 검고 탐스런 머리카락이 얼굴을 머릿속을 싹 스치고 지나갔다. 고약한 냄새를 지우면서 유미가 쓰는 샴푸 냄새가 났다.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유미가 보고 싶었다. 넌 꼭 대학에 보내 줄게.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십 분이나 지났을까. 지철에게서 전화가 왔다. 배가 기울었어. 뒤집어질 것 같아. …유미, 유미가 안 보여. 화장실 간다고 했는데…. 지철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세상에 하고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도 그게 다 남의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큰빗이끼벌레처럼 낯설고 무섭고 불길한 어떤 것이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졌을 때, 일은 이미 터져 있었던 것이다.

 

  영미에게서 리모컨을 뺏는다. “이러다 죽겠어. 차라리 죽어 버려. 그러면 잊을 거잖아. 유미한테로 가, 차라리!” 말 끝에 영미가 쿨쩍거린다. 사흘 전 정오에도 영미가 왔고, 볶음밥이 배달되었다. 텔레비전이 꺼졌고 물이 쏟아졌으며 쿨쩍 소리도 났다. 이 반복이 영화라면 얼마나 좋을까. 걸레를 빨아 바닥을 닦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청소를 하는 일, 어설픈 밥을 먹고 자는 듯 마는 듯 밤을 지내는 일, 신발을 신거나 세탁기의 버튼을 누르는 일, 이불을 덮고 다리를 웅크리는 일이 이미 본 영화라면. 그런데 사는 건 영화가 아니다. 매번 똑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 같지만 영화처럼 엄밀하게 똑같지 않다. 비슷하게 재현되는 장면에는 약간의 변화가 있고, 그 변화는 보이지 않게 조금씩 바뀐 미래를 가져온다. 장면의 균열과 변화가 그것을 말해 준다. 지금 여기 있지만 십 년 전의 그것이 아닌 리모컨, 지금 여기 있지만 십 년 전의 그 사람이 아닌 영애, 지금 여기 있지만 십 년 전의 영미가 아닌 영미, 매일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는 유미. 그렇기 때문에 영애는 살아 있어야 했다. 내 속에서도 점점 희미해지는 유미를 누가 기억해 줄까? 질문을 담은 눈으로 영미를 본다. 영미에게 유미가 겹쳐진다. 잠 어린 눈을 비비며 식탁에 앉던 유미, 책가방을 메고 팔짝팔짝 뛰어서 목에 매달리던 유미, 젖은 머리카락으로 물을 뿌리며 환히 웃던 유미…가 영미처럼 있다.

 

 

  슬픔이 서슬처럼 담긴 눈길에 영미가 주춤하는 사이 초인종이 울린다. 영미는 얼른 영애 앞을 벗어나 조르르 현관으로 달려간다. 배달원이 철가방을 내려놓는다. 영애는 리모컨을 누른다. 3, 0, 9. 전쟁터에도 휴식은 있다. 잠시 문명인이 된 병사들은 장난을 친다. 원시인처럼 먹고 자며, 원시인처럼 흥분하여 싸우지만 또 원시인과도 같은 순수한 의지로 병사들이 휴식한다. 바뀐 장면. 포연 속에서 장동건이 포복하고 있다. 바로 곁 병사가 쓰러진다. 연발 총성. 장동건이 수류탄을 던진다. 장동건이 병사 셋과 함께 사이드로 빠지면서 원빈을 따돌린다. 돌격하는 장동건 뒤로 건물이 무너지고 파편이 튄다. 바뀐 장면. 장동건이 북한군과 육탄전을 벌인다. 엄호를 맡은 북한군이 장동건과 맞총질하다 죽는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배우들이 스러지는 장면을 지나 태극기가 휘날린다. 병사들이 평양에 입성한다. 거수경례하는 장동건과 원빈.

 

  볶음밥이 담긴 접시 두 개와 단무지, 양파와 중국 된장에는 랩이 씌워져 있다. 영미는 수저를 싼 종이와 볶음밥을 덮은 랩을 벗긴다. “먹자, 제발.” 영애는 화면을 가린 영미의 등을 민다. “비켜.” 옆으로 밀려난 채로 영미가 볶음밥을 먹는다. 볶음밥이 냄새를 피운다. 영애는 볶음밥을 기억한다. 그것은 몇 가지 야채를 잘게 썰고, 그것을 싸구려 고기 볶은 것과 섞어서 만든 음식이다. 영미가 막 랩을 벗긴 단무지는 절인 무에 설탕이나 사카린으로 단맛을 내고 약간의 식초를 뿌린 것이다. 양파는 가을에 심어 봄에 거두는 채소이며 동그랗게 생겼고, 여러 겹의 외피를 가지고 있다. 또 그것은 단맛과 매운 맛을 내는 것으로 여러 가지 음식에 양념으로 쓰인다. 새까맣고 진득한 중국 된장은 밀가루와 소금을 발효시켜 만든 재료에 캐러멜과 같은 첨가물을 넣은 것이다….

 

  피투성이가 된 원빈이 난투극을 벌이고 있다. 상대 배우는 아직 모른다. 몇몇 조연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최선을 다하는 태도인 체하는 것이 관객이다. 그녀도 엄연한 관객이다. 영애에게도 권리가 있다. 영화를 볼 권리, 맛있는 음식을 먹을 권리, 좋은 옷을 입을 권리 같은 것이 분명히 있다. 그 엄연한 권리를 누가 빼앗아 버렸는가. 온몸이 불에 타는 것처럼 뜨거워지는 것만 같다. 얼른 화면으로 눈을 돌린다. 불탄 시체들. 앙상하고 시꺼먼 뼈들. 장동건이 잿더미 속에서 만년필을 집어 든다. 표정이 침통하다. 새까만 뼈로 남은 하나의 목숨에, 하나의 목숨이었던 새까만 뼈에 장동건이 손을 얹는다. 전쟁터에서 병사들은 참혹하게 죽지만 조용히 묻힌다. 더러는 묻히지 못하고 흙더미 위에서 썩는다. 목숨을 밟고 지나가는 탱크. 밥알처럼 으스러지는 뼈. 수없이 많은 유미들.

 

 

  영미가 볶음밥 접시를 들이민다. “먹어, 좀. 언니 볶음밥 좋아하잖아.” 못 들은 척한다. 옛날 일이다. 볶음밥을 좋아했고 만두를 좋아했다. 하지만 진흙이 메워진 것 같은 머릿속, 누런 위액이 구석구석 고여 있는 것 같은 뱃속, 스멀거리는 통증과 가려움으로 채워진 뼈와 살…. 고통의 증거들 속에서 배회하는 기억이 식욕을 가로막고 있다. 물끄러미, 영미를 본다. 음식은 이제 머릿속에 저장된 하나의 지식에 지나지 않는다. 유미가 마음속에 있는 한 어떤 음식도 받아들일 수 없다. 음식을 넣으면 속에 있던 유미가 그것을 몽땅 뒤집어쓰고 말 것 같다. 반찬투정 없던 유미였지만 오래 보온된 밥과 시장에서 파는 김치, 무장아찌는 도저히 안 넘어간다고 했다. 김치가 떨어지면 어설픈 깍두기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 영애는 유미가 먹지 못하게 된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됐다. 유미가 싫어하던 것만 그나마 조금 먹을 수 있다. 어디에 있니? 점심은 뭘 먹니? 매일 주고받던 말의 기억을 다 잊어버린 뒤라면 모를까.

 

  러닝셔츠 차림의 오지호가 원빈에게 다가간다. 장동건을 찾아보자고 한다. 원빈이 격하게 받아친다. 나하고 상관없다고 했잖아. 훈장 못 받아서 환장한 인간이니 그 인간 죽든 말든 알게 뭐야. 오지호에게서 멈춘다. 선한 입매. 깊고 큰 눈. 주의해서 보지 않았지만 어느 때부턴가 주의해서 보게 된 배우다. 오지호가 화면에서 사라지기를 기다린다. 지철은 길게 찢어진 눈이었으나 입매는 묘하게 오지호를 닮았다. 눈 뜨고 웃어. 영애는 자주 지철을 놀렸다. 눈 작은 사람 간은 크다던데. 어, 그런가… 그런가 보군. 지철은 잘 웃었고 웃을 때면 눈이 거의 감겨 버렸다.

 

  유미는 죽었지만 그가 살았다는 것이 한동안은 위로가 됐다. 최소한 고통을 함께 나눌 상대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가기 싫다는 걸 억지로 떠밀어 보낸 영애와, 같이 아침밥 먹고 유미가 화장실 간 사이에 무릎까지 차오른 바닷물을 헤치고 혼자 살아 나온 지철은 자신들이 고통을 공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으로 서로를 찌를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는 것까지는 몰랐다. 그것을 알아차리기에는 너무 경황이 없었던 것이다. 순항 중이던 배가 왜 갑자기 선로를 바꿨고, 그처럼 큰 여객선이 왜 순식간에 속수무책 뒤집어졌는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살 길을 찾아 뱃머리로 나온 일흔일곱 외에는 왜 단 한 사람도 구조될 수 없었는지, 살지도 죽지도 않은 마흔여섯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면서 유미의 죽음이 심연처럼 가라앉을 때, 마침내 고통은 고통끼리 부딪쳤다.

 

 

 

 

 

3화에서 계속됩니다.

 

 

 

조명숙 소설집 『조금씩 도둑』

 

조명숙 지음 | 문학 | 국판 변형 | 244쪽 | 13,000원

2015년 4월 6일 출간 | ISBN : 978-89-6545-286-7 03810

 

2012년 소설집 <댄싱 맘> 이후 3년 만에 소설가 조명숙이 네 번째 소설집을 출간했다. 어둠을 식별하는 감각적 문체와 정주하지 않고 유목하는 글쓰기 행보를 보였던 그가, 이번 소설집에서는 상처 입은 여성들의 세심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들로 돌아왔다. 특히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한 '점심의 종류'가 수록되어 있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와 현대인의 상실감을 엿볼 수 있다.

 

 

 

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