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미세먼지 때문에 출판사 식구들 모두가 코를 훌쩍이는 11월의 어느 날, 편집 후기로 돌아온 S편집자입니다.
사실 편집자는 책을 내고 나면 또 다른 원고에 집중하기 때문에, 출간된 책을 생각하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시원 후련(?)한 기분이랄까요. 저만 그런 건 아니겠지요...)
그런데 출간된 지 몇 주가 지났는데도, 계속해서 S 편집자의 눈에 아른거리는 책이 있답니다.

바로 김춘복 선생님의 에세이집, 『그날이 올 때까지』인데요,
선생님의 에세이집 『그날이 올 때까지』에는 사라져가고 있는 한국 고유 풍속과 거기에 얽힌 따뜻한 이야기, 소설가로 등단한 뒤 어려운 시절을 함께 보낸 동료 문학인들에 대한 회고록,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에 대한 저자의 직간접적인 체험기가 담겨 있답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소년기에 전쟁을 겪고 전후 혼란의 시기에 청년으로 지냈던 질곡 많은 선생님 개인의 역사이자, 대한민국의 역사를 녹여내신 셈인데요.

저도 선생님이 동료인 윤정규 선생님을 보내시고 쓴 추모사를 보면서는 선생님의 감정에 흠뻑 동화되어 눈물이 나올뻔 했고, 어린 시절 마을 분들과 함께 수확을 하셨던 모습을 보면서는 슬며시 웃음이 나오기도 했지요. 그래서인지 이 책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시큰해지곤 한답니다. 항상 꼼꼼하게 보신 교정지를 들고 출판사로 방문하셔서 교정사항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구요.

『그날이 올 때까지』 속의 좋은 글들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에, 오늘은 여러분도 잘 아시는 국민할배 최불암 선생님과 김춘복 선생님의 에피소드를 살짝 공개해보려고 합니다.
그럼  책 속 「다가올 찬란한 대낮으로 증거하시라」의 일부분을 함께 보시죠.

 

 

문예반장, 고3 때 학예부장을 역임한 점 등 그와 나는 상통하는 점이 많았다.
게다가 주량이나 바둑 실력 또한 막상막하한 터여서 우리는 금세 막역한 사이로 발전했다.
그가 우리 학교에 자주 나타난 또 하나의 사연은 영화연극과 최영한 때문이었다. 최영한은 ‘국민아버지’로 불리는 탤런트 최불암의 본명으로 중앙고 재학 시절에 연극부에서 함께 활동한 콤비였다. 김기팔은 주로 기획 및 각색을, 최영한은 주연을 맡았다.
당시 최영한은 ‘제임스 딘’이라는 닉네임이 붙었을 정도로, 내로라하는 ‘얼짱’, ‘쌈짱’ 들이 다 모여드는 영연과 안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존재였다.

 

젊은 시절의 최불암 선생님

 

김기팔은 나보다 한 살 위인 소띠였으며, 최영한은 나보다 한 살 아래인 토끼띠였지만, 동급생끼리 나이가 무슨 대수인가.
최영한과 어울리는 날이면 우리는 ‘노는 물’이 달라지게 마련이었다. 하루는 최영한이 말했다.
“야, 명동에 가면 말야, 영화배우들은 물론 시인, 소설가, 음악가, 화가들을 입맛대로 구경할 수 있다구.”
오늘날처럼 영상매체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별종처럼 여겨지는 저명한 예술가들을 육안으로 목도할 수 있다니!
명동에 첫발을 들여놓던 순간, 나는 별천지에 들어서는 것처럼 새로운 개안으로 황홀했다.
누가 말했던가, 1950년대 후반기, 파리에 샹제리제 거리, 뉴욕에 5번가, 동경에 긴자 거리가 있었다면 서울에는 명동거리가 있었다고…….
그랬다. 당시 명동은 전후 한국문화의 심장부, 예술과 패션의 메카였다. 식민지와 전쟁의 혹독한 시련을 겪으며 오랫동안 억눌려 살아야만 했던 이들이 그동안 켜켜이 쌓이고 쌓인 울분을 마음껏 외치기도 하고 흥청망청 소비문화를 한껏 향유할 수 있는 해방구가 바로 명동이었던 것이다. 운 좋게도 대뜸 첫날 주먹으로 당대를 주름잡았던 김두한과 톱스타 최은희를 바로 코앞에서 마주칠 수 있었으니 최영한의 말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었다. 그들 틈에 섞여 걸어가면서 어느덧 나도 대한민국 최고 레벨의 문화인이 된 듯 어깨가 으쓱해졌다.
명동의 흡인력은 대단했다. 첫발을 디딘 이후로 우리는 사흘돌이로 명동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것은 머지않아 펼쳐질 내일에의 장밋빛 예감이기도 했다.
‘돌체다방’에 들러 이 세상의 모든 고민을 한 몸에 다 떠안은 양 비장한 표정으로 음악을 감상하기도 하고, ‘청동다방’에 들어가 하루에 아홉 갑씩 줄담배를 태우면서도 실은 단 한 모금도 연기를 흡입하지 않는 공초 오상순 시인을 구경하기도 하고, ‘갈채다방’에 올라가 김동리 선생과 마주앉아 강의시간에 듣지 못한 이야기를 듣기도 하다가, 마지막으로 발길이 닿는 곳은 전란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허물어진 빌딩 뒷골목에 겨우 하늘만을 가린 싸구려 주점이 아니면 스탠드바, 위스키시음장 등이었다.
매번 술값은 최영한의 몫이었다. 그의 돈줄은 명동 입구에서 ‘은성 銀星 ’이라는 주점을 경영하는 그의 어머니였다. ‘은성’으로 말하면, 남편이 인천에서 영화제작자로 활동하다 과로로 숨지자 외동아들과 생계를 잇기 위해 시작했던 것인데, 미모에다 인심까지 넉넉하다 보니 ‘명동백작’으로 유명한 소설가 이봉구를 위시하여 변영로・박인환・김수영・전혜린・천상병・이진섭・ 현인・나애심・이중섭 등 당대를 풍미하던 예술가들이 단골로 드나들며 예술과 인생을 논하던 행랑채와도 같은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며칠 전, 이 대목에서 최불암에게 전화를 걸어 ‘은성 주점’ 사진이 있으면 한 장 보내달라고 부탁했더니, 뜻밖에도 50여년 전의 기억을 되살려 손수 그린 그림을 메시지로 보내주는 것이었다.
다음은 그와 내가 주고받은 통화 내용이다.
“그림 받았어?”

 

은성 주점
그림: 최불암, 2018. 8. 24.

 

 

“응, 그래. 방금 열어봤어. 근데 솜씨가 보통이 아니더군.”
“기억을 살려 대충 끌쩍거려 봤어. 오른편에는 ‘구만리 주점’이 있었구, 왼쪽엔 복덕방이 있었지. 가게 앞에 있는 입간판도그 복덕방 거야” “내부 면적은 몇 평쯤 됐지?”
“일제 때 지은 목조건물이었는데 말야, 대략 한 스무 평쯤 됐을 거 같애.”
“근데 왜 친구들을 한 번도 데리고 가지 않았지?”
“그야 데리고 갈 수가 없었지, 실은 나도 그 안에는 잘 들어가질 않았어. ‘은성’이라는 간판 앞에 전신주가 한 개 서 있지, 거기 기대어 기다리고 있으면 어머니가 나와서 시계를 한 개씩 주곤 하셨어.”
“시계를 주다니?”
“그 왜, 손님들이 술값 대신에 접혀놓고 안 찾아가는 손목시계 있잖아. 시효가 지나도록 찾아가지 않는 시계들이 항시 수두룩했거든.”
“하하하하……, 그러니까 손님들이 잡혀놓고 안 찾아가는 시계를 팔아갖고 우리가 술을 마셨단 말이지?”
“바로 그거였어. 어머니는 내게 한 번도 현찰을 주신 적이 없었어. 값나가는 시계는 술값을 제하고도 거스름돈을 받았을 정도였으니까.”
“얘기를 나누다 보니까 「그루미 썬데이 Gloomy Sunday」를 즐겨 부르던 최 형 모습이 눈에 선하군.”
“히야, 김 형이 그걸 다 기억하고 있군그래. 내 십팔번이었지.”
“마지막 소절인 ‘그루미 썬데이’를 부를 때 말야, 지그시 눈을 감고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쳐내어 허공에 뿌리는 연기는 그야 말로 일품이었지. 그동안 최 형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수없이 봐왔지만 그보다 더 멋진 장면은 없었어. 가사와 곡은 다 잊었지만 그 장면만은 지금도 눈에 선해.”
“푸하하하하……, 그거 기억하는 사람 거의 없어.”
「그루미 썬데이」 가사를 알려달라고 하자 이내 문자가 들어 왔다.

그대가 있을 땐 즐겁던 이 밤/ 그대가 간 후엔 쓸쓸한 이 밤/ 죽음이 인생의 끝이라면/ 시련은 청춘의 마지막 날인가/ 그대를 따라서 행복도 다 가고/ 얽매인 설움에 구름 낀 이 밤/ 그루미 썬데이

 

이 에피소드에서는 명동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은성주점’에 얽힌 이야기를 볼 수 있는데요? '은성주점'은 어떤 곳이었을까요?

 

당시 명동의 명성을 알려주는 명동성당 근처의 안내물

 

은성주점

1953년 탤런트 최불암의 모친 이명숙이 이은성이란 이름으로 연 주점.
이곳은 1973년 개발붐과 땅값의 상승으로 밀려나 문을 닫기 전까지 소설가이자 언론인인 이봉구, 시인 김수영, 작곡가 윤용하, 시인 박인환 등 여러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던 곳이다. 시인 김수영은 은성주점에서 시상을 가다듬었고, 작곡가 윤용하는 <보리밭>의 악상을 다듬었다. 30세 나이로 요절한 시인 박인환이 은성주점에서 즉석에서 지은 시 <세월이 가면>은 작곡가 이진섭이 곡을 붙혀서 노래로 만들어졌는데, 명동의 노래라고 일컬어졌다.

출처: 문화예술인이 찾았던 은성주점 터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서울 문화재 기념표석들의 스토리텔링 개발), 2010., 한국콘텐츠진흥원)

 


이렇게 때로는 정 많았던 그 시절에 대한 따스한 추억을, 때로는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외침을 담은 김춘복 선생님의 글을 더 보고 싶으시다면, 서점에서 『그날이 올 때까지』와 만나요 :)

 

그날이 올 때까지 - 10점
김춘복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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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실버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