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와 각종 OTT프로그램이 판을 치는 이 시대, 덕분에 밥친구가 늘었다. 수많은 밥친구를 만났다 헤어졌지만 여전히 내 곁에서 롱런중인 것은 '문명특급'이다. 문명특급의 컨텐츠는 다양하지만 그중 인터뷰를 가장 좋아한다. 주로 연예인을 인터뷰하는데, 브라운관에 비춰지는 모습으로는 알기 힘든 속내나 무대 아래의 그 사람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끌어내는 MC 재재에게 감탄하곤 했다.
이 책의 제목 '인터뷰 글쓰기 잘하는 법'을 보고 책을 집어 든 것도 재재를 떠올려서다. 내가 누군가를 인터뷰할 일은 없을 듯하지만 재재의 비결을 이 책으로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는 우리 주위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방법을 담은 인터뷰 글쓰기 책이다. 인터뷰 글쓰기 책이라지만 인터뷰 사전 준비물, 반드시 해야 할 기본적인 일들까지 어떻게 인터뷰를 해야 하는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한 책의 저자 은정아 작가님이 직접 하셨던 인터뷰 일화들을 듣다 보면, 유익함뿐 아니라 감동도 느낄 수 있다.
책을 읽을 수록 인터뷰를 잘하는 법은 곧 대화를 잘하는 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또는 사람을 잘 대하는 방법과 맞닿아 있는 듯했다.
할머니는 나의 할머니이기 이전에, 완전히 독립된 한 개인이다. 개인은 여러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황과 역할과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진다. 우리는 이것을 잊기 쉽다. 태어날 때부터 '할머니'라는 한 면만을 봐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나 당연하게도 '할머니'라는 타이틀은 한 사람이 가진 여러 역할 중 하나일 뿐이다. /24쪽
우리는 자주 누군가의 일부만으로 그사람을 정의하려고 한다. 내가 본 면만으로 그사람은 이런 사람일 거라고 지레짐작한다. 하지만 인터뷰를 위해서든, 일상을 위해서든 상대를 어느 특정 면으로 국한시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우리 모두 하나 이상의 역할을 짊어지고 있다. 한 역할로 얽매이기엔 우리의 삶은 너무 풍부하다. 일부를 가지고 그 사람의 전부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한 착각이다.
이것을 잊지 않고 사람을 대할 때 더 좋은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내가 모르는 그 사람의 일부가 궁금해질 것이고, 더 넓은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스무살 때 운전을 처음 배우신 거예요?'라고 물으면 "예, 아니요"로 대답하기가 싶다. 그러나 '스무살 때 어떻게 운전을 배우게 되신 거예요?'라고 물으면 운전을 배우게 된 구체적 정황을 들을 수 있다. /56쪽
사람을 알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궁금한 게 많다. 묻고 싶은 건 산더미인데 대화가 맘같이 안 풀릴 때가 많다. 꼬치꼬치 캐묻는 것처럼 보일까 말을 삼가기도 한다. 그런 나에게 책이 알려준 이 팁은 아주 유용했다. 만약 내가 질문했더라면 이랬지 않았을까?
"운전은 언제 처음 배우셨어요?"
"스무살이요"
"아~ 학원 다니셨어요?"
"네"
"저둔데, 그럼···"
꼬치꼬치 캐묻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어보면서도 아 이래도 되나 싶어 말을 흐릴 것 같다. 조금만 질문을 달리하면 명쾌하게 해결할 수 있다니! 앞으로는 최대의 효율을 끌어내는 질문을 할 수 있겠다.
같은 맥락으로 이것도 굉장히 유용했다.
누군가 나의 여행에 대해서 인터뷰한다면, 나는 나침반이나 담요 같은 물건, 또는 그런 물건이 담긴 사진을 꺼내놓고 이야기하고 싶다. /118쪽
많이 긴장한 인터뷰이를 만날 경우 인터뷰이의 물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사진 등 기억이 담기거나 애착을 가진 물건에 대해 물으면 다들 자연스레 이야기를 풀어냈다고 한다.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할 때, 어색한 사이에서 대화를 할 때도 같은 방법이 도움이 될 테다. 특별한 기억이 담긴 물건은 모두 하나쯤 갖고 있으니 그걸 주제로 대화를 시작해보면 되겠다. 당장 지니고 있지 않아도 핸드폰에 담긴 사진을 활용하면 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재재의 비결은 인터뷰이를 단순히 직업으로 규정하지 않은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 재재도 아이스브레이킹으로 인터뷰이의 사진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이것 역시 책에 담긴 내용과 같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대화를 잘 하는 방법에도 통용된다. 인터뷰도 역시 대화의 일종이다.
인터뷰가 재밌는 이유는 인터뷰가 '사람이라는 책을 정독하는 과정'(10쪽) 이기 때문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을 더 잘 알기위해 나도 주위 사람을 인터뷰해볼까 생각하게 되었다. 정식적으로 인터뷰라고 이름 짓지 않아도, 은정아 작가님처럼 잘 듣고 잘 궁금해 하면 그것도 일종의 인터뷰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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