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문집 김흥식 대표가 만드는 잡지 「산책」 2호가 왔다. 이 잡지를 받아든, 내가 사랑하는 엘편집자의 첫마디는 '어, 2호 안 나올 줄 알았는데.' 였는데, 우리 중 여기에 굳이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없었다.
숫자를 보면 알겠지만 빨간 책이 2호다. 디자인이 참 예쁘다.
우리가 이 잡지를 정기구독하게 된 데는 별것 아닌 사연이 존재한다. (「산책」과 함께 출판사를 '산책'해볼까요? 참고) 포털에 산지니를 검색해보시던 대표님께서 '산지니가 10대 출판사에 선정되었다' 는 소식을 알려주시자 우리는 잡지를 보기도 전에 블로그에 예약되어 있던 수많은 포스팅을 제치고 산책에 대한 글을 쓰기까지 하며 좋아했다. 그리고 정기구독도 그 자리에서 무려 열 권씩이나 했다. 우리는 인턴을 다 합해도 열 명이 안 되는데 지금 사무실 안에 남아 있는 1호가 한 권밖에 없는 걸 보면, 모르긴 몰라도 엄청 신이 나서 출판사에 누가 올 때마다 한 권씩 들려주며 자랑을 하지 않았나 싶다.
엘편집자가 이메일로 정중하게 정기구독을 신청하자 김 대표는(그런데 왜 서해문집 대표는 대표고 산지니 대표님은 대표님인지 깊게 생각하기 있기? 없기?) 엘편집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선정된 10대 출판사 중 정기구독을 신청한 출판사는 산지니밖에 없다며 몹시 웃었다는데 그 웃음이 마치 놀리는 것처럼 호탕해서, 우리는 그래서 구독을 하라는 건지 하지 말라는 건지 잠깐 고민스러웠다.
그리고 잡지가 도착했다. 기사를 본 나는...
대뜸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인지, 1등이 아니라 9등 줘서인지, 그냥 기적이라고 하면 될 걸 굳이 기적에 가깝다고 해서인지, 아무튼 내 기분은 몹시 찌지구지했다. 말이 나온 김에 잠깐 딴 길로 새보자면, 산지니는 도서출판 산지니도, 산지니 도서출판도, 산지니 출판사도 아닌 그냥 산지니다. 우리가 출판사라는 걸 전혀 모르는 데서 소개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산지니 출판사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냥 산지니라고 한다.
이 기분으로, 2호가 나오면 보란 듯이 까주리라며 칼을 갈았는데 삐딱하게 펴본 2호는 더 재미있고 더 예쁘더라.
제목으로 일단 낚시를 하고 '그래서 우리 책값좀 올릴게여 뿌잉뿌잉'을 상상하셨다면 걱정 마시라. 굴비 발라먹듯 책값의 요모조모를 발라준다.
'나 같은 놈 사랑하지 마 다쳐'라고 말하는 남자와 굳이 사랑에 빠지는 맥락과 비슷한 문구다. 괜찮다는데도 다 읽게 된다.
원고를 보내준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해볼 만한 경쟁률이다. 산책을 통한 산지니 책 홍보에 성공할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업무수행의욕이 지극히 떨어지는 오후 네 시에 봐서 그런가, 이번 호도 재미있었다. 그리하여 나의 '우리 함께 산책까자!' 대작전은 언제 발간될지 모를 3호가 나올 때로 연기되었다. 3호가 나와서 내가 드디어 광란의 포스팅을 쓸 수 있게 신경 좀 써주시라. 도와달라는 말은 않겠다. 나는 서해문집 직원이 아닐 뿐더러 산책은 당신이 작가든, 독자든, 편집자든, 가격 면에서든, 내용 면에서든, 보는 사람이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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