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언제부터 삼겹살을 즐겨 먹었는지 아시오? "
(본문 84쪽)
출처 : 사진 속 참조
첫 일기를 이런 거대한 음식 사진과 함께 쓰게 된 막내인턴 문소영입니다 :-)
지윤언니의 활기찬 글에 비해 톤 다운되는 글 같아 몇 번을 다시 써보려 했지만,
글의 분위기라는 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습니다. T_T
정형남 「삼겹살」 |
삼겹살을 파는 가게에 가면 정말 많고도 다양한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근엄한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 기대를 짊어진 누나와 까불이 남동생. 쌓이는 업무에 슬퍼 소주병을 드는 샐러리맨이 있는가 하면, 오랜만에 만나 소주병을 드는 사람들까지. 이렇듯 삼겹살과 소주는 서민들의 삶과 그들의 마음을 함께 공유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 「삼겹살」 또한 누군가의 삶과 마음을 담아내고 있었다.
남위원은 소위 '배운' 사람이고, 그러한 교육덕분에 마을의 이모저모를 살피는 직책도 여러개 맡아 왔다. 글자 꽤나 알고 세상의 이론을 어느정도 깨우친 사람이라면 보통 도시에서 자신의 지식을 공유하며 뽐내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을까? 그러나 남위원은 오히려 도시에게서 염증을 느꼈다. 남위원이 고단함을 느끼게 된 자세한 감정의 내막을 나는 알지 못하지만, 아마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가끔 시내의 한 카페에 앉아 사람구경을 종종 하는데 창문 밖의 사람들은 나와 같으면서도 달랐다. 분명 그들도 나와 같은 것을 보고 느끼고 생활할텐데 조금 떨어져서 본 그들의 모습은 하나씩의 '레고들'같았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 경로와 일정이 정해지고 우리는 거기에 따르기만 하는 모습이 참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그것은 아마 나도 저들과 반은 같지만 반은 달라서가 아닐까? 그 말인 즉슨, 나는 저렇게 짜여진 듯한 구조에서 생활하는 사람이자 그 구조에 동의하지는 못하는 그런 '어정쩡한 사람'이 된 것이다. 더군다가 타지 출신이라는 설정은 남위원에게 그러한 경계를 더 극적으로 느끼게 해주었을 것이다. 타라 브랙의 「받아들임」이란 책의 "우리는 어떠한 그룹에 완전히 속해 있다고 느끼지 못할 때 무기력을 느끼고 그것은 자괴감으로 번져간다. " 라는 구절이 불현듯 떠오른다. (정확한 문장은 아니다. 기억나는 대로 쓴 것이라 본문과 단어나 구조가 조금 다르지만, 대충 의미는 맞을 것이다.) 나도, 남위원도, 우리 모두 그런 무기력때문에 염증을 느낀 것이 아닐까?
또한 부산생활에서 남위원의 곁을 지켜준 벗들을 하나같이 성과 직업으로만 부른 점도 새로웠다. '안락한 동네'와 이선생, 안교장, 강시인, 풀피리 시인……. 등장인물들의 모두를 이렇게 표현한 것이 아니라, 이들만 특별하게 명칭을 달리한 데에도 이유가 있을 거라 느꼈다. 그리고 찾아본 책 뒷편 구모룡선생님의 해설 속에는 이들도 남위원과 같은 '경계인'들이라는 대목이 있었다.(p.246) 이들의 우정과 낭만이야 말로 사회를 이루고 있는 무수한 경계인들의 모습을 대변해주는 것이다.
나는 이 도시사회에서 경계인이 아닌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자기 자신의 위치에 대하여 늘 불안해하고 있으며, 구조와 제도의 안락함을 원하면서도 염증나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불안을 잠식시켜 줄 '고향'이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그 고향이 연인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퇴근 후 마시는 술 한 잔일 것이다. 남위원처럼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가장 소소하고도 값진 축복일 것이다.
책을 한장한장 넘길 때마다 드는 생각은, 내가 마치 주인공인 남위원과 함께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았다. 그만큼 그의 이야기에는 충분히 이해되고 공감되는 부분도 있었을 뿐더러 간혹 내가 공유하기엔 어렵고 난해한 감정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렴 어떨까. 나도 아마 30년쯤 더 살면 누군가에게 나의 그 난해한 감정을 이야기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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