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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 책/꿈꾸는보라매

흘라피치, 미스터 김을 만나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5. 14.

안녕하세요, 전복라면 편집자입니다.

『꼬마 구두장이 흘라피치』 번역자 장정렬 선생님께서 한국 에스페란토협회 기관지 5월호에 실릴 흘라피치 서평을 보내주셨습니다. (제목은 편집자가 붙임)

장정렬 선생님과 서평을 써주신 김형근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사단법인 한국 에스페란토협회: http://www.esperanto.or.kr/

한국 에스페란토협회 기관지: http://mobigen.com/~hiongun/homepage/LA/

 

 

 

꼬마 수퍼맨 흘라피치

 

김형근(Nomota)  / 편집부장

 

더 이상 동화를 읽지 않게 된 것이 이미 오래였습니다. 중년이 되어버린 나이에 동화를 찾을 일도 없거니와 동화는 유치하기만 한 것이라는 선입견도 있고 해서 동화를 좀처럼 볼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두 가지 계기가 되어 동화를 다시금 가끔씩 읽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외국어 공부가 하나고, 소설쓰기가 그 두 번째입니다.
외국어를 공부할 때 그 언어의 진정한 맛을 체득하려면 그 언어로 된 동화책을 많이 읽으면 된다고 어딘가에 쓰여 있어서, 영어로 된 동화도 읽고 에스페란토로 된 동화도 읽어 보려고 애를 쓰고 있는 중입니다.
맞습니다. 동화는 활발하게 말을 습득해가는 어린이들을 위한 것이므로, 매우 풍부한 표현을 담고 있어서, 외국어 공부할 때 성인들을 위한 글보다는 훨씬 생생하고 살아 있는 언어를 엿볼 수가 있습니다.
영어도 그렇고 에스페란토도 그렇고, 외국어를 조금이라도 “체득”하고자 할 때는, 동화를 읽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나만의 소설을 써 보겠다는 중년 아저씨의 소박한 꿈을 이루려면, 남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지 궁금한 눈으로 보게 되는데,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심오한 소설 보다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은 소설, 다시 말해 동화가 스토리의 구조를 보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동화는 중년의 작가 지망생에게 좋은 학습의 장입니다.
이번에 장정렬 선생의 번역으로 『꼬마 구두장이 흘라피치』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최근에 동화에 관심을 갖게 된 중년의 눈에는 관심과 호기심이 가득 채워졌습니다.
그래서 전해 받은 동화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 갔습니다.
이 동화를 10살 난 내 아들이 읽으면,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한 생각이 드는 대목이 많이 나왔습니다. 중년 아저씨의 마음 속에는 더 이상 동화를 감상할 여지가 별로 없어서, 10살난 아들의 눈을 빌어서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흘라피치는 어느 날 갑자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집을 박차고 뛰어나온 어린 구두장이지만, 옳고 그름을 분명히 구분하며 정의감도 뛰어나고 목표의식도 뚜렷하며 무엇보다도 희생정신을 갖춘 수퍼맨이었습니다.
굳세어라, 흘라피치! 꼭 지구를 살리는 임무를 수행해야만 수퍼맨은 아니지 않습니까? 불행을 보고 지나치지 않고, 불의를 보고 맞서 싸우고, 굳은 의지로 헤쳐나가는 흘라피치의 모습은 중년 아저씨가 잊고 살아왔던 그 아득한 과거에서 갑자기 살아나온 수퍼맨의 모습이었습니다.
10살 된 아들의 눈으로 보는 흘라피치는 그러했습니다. 아들도 이 동화를 보고, 그렇게 사는 법을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년아저씨 스스로도 그렇게 야무지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가 지망생인 중년 아저씨는 그런 정의롭고 굳센 흘라피치를 보는 것과 동시에 과연 이 이야기가 어떤 결말로 이어질 지가 무척이나 궁금했습니다. 구상중인 소설이 어떻게 끝나야 하는 지를 도무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서, 과연 100년 전 크로아티아의 작가는 과연 이 이야기를 어떻게 결말지을 지가 무척이나 궁금했던 것입니다.
아하... 권선징악과 해피엔딩, 만고의 진리입니다. 매우 간단한 이치이기도 합니다. 동화속의 흘라피치는 그렇게 잘 살게 되었더랬습니다.
언젠가 쓰게 될 중년 아저씨의 소설도 그렇게 끝내리라 다짐해 봅니다.
현학적인 은유나 상징은 별로 사용하지 않는 동화책은 세상을 곡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게 해 주는가 봅니다.
매우 직접적이고 전지적 시점에서 어린이의 마음과 눈으로 그려낸 세상은 색깔이 분명하고, 분위기와 온도가 극명하게 대조되는 세상입니다. 온통 회색 투성이거나, 색깔이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도통 무슨 색인지 분간할 수 없는 그런 세계에 살고 있는 중년 아저씨는, 아주 오래전에 그런 세상을 살았었다는 기억을 떠올리는데 매우 애를 먹습니다. 10살 아들이 사는 그 총 천연색 세상은 흐릿하고 애매하게 분간 안 되는 그 세상과 별개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장정렬 선생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정의감과 용기를 잊어버린 지 오래된 중년에게 가장 순수한 형태의 용기와 의지가 어떤 것인지를 볼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100년간 세계에서 사랑받는 동화가 가지는 힘은 그런 것인가 봅니다. 원래의 크로아티아어로 쓰여진 동화가 에스페란토를 거쳐서 한국어로 옮겨지는 과정에서도 그 순수한 용기와 의지는 사라지지 않고 잘 전달되었습니다.
흘라피치는 놀랍게도 그 어린 나이에, 결연한 의지, 과감한 행동, 세심한 배려 등 수퍼맨이 가져야할 많은 기질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반성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어.”
흘라피치는 다른 사람을 너그럽게 볼 수 있는 자비의 마음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돼! 가자!”
흘라피치가 어두운 숲을 헤치며 나아가며 하는 말을 들을 때는, 지금 내가 처한 입장이 갑자기 오버랩 되며 느껴지는 바람에, 갑자기 용기가 불끈 솟아나기도 했습니다. 중년 아저씨의 마음에도 용기라는 것을 일으킬 수가 있나 봅니다.
중년 아저씨에게 이런 용기를 줄 수 있으면, 아마도 이 동화는 더 많은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초등 3학년 수준의 아담한 크기로 만든 책 크기도 적당하고, 심심치 않게 배치되어 있는 삽화도 꽤 감칠맛 나게 잘 그려져 있습니다.
용기있고 바른 심성을 가진 어린이는 한 번씩 읽어봐야 할 동화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습니다.


Mi jam longe forgesis kiel legi fablojn por infanoj, ĉar miaj mezaĝaj okuloj ne plu povas vidi la mondon klaran kaj koloran. Pro tio, tre ĝojige al mi estis foliumi ĉi libreton kiu elvokis mian forgesitan senton.
La knabo "Hlapiĉo" jam estis heroa, kiam li eliris la domon kaj aventuri dum kelkaj tagoj. La kuraĝo kontraǔ ĉia maljusteco, la simpatio kun senfortaj homoj, la persista klopodo por helpi homojn kaj la simpla dankemo al ĉiu bonkoro diras ke la knabo "Hlapiĉo" jam estas granda heroo.
Tute fulmo-rapide mi tralegis la tutan raporton sen hezito, ĉar tiu malgranda aventuro re-memorigis al mi la forgesitan mondon - la mondo kun justeco, kun koloro, kaj espero.
Enda libreto por ĉiuj ge-knaboj ĉirkau en 10 ~ 11 jaraĝo. Pli da junaj amikoj legu ĝin, ju des pli la monda estonto fariĝu espera. Rakonto 100 jar-malnova, tamen por-ĉiama vero kun impreso.
Ĉarma libreto dum kelkaj horo elvokis la puran kaj belan mondon el mia profunda koro. Ho! ♧

꼬마 구두장이 흘라피치 - 10점
이봐나 브를리치 마주라니치 지음, 장정렬 옮김, 이다정 그림/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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