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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일기

진정한 바람, 진실한 목적을 향해, 가네코 후미코의 옥중수기 <나는 나> : 조정민 선생님 인터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8. 2.

 햇빛이 내리쬐는 곳 어디든 분홍빛 삼겹살을 올리면

금방 노릇하게 구워질 것만 같은 어느날,

 가네코 후미코 옥중수기 <나는 나>의 역자

조정민 선생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저는 처음 이 책을 받아들고 앉아서 하루도 안 되어 다 읽고 말았습니다. 읽기 시작하면서 내용은 물론, 첨삭에 관한 희망, 책의 머리말과 맺음말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그녀의 옥중수기를 받아 든 구리하라 가즈오가 그녀의 부탁을 듣고 책으로 출간한 책을 다시 번역하신 건가요? 그렇다면 그 번역 과정에서 힘드시거나 어려운 점은 없으셨는지요?

    네, 맞아요. 번역 당시 어려웠던 점은 가네코 후미코가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정규 수업을 제대로 수료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장이 짧은 것으로 이루어진 게 많았어요. 또 옥중에서 써내려 가다 보니까 좋지 않은 환경이었고 또 쓰는 당시 감정적으로 격양되어 써내려갔던 부분이 있어서 그 글을 다듬고 옮기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또 그녀가 글을 쓰다가 생각나는 부분들을 줄을 쳐서 옆에도 써놓기도 해서 시기별로 배열하는 부분에도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가네코 후미코가 처음 수기를 쓰게 된 계기를 머리말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도쿄지방재판소 예심정에 불려 나가 조사를 받던 중 그녀의 호적에 관련된 질문을 받고, 쓰게 되었는데요. 회상하면 써내려가서 그런지 글을 쓰고 있던 그녀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상황에 대해 지금의 생각을 써놓은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 부분들에 대해서 공감되는 부분들이 꽤 있었습니다. 특히 그 부분이요. 어른들은 아이 옷이 지저분해지는 것 때문에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놓는 것을 제재한다 등등.

왜 그렇게 무리하게 아이를 나무라나요. 당신은 대체 아이가 중요합니까, 옷이 중요합니까.’ (127)

선생님께서 특별히 공감 가는 부분이 있었다면, 어떤 부분들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도 번역하면서 많은 부분에서 공감을 했어요. 아까 지윤 씨가 말했던 부분도 그렇고. 특별히 공감 가는 부분은 이 부분이었어요.

 

  아이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은 오직 자신에게만 지게 하라. 자신의 행위를 남에게 맹세하게 하지 말라. 그것은 아이에게 책임감을 박탈하는 일이다. 비굴하게 만드는 일이다. 마음이나 행동에 겉과 속이 다름을 가르치는 일이다. 누구든 자신의 행위에 대해 남과 약속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행위의 주체를 감시인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자신의 행위의 주체가 온전히 자기 자신임을 자각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사람은 누구에게든 거짓되지 않고,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진실로 확고하고 자율적인 책임 있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106)

   

 역자의 후기에 보면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저의 관심은 이러한 지점에서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군국주의적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허상과 부조리를 그녀는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녀의 수기를 처음 접하게 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네, 책 뒤에 보면 역자 후기에도 나와 있듯이 가네코 후미코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제가 일본에서 여성학에 관련된 수업을 준비하는 와중에 가노 마사나오와 호리바 기요코가 쓴할머니·어머니·딸의 시대는 책을 읽게 되었을 때입니다. 거기서 가네코 후미코가 체험의 문학에 분류되어 짧게 소개된 것을 보고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일생에서 받아온 폭력 등에 대해서 한걸음 물러나 바라보는 듯한 부분이 인상 깊었거든요.

  예를 들면, 재미있었던 부분이 그녀가 도쿄에 가서 신문을 팔다가 왜 이토에 의해서 기독교에 빠지게 되잖아요. 그때 잠시 열렬히 기도하며 신자로 지냈었죠. 그러다 여전히 구원받지 못하고 사흘을 굶고, 방세를 낼 수가 없어 다른 집 식모살이를 하기 위해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면서 생각합니다. 종교는 단지 사람의 마음을 속이는 마취제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어쩌면 자신이 믿고 의지하고 싶어서 빠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또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한단 말이죠.

  또 그녀가 어릴 적 엄마가 일 안 하고 빈둥대는 고바야시를 만나 그의 고향으로 같이 갔을 때 마을풍경을 묘사하잖아요. 마을 사람들이 변소에서 종이 대신 나뭇가지를 이용하는 모습을 보고 도시에서 자란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든지. 또 농사를 짓고 있음에도 가난한 생활을 면치 못하는 마을에 도시에서 장사꾼이 물건을 가져오면 숯 가마니를 메고 가서 머리핀 등과 바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은 도시에 태어난 나는 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럴 숯가마니 조차 없다고 말한다든지. 그런 부분들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해낸 부분들이 오히려 다 이해할 수 있다.’라는 것보다 더 사실적이죠. 

 

마치 남의 아픔을 백 프로 이해한다는 듯 착각을 하는 것처럼요? 

  맞아요. 가네코 후미코는 그녀가 경험한 것을 통해 억압과 폭력의 아픔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었지만 박열과 프러포즈를 할 때도 말했듯이 나는 조선인이 아니기에 일본인의 탄압을 받은 적이 없고 따라서 무장투쟁의 노선을 따를 생각이 없다고 말하고 있지요. 무리하지 않고 그렇게 자신만의 시선으로 한 발짝 떨어져서 그녀가 살아간 그 당시 상황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점이 그녀의 옥중수기가 가진 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 가지 경계해야 할 점은 그녀가, 예컨대, 일제강점기 때임에도 우리 고유의 미술을 사랑하고 아껴준 일본인을 시대를 초월하는 인물이라고  여기는 것과 같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그녀가 독립운동가 박열의 아내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가 일본인이지만 조선에서도 생활했고, 또 그곳에 살면서 온갖 폭력을 당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폭력이 어떤지 알고 그 가운데서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눈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선인들의 아픔을 백 프로 이해하고 아파했다는 생각은 경계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이런 일을 입 밖에 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지금, 숨겨둘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나의 생활과 사상, 성격에 영향을 끼친 모든 것을, 지금 백일하에 공개해야 한다. 그것은 법관에게 나를 알리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그런 이유보다는 더 큰 진리를 천명하기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작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02~3)

여기서 말하는 그녀의 더 큰 진리가 무엇일까요? 선생님께서 앞서 말씀하신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군국주의적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허상과 부조리를 표현하는 것일까요? 

  네, 첫째로는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군국주의적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허상과 부조리를 표현하는 것이 되겠고, 둘째로는 가네코 후미코가 수기를 쓰던 당시 며칠 밤을 새워가면서 글을 썼다고 하는데, 원제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나>처럼 지금의 가네코 후미코의 생활과 사상, 성격에 영향을 끼친 모든 그 무엇에 대해 써 내려가면서 그녀 또한 셀프 힐링 같이 자신을 되짚으면서 위로를 받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게 또 역설적이게도 그녀의 힘든 시절을 다시 떠올리는 작업이 되기도 했지만요.

  또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그녀가 박열선생과 함께 어떻게 운동을 하고, 감옥생활을 어떻게 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아요. 또 그렇게 쓸 수 없는 여건이었기와 검열이 심했기 때문에 (중간에 책에도 삭제된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녀가 살아온 지난 생활에 대해서 회상하는 부분에서 또 그 속에 녹아든 가부장적인 가정 내 모습, 천황제 이데올로기가 정확하게 어떤 부분인지에 대해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녹아들어 있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일상을 이야기하면서 배어 나오고 있기 때문에 또 많은 사람이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부분도 있었겠고, 또 어린 시절에는 삼키면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책으로 써내면서 교육자나, 공무원, 부모가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어요.

 

 

책에서 차지하는 분량이 조선에서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뒤에 나오는 <4부 독립> 부분의 이야기 또한 기억에 남습니다. 가네코 후미코가 고학생으로서의 어려운 생활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나의 진실된 바람! 진정한 목적!’을 찾아 고생을 자처하고 스스로 도쿄로 떠난 후미코가 멋있고 부럽게 느껴졌습니다. 선생님께서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학시절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음 우선 가네코 후미코가 워낙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외국을 꼭 간다기보다 같은 한국인 서울을 가도 낯선 거리에 낯선 사람들 속에서 외로움이나 힘듦에 대해서 느끼지 않나 싶어요.

그렇게 보면 가네코 후미코는 처음 도쿄에 갈 때도 큰아버지께 연락도 하지 않고 떠나잖아요. 자신의 의지에 따라 끊임없이 떠나는 그녀를 보면서 참 추진력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끝으로 선생님께서 <나는 나>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면 어떤 부분인지, 왜 그 부분이 선생님께 가장 기억에 남는 지 궁금합니다.

    어떤 특정한 부분을 콕 찍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기보다는, 저도 제3부 독립 부분이 공감이 많이 갔고, 가네코 후미코가 도쿄로 떠나기에 앞서 각오는 다지는 부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런 탈선적인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도 나는 나의 진실된 바람과 목적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나의 진실된 바람! 진정한 목적!

  그것은 다양한 책을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습득하여 나 자신의 생명을 펼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217)

 

 

 [코너 속의 코너, 인터뷰 속 인터뷰]

가네코 후미코는 왜 처음 머리말에 수기를 쓰는 이유에 대해서 친구들이 나를 좀 더 이해해주리라 믿는다고 했을까요? 

  그건 아마도 천황을 음해하려는 계획을 세우는 단계에서 관동지진 이후 가네코 후미코가 감옥에 수용되고 그 이후에 폭탄을 관련에 책임을 따지는 단계에서 서로 오해가 생기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또 후미코가 박열선생과 함께 흑도회나 불령사 등을 결성해서 기관지를 만드는데, 그것이 꾸준히 발행되고 모임을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12호를 발행하고 해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 당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들이 그렇게 안정되어있다고는 볼 수 없었지 않았나 추측할 수 있습니다.

 

책 표지에 있는 꽃은 어떤 꽃인가요? 

이게 과꽃이에요. 처음에 가즈하라가 쓴 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녀의 시신이 묻힌 곳에 과꽃이 놓여있다고 되어있어요.

그 꽃은 누가 가져다가 놓았을까요?

그러게요.^^ 거기서 착안해서 디자이너 선생님께서 표지를 만들어 주셨어요. 딱 한 송이에요. 외로웠던 그녀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죠?

 , 다른 색도 아니고 새빨간 과꽃이네요. 정열적인 가네코 후미코의 모습 같아요. 한편으로는 꽃송이만 남겨져 있어서 외로워 보이기도 합니다. (지금 다시 살펴보니 검붉은 것이 핏빛으로도 느껴지기도 합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녹음기도 끄고 선생님과 재미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소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매우 즐겁고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처음 카페에 도착했을 때, 생각보다 카페에 사람들이 많아서 어떤 자리에 앉아야 할 지 고민도 되고, 또 어떻게 인터뷰해야 할 지 떨리기도 하고, 또 준비가 부족한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을 열심히 검색해봤지만, 얼굴은 뵙지 못해서 어떤 분이실까 무척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카페에 앉아서 기다리자니 마치 소개팅에 나온 설렘이 느껴졌습니다. 괜히 거울을 보기도 하고요. 예쁘게 책도 놓고 연필도 가지런히 놓고 준비한 인터뷰 질문지를 읽어보기도 하는 등 혼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카페의 특성상 큰 유리창이 있고 그 옆에 유리 통로를 지나 들어올 수 있게 되었는데, 세련된 원피스를 입은 여자 분이 문을 열고 통로를 지나가시는 게 아니겠어요. 그때 또 다르게 혼자 카페에 앉아있던 여자 분이 일어나기에, , 일행분이시구나 생각했지요. 또 두 근 반 세 근 반 앉아서 선생님이 오셨는데 혹시 내가 못 알아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괜히 주위를 둘러보기도 했답니다.

  정지윤 선생님?

  고개를 들어보니 아까 유리 통로를 지나시던 세련된 원피스를 입으신 분이 서 계시는 게 아니겠어요. 깜짝 놀라, 네네 했지요. 선생님은 세련된 원피스와 잘 어울리는 예쁜 섀도를 바른 시원한 눈매를 소유한 미인이셨습니다. 우와! 미인이세요!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답니다. 선생님은 사회생활 잘하시겠군요! 라고 말씀하시며 웃어주셨어요. 어쩜 저는 쑥스러운 줄도 모르고 말이죠.

  조용한 자리를 찾아 자리를 옮겼지만, 떠오르는 케이 팝을 막을 순 없었답니다. 비교적 안락한 동그란 테이블에 오손도손(?) 앉아서 인터뷰가 시작되었지요. 하루가 지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답니다. 물론 질문지를 버벅거리며 읽고, 인터뷰 진행(?)을 자연스럽지 못하게 질문지를 꺼내 대놓고 읽기는 했지만.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정말 즐겁고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이제는 일어나야 할 시간, 선생님은 일부러 인터뷰가 끝나고도 미숙한 인턴의 횡설수설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또 내려가는 길까지 데려가 주셨답니다. (으흥 선생님은 볼일이 있으셔서 가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리고 씩씩하게 버스를 타러 내려가는 데 어찌나 신이 나던지요. 콧노래를 부르며 반쯤은 흥에 겨워 춤을 추며 걸어갔답니다. 그리고 그 흥을 잠재우지 못하고 할머니도 뵙고, 또 친구를 만나 영화도 한 편 보았답니다. 한편으로는 집에 가서 녹음파일을 들으면서 인터뷰 정리를 빨리해야 할 텐데 생각도 했지요.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보는 데 왠지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끝나고 빨리 집에 가려고 서두른다는 것이 그만 정류장을 지나쳤지 뭐에요. 그 바람에 한 정거장을 더 걷게 되었지요. 그 사이 집으로 가는 버스를 놓치고 한참을 기다려 뺑글뺑글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서 집 근처에 내렸습니다. 빨리 가고 싶어 지름길인 어둑한 골목을 걸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어요. 녹음파일이 재생이 잘 될까? 혹시나 노랫소리가 너무 커서 선생님 목소리가 안 들리면? 혹시 녹음기 소리를 너무 작게 해서 녹음이 안 되었으면? 아냐 그건 소리를 크게 하면 될 거야. 아니면 인터뷰를 하다가 내 팔에 녹음기 스피커가 가려지지는 않았을까? 갑자기 온갖 걱정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집에 도착했고 바로 녹음 파일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어쩐지 확인하기가 두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씻고 들어봐야지 하다가, 다 씻고 나와 음성 파일을 확인하려고 이어폰을 찾았습니다. 이럴 수가. 이어폰을 집에 두고 온 줄 알았는데 가방 안에 있었습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진작 확인할 것을, 하는 생각도 잠시 마른 침을 삼키며 음악 파일에 들어갔는데 영어 듣기 파일밖에 없는 게 아니겠어요. , 마이 갓! 왜 파일이 없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음악 파일이 아니라 녹음테마에 들어가서 녹음된 파일을 찾아야 했던 것이었죠.

  침착하게 녹음파일에 들어갔습니다. 001002 두 개의 파일이 있었습니다. 001 파일을 들어보니 인터뷰 가기 전 사무실에서 마이크 테스트를 해보려고 녹음 버튼을 눌렀지만, 차마 쑥스러운 마음에 괜히 기침만 했던 소리가 담겨있었습니다. 002 파일은 아까 인터뷰를 녹음한 파일이었습니다. 다행이다. 아까 올라오면서 한 생각이 괜한 걱정이었다는 안도감에 재생버튼을 눌렀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정지윤 선생님 맞죠

  그리고 저의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소리가 뚝 끊어지는 게 아니겠어요. 뭐지? 다시 재생버튼을 눌렀습니다. 아까와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오더니 또 재생이 끝나는 게 아니겠어요? 총 녹음된 시간은 11초였습니다. 뭐지? 제가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 정지윤 선생님이세요? 라고 말씀하신 부분이 녹음된 걸까요? 아니, 그때는 녹음기를 켜지도 않은 걸요. 그럼 선생님께 양해를 구한 뒤, 녹음기를 켜고 인터뷰를 시작한 그 부분이었을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니었어요. 그 부분은 인터뷰를 다 마치고 제가 선생님께 사인 해달라고 책을 들이밀었던 그때였어요. 아니 왜? 그때는 녹음기의 전원을 끈 상태였던 걸요. 분명 싸인 받기 전에 총 51분이 녹음된 걸 저장하고 재생이 되는지 확인도 한걸요.

  깜깜한 밤, 선풍기가 바로 코앞에서 돌아가고 있는데도 후덥지근했던 공기가 별안간 싸늘하게 느껴지더니, 천장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이 어지러웠습니다.

 

나는 나 - 10점
가네코 후미코 지음, 조정민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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